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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적이나 상대, 경쟁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우리가 스타가 되도록
영감과 자극을 주는 이들입니다.
1장. 바나나를 얻으려면
원숭이를 우리에 넣고, 우리 바깥에 원숭이 손이 살짝 못미치게 바나나를 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보자마자 원숭이 뒤에서 우리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원숭이는 눈앞의 창살들 사이로 팔을 뻗쳤습니다. 원숭이는 손이 살짝 못미치는데 있는 바나나를 움켜잡으려고 미친듯이 애쓰며 몸부림치다가 어깨가 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시간, 몇주, 몇달을 몸부림쳐도 바나나는 내내 손이 살짝 못미치는데 있을 것이었습니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으려면
거기서 등에 돌리고
이미 열려있는 문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죠.
알다시피 원숭이가 이렇게 '아하'를 얻어 열려있는 문을 보는 순간 성공은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 눈에 보이게 현현하기만 하면 됩니다. 열려있는 문을 보는 순간 원숭이는 바나나를 가진 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손에 쥘 수 있는 만큼 많이 가질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명성과 성공은 정확히 이와같은 것이어서
우리가 어떤 것을 보는 순간에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명성과 성공이라 여기는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을 상징하는 것이자
눈에 보이도록 밖으로 나타낸 것일 뿐입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저 밖'과 '이 안'을 혼동한다는데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돈이나 성과, 기다란 리무진,
기타 성공에 따라 오는 모든 것이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숭이처럼 바나나를 잡으려고
분투합니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날이 가고 해가 가도록
바나나를 잡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일 것이고
왜들 그러고 있는지 알만할 것입니다.
명성과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분투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면에서 희열과 환희, 만족을 느끼는데 따른
자동적 결과입니다.
행복은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존재하면서 삶을 대하면 자동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형편이 어떻든 행복합니다. 저는 부자로서도 행복했고, 빈털털이로서도 행복했습니다. 독신자로서도 행복했고 기혼자로서도 행복했습니다. 학생으로서도 행복했고 선생으로서도 행복했습니다.
환희의 원천은 매 순간 속에 있습니다.
'저 밖'에 있는 것과는 완전히 무관합니다.
명성과 성공도 정확히 그와 같습니다.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눈덩이는 굴려 놓기만 하면 비탈 아래로 자동으로 내려갑니다. 그 외에는 더 해야 할일이 없습니다. 정확성과 균형을 유지하는데는 힘이 들지 않습니다. 파워는 힘이 들지 않습니다. 파워는 우아함, 균형, 수월함, 자신감, 확신입니다. 세상사람들은 포스 force에 잘못 의존하고 있습니다.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들은 근육이 엄청난 것으로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역대 최고의 스타플에이어들보다 이두박근과 어깨가 우람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야구가 포스로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그들 모두가 성공했을 것입니다. 경쟁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장을 둘러보면 모두가 자기자신을 최대 한도로 강제하는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파워는 그와는 다른 어떤 것입니다. 야구 배트의 운동량이 공의 운동량을 아주 정통으로 때려야 그 충격으로 날아간 공이 승부를 결정하는 법입니다.
포스가 아니라 파워를 갖춰라
앞으로 연구할 중요한 원칙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포스와 파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차이를 아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사람들은 당대 최강의 군사력을 결집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포스에 의지한 끝에 제정신을 잃고 자멸을 초래하고 실각하고 죽음을 맞고 인류의 혐오 대상이 되었고, 전국민에게 패배를 안겼습니다.
포스는
일정기간 동안 성공의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한 유명인들 모두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성공을 상징하는 것들은
성공의 참모습이 아닌 것이
명백합니다.
파워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요? 파워는 우리가 내면에 보유하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사람들의 의지에 불을 지폈을 때 그는 파워를 현현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히틀러의 포스는 파워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포스는 파워를 만나면 항상 집니다. 이 원칙을 한결 더 명확힌 설명할 수 있는 예를 들어봅시다.
그 예는 바로 마하트마 간디의 파워가 대영제국의 포스와 만난 일입니다. 이 마주침으로 충돌한 시점에서 대영제국은 세계 역사상 최강의 포스였습니다. 대영제국은 지구의 3분의 2를 다스렸지만 몸무게 40kg의 갈비씨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들의 지배 체제에서 '유색인종'으로 폄하되던 이었습니다. 포스와 파워의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해를 바탕해 대영제국의 몰락을 예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보편적 진리에서 나온 원칙에 바탕했습니다. 애초에 동등하게 창조되었기에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미합중국 헌법에 파워를 부여하는 원칙들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보편적 원칙은 한계없는 파워와 같습니다.
