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염색체 말단에 존재하는 염기서열인 텔로미어가 유지되는 방식을 확인해 암의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새로운 환자 맞춤형 항암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는 이현숙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이 유방암 변이유전자인 BRCA2의 암억제인자 결손으로 인한 텔로미어의 구조적 손상이 텔로미어 상분리현상을 일으키는 분자적 메커니즘을 최초로 규명했다고 3일 밝혔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의 횟수를 제한해 DNA 돌연변이가 축적되기 전에 세포사멸을 유도하며 암세포로 발달을 억제한다. 텔로미어의 항상성 유지는 유전체 안정성에 중요하며 텔로미어의 손상은 노화 및 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암억제인자 BRCA2의 돌연변이는 가족력