대영제국을 움직인 것은 사리사욕이었고, 사리사욕은 힘에 한계가 있습니다. 대영제국은 인류 전체에 기여한다는 원칙이나 생명에 이바지한다는 원칙처럼 파워가 엄청난 보편적 원칙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영제국 자체의 이익을 추구하는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대영제국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 자체로 한계가 있는 포스가 마하트마 간디의 의지가 아닌 한계없는 파워, 인도 사람들의 의지를 굳게 다지고 하나로 모아 불을 지핀 파워와 만났을 때, 대영제국의 패배는 필연적인 일이었습니다. 역사책에 기록된 정치적 사건이나 여타 모든 일은 결과일 뿐입니다. 원인이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첫 번째 비결은
원인과 결과에 대해 세상 사람들과
반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원인은
파워로서 '이 안'에 있습니다.
'저 밖'에 보이는 것들은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과는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삶을 좌우하는 보편법칙으로 인해 따라올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결과를 부러워하는 것은 엉뚱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방하려고 애쓰지만 모방할 것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모방으로 효과를 보려면
결과가 아니라 원인을 모방해야 합니다.
바나나 소유는 결과입니다.
결실입니다.
결과는 성공의 '저 밖'에 있는 것인데 반해
성공은 오직 '이 안'에 있는 것을
비롯합니다.
성공의 비결은
열려있는 문을 발견하는
'아하' 체험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결만 있으면
세상에 그것을 현현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현현하지 않는데서 즐거움을 얻을수도 있습니다.
일단 내적 통달을 성취하고 나면
더이상 통달 여부를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정한 무술 고수는 거리에 나가 싸울 일을 찾지 않습니다. 반대로 깡패가 고수를 건드리면 고수는 깡패를 구슬려 싸움을 피합니다. 고수가 충돌을 피하려고 갖은 수를 쓰는 것은 속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깡패는 모르고 있지만 고수는 단 한방으로 깡패의 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습니다.
무술과 마찬가지로 성공은 힘이 들지 않는 일입니다. 우아한 일입니다. 수월한 일입니다. 균형을 잡는 일입니다. 정밀한 일입니다. 초점을 맞추는 일입니다. 정곡과 핵심을 찌르는 일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않는 일입니다. 성공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정말로 성공했는지 알아내는 비결 하나는
환희가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하루를 마칠 때 지치고 기력이 다한다면
그건 바나나를 움켜잡으로고 애쓰는 원숭이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상품을 창안하면
문턱이 닳도록 세상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머리 싸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성공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딱 한순간이 걸립니다.
예를들어
이 글을 읽는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실제로 '알아 듣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아직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 문이 열리고,
그러면 우리는 사실 늘 알고 있었다고
속으로 느낍니다.
앞서 이야기한 남자는 춤을 시작하자마자 자신이 이미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심리학상, 신경학상, 해부학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남자의 좌뇌가 우뇌와 연결된 것일까요? 좌뇌와 우뇌 사이의 문이 열린 것일까요?
우뇌는
아날로그 컴퓨터와 비슷해서
만사를 아는 것과 관계가 있고,
좌뇌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좌뇌는 디지털 컴퓨터와 비슷해서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선형적인 자료 처리능력이 있습니다. 좌뇌로 춤추는 것은 골치 아프고, 어색하고, 따분하고, 진빠지고, 즐겁지 못한 일입니다.
좌뇌는 바나나를 잡으려고 분투하다 스스로 탈진하고 우리를 탈진시킵니다. 좌뇌가 바나나를 움켜쥐는 양은 끝없이 분투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원숭이가 바나나 한개에라도 손이 닿는다면 어쩌면 운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정말로 가망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면 바나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창살을 상대로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생 내내 그렇게 프로그래밍된대로 움직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상태가 이해됩니다. 세상이 왜 그런 식인지 이해가 됩니다. 아주 운 좋은 원숭이라면 분투하다 탈진해서 쓰러지고 탈진상태에서 우리 문밖을 보고 전구가 번쩍 켜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바나나를 움켜쥐는 양은 그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 자신을 영구히 가두기에 딱 알맞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성공의 세계에는
경쟁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생각을 거듭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성공의 세계에는
경쟁이 전혀
없습니다.
피라미드의 정상에는 극소수만 있습니다. 정상에 있는 이들은 거칠 것이 없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어느 지역에서 최고인 식당의 주인이라면 성공을 위해 분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공이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사람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섭니다.
지역 최고의 자동차 정비공이 일자리 찾느라 애먹을 일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지역의 모든 정비공장이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는 고객으로 이루어진 추종자 집단을 끌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던 소도시에는 사실상 지역 내 어느 정비공장에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정비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추종자 수가 엄청났습니다. 어디를 가든 고객들이 따라왔습니다. 그는 최고였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뻔한 문제를 모르는 척하려고 갖은 핑계를 댑니다.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교육도 못받고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까? 저는 고작해야 웨이터라고요. '좋습니다. 웨이터들을 봅시다. 저는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뉴욕 동부지역 클럽 몇곳의 수석 웨이터들과 알고 지냈습니다. 어느 날 밤 새벽 2시에 클럽 밖에서 그중 한사람과 이야기 나누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기다란 리무진이 다가와 인도 가까이에 섰습니다. 저는 당연히 클럽 주인의 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수석 웨이터가 쥣자석에 타자 차가 출발했습니다. 그의 리무진이었습니다. 클럽 주인은 몇시간 전에 들어가고 없었습니다.
이 수석 웨이터는 1년에 2억원을 벌었습니다. 그러니 웨이터가 되려면 사상 최고의 웨이터가 되세요.
모든 고객을
왕족처럼 대하세요.
그러면
자신의 성공은 보장됩니다.
우리는 수석 웨이터의 성공이 그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자기 일이 돌아가는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기본입니다.
여기서
차이 나는 것은
오로지 마음가짐입니다.
에너지가 차이 나고,
동기가 차이 납니다.
파워에서 비롯하는 차이가 납니다.
형편없는 웨이터는 탐욕에 바탕합니다. 맨날 바나나에 손을 뻗칩니다. 진정한 수석 웨이터는 돈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겠습니까? 그는 줍니다. 그는 탈월함을 현현합니다. 우리도 세상에 탁월함을 현현한다면 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어코 우리를 찾아냅니다. 일자리를 알아볼 필요가 없어집니다. 다른 회사들이 끊임없이 전화해서 성가시게 굴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바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삶의 어느 한 분야에서 진정으로 성공하는 법을 알기만 하면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분야에서도 성공하기로 결정했고
그 일로 기쁨을 얻는다면 말입니다.
기법은 정확히 동일합니다.
에디트 피아프는 사상 최고의 엔터네이너 가운데 한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본 공연자들 중에서 뉴욕 나이트 클럽의 야박한 청중을 무릎 꿇린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노래를 하면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피아프는 파워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흥미를 끌고, 열광시키고, 사로잡고, 내면에 잠들어 있던 정서적 체험을 깨우는 파워가 있었습니다. 불어로 노래해 가사를 알아듣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도 그랬습니다.
성공적인 사람들 모두의 비밀은
'그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있지만,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의식하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합니다.
모두 알다시피 어떤 분야에 대단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합니다. 그들로서는 달리 존재할 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이 그럴 뿐입니다.
안과 밖, 어디서 찾을까?
방법을 설명하는 책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좌뇌방식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일이 이뤄지는 방식을
원인과 결과로 설명하지만,
막상 원인을 제대로 짚어주지 못합니다.
한번은 어느 단체와 강연 계약을 했는데, 그곳의 대표는 강연 입장권을 다 팔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백 퍼센트 성공하지 못할 일이라면 저는 애초에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습니다. 대표에게 안심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가 그러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강연장에는 입석밖에 남지 않았고 강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내면에서 알고 하는 일은
뭐든 어긋나는 법이 없고,
심지어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그렇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는
그 점을 알고 있다는 완벽한 확신이 내면에 있고,
자신에게 결과는 이미 명백합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그 시점의) 세계 최고층 빌딩 건립이라는 발상을 후원하기 위해 뭉치자고 합의한 순간부터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 발상, 그 합의, 그 생각, 그 비전, 그 흥분속에는 수천명의 인부와 수천억 원의 자금을 동원할 만한 파워,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뉴욕 최고의 명소 가운데 하나가 될 만한 파워가 있었습니다. 은행 돈, 인부, 엔지니어, 건축가, 건축 자재를 모으는 일은 세상속에 벌어진 결과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 결과는 그 이면에서 파워가 동원하고, 조직하고 구체화한 것이었습니다.
물리학의 법칙과 우주의 법칙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 한가지는
포스는 항상 반대 포스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사실에
우리가 탈진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살펴보면
어떤 포스도 반대 포스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다른 것에 압력을 가하려면
반드시 그에 저항하는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저항이 없으면
압력도 없습니다.
움직임은
이 두 포스가 이루는 미묘한 균형속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제트엔진으로 추진되는 비행기가
대기속에서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
날개 윗면의 공기 흐름에 진공이 생기고,
이 진공에서 발생한 양력으로 비행기가 뜹니다.
그리고
제트엔진의 추진력과 공기의 저항이라는 두 포스의 차이가
비행속도로 나타납니다.
이와같이
포스는 반대 포스를 야기합니다.
반면,
파워의 비밀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는 중력의 포스에 맞서 바위를 비탈위로 굴려 올리려고 애씁니다. 근력이 들어올리는 포스와 중력이 내리 누르는 포스 사이에서 생기는 수학으로 계산 가능한 차이가 바위의 이동으로 나타납니다. 전자가 후자보다 크면 바위는 위로 올라갑니다. 이 균형이 뒤집히면 바위는 비탈 아래로 내려갑니다. 포스로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 정상에 도착하려고 애쓴다는 것은 이 시시포스의 게임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시포스가 게임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악성 치질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물론 시시포스 이야기의 진짜 결말을 압니다. 현실의 시시포스는 술을 심하게 마시기 시작했고 마약도 많이 하다가 약물 과용으로 죽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성공이라 여긴 것을 잠깐 맛본 다음 성공의 배를 놓쳐버린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하러 그들을 모방합니까?
우리는
어떤 것을 당장 특징짓는 단면이 아니라
그것이 보여주는 장기 변화를 살펴보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성공한 증거는
최종 결말에 있습니다.
잘 나가다
이후에 파탄을 맞이하는 길은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바보같은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읽고 싶어 안달하는 이유는 거기 나오는 것과 같은 원피스나 바지를 사고, 같은 차를 사고, 같은 식당에 가고, 같은 유명인의 이름을 들먹이며 아는 척하고, 같은 신문에 자기가 나오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다 헛된 일이지 않을까요?
파워는
이런저런 사실이나 입장, 소유하고 있는
'저 밖'의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파워는
그런 것을 대하는 내면의 태도에서
나옵니다.
살펴보면
세상의 어떤 사실에도
파워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실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영향받는지에 따라
사실에 파워가 부여될 뿐입니다.
사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우리의 체험을 결정합니다.
음악소리가 크면
누구는 짜증이 나고
누구는 신이 납니다.
사물의 질은
'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은 곧 사물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일련의 마음가짐입니다.
스타일입니다.
올바르게 동기를 부여받아
그에 걸맞게 비전을 품으려는 의도입니다.
이런 요인을 갖추면
성공은 자동으로 보장됩니다.
달리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바르면
모두들 우리를 기어코 찾아낼 것입니다.
모두들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할 것입니다.
모두들 우리 파티에 오겠다고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우리는 여느 파티 주최자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파티에 올지 안올지 더이상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반대 상황을 보게 될 것입니다. 더이상 못 들어오게 막지 않으면 장소가 미어터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바나나 몇개를 얻었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바나나를 다발로 갖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바나나 나무로 가득한 열대 지방 섬에서 살고 있다면 바나나를 저장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바나나를 모으거나 몰래 어디다 감춘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책의 주제를 알아듣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대단히 재미있을 것입니다.
사람들 모두가 바나나를 비축하는데
우리는 한가하게 바나나 숲속을 거닙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슬픈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들 모두가 물웅덩이 속에 앉아 있고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 모두가 사랑에 에워싸여 있고,
가난한 사람들 모두가 돈에 에워싸여 있고,
실패자들 모두가 성공에 에워싸여 있고,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 모두가 기회에 에워싸여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사실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 마하가섭에게 무언중에 깨달음을 전했습니다. 이 중대한 역사적 순간에 붓다는 아무 말없이 마하가섭에게 꽃 한송이를 전했고, 그 순간 마하가섭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어떠한 분투도, 노력도, 수행도, 안간힘도 없었습니다. 그런 좌뇌적인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일은 갑작스러운 '아하'였습니다. 완전하고 전체적인 '체험'이었습니다.
붓다는 마하가섭이 이미 깨달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고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자, 우리는 마하가섭이 '알아들은' 뒤에 밖에 나가 기다란 리무진 한대를 샀는지 안 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이야기로 미루어 볼때 그 점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마하가섭이 그런 차를 세상에서 어떤 쓸모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저는 그가 한대 샀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 다음 사실로 입증됩니다.
다 가진 사람들은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필요'라는 이름의 곤경, 궁지, 장애물을
전체적으로 살펴봅시다.
필요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진실을 부인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는 알고 있습니다.
아는 바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 뿐입니다.
공식을 갖고 있으면
굳이 공식대로 실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원한다면
완전히 자유로이 실행합니다.
아무리 애써 눈알을 굴려도
자기 뒤통수를 볼 수는 없습니다.
자기 뒤통수를 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원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일에는 거울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의 뒤통수를 보여주는
거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고 있는 그 사람 개인의 세상은
그가 원인의 수준에서 원칙으로 여기는 바를 반영하고
원인의 수준은 그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성공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려면
어디서 찾을지를 알면 됩니다.
어떤 것을 찾을지가 아니라
어디를 찾을지를 알면 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존재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찾는 것을
자기 내면에서 발견하기만 하면
애써 '저 밖'을 뒤질 필요가 없어집니다.
무의식적 마음속에서
개념들이 가장 가깝게 연결되려면
이상하게도 정반대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그저 원인과 결과를 뒤집기만 하면
많은 문제의 해답을 얻습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신념체계를 잠시 접어두고
연습삼아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라고 생각해보면
답이 금방 드러납니다.
그 '아하' 느낌을 얻습니다.
프로이트는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꿈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이 사실에 주목해, 무의식적 마음이 작동하는 메커니즘 하나는 어떤 것을 그 반대의 것으로 위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돈전의 앞뒷면을 뒤집으면 성공의 비결을 얻습니다.
감정을 포기하라
자 지금까지 우리는 이론처럼 들리는 이야기에 마음을 혹사했습니다. 이론이라고 하면 신비주의적 이론, 심리학적 이론, 이론을 위한 이론, 실존주의적 이론 등 우리의 마음이 이름을 붙인 어떤 이론처럼 들립니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저항에 있습니다.
우리의 좌뇌는
자기가 계속 사물을 운영하고 담당하고 싶어 합니다.
좌뇌는
자기가 그저 더 큰 어떤 것의 하인이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좌뇌는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아 차리길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동전의 유일한 면으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정말입니다. 동전에는 앞뒷면이 있지만 좌뇌는 우리가 이 사실을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도 됩니다. 좌뇌를 충족하기 위해 현실적인 사례를 드는 것으로 이 장을 마치겠습니다. 사례는 정보와 납득을 원하는 좌뇌의 욕구를 만족시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 한 것은 사실 모든 사례에 숨어있는 기본 원칙입니다. 좌뇌는 이 원칙에 저항 못하니 좌뇌를 잘 다뤄봅시다. 좌뇌에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그 기능을 내려놓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좌뇌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실행합니다.
성공이 어려워지는 것은
'양자 모두'를 택하지 않고
'양자 택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경쟁과 성공을 좆는 세상에서
'양자 모두'를 택한다는 것은
더이상 적이나 경쟁자로 만들지 않고,
다른 이들을 적이나 경쟁자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다른 이들은 선두주자 내지는
영감과 자극의 원천으로 여겨야 합니다.
선두 주자가 없으면
그레이 하운드 개들은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적이나 경쟁자로 여겼던 이들은
그냥 영감과 자극을 주는
원천으로 보세요.
그들이 도전하는 바는
우리 내면에 있습니다.
외부에서 우리가 그들과 맞서는 것이 아닙니다.
무슬 챔피언은 결코 상대방을 마스터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자신을 마스터합니다.
누구와도 경쟁하기를 포기하세요.
경쟁자는 가능한 일을 보여주는 본보기 일뿐이며,
따라서 에너지 원입니다.
큰 전쟁이 끝날때면 맞서 싸우던 사령관들이 서로를 치하하지 않습니까? 승리자와 그 맞수가 서로를 예우와 존경으로 대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장군으로 호칭합니다. 우리 내면에 어떤 위대한 것을 보유하려면 먼저 타인에게서 그런 위대한 것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재판이 끝나면 변호사들은 악수를 나눈 뒤 함께 식사하러 갈때가 많습니다. 권투 챔피언들은 서로에게 감사합니다. 조 루이스같은 진정한 챔피언은 상대가 지닌 최상급 경기력 없이는 자신이 도저히 스타가 될 수 없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적이나 상대, 경쟁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우리가 스타가 되도록
영감과 자극을 주는 이들입니다.
누가 부럽다는 것은 내겐 어떤 것이 없고
그에겐 있어서 그가 밉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저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당장 끝내야 합니다.
그는 자기 내면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내면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온갖 책에서 자기 확신이나 이기려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은 모두 결과입니다.
그런 마음가짐 자체를 가져오는
원인이 아닙니다.
성공의 열쇠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감있고, 미소를 띄고 있고, 인심이 후하고, 외향적이고 유능하고
소통을 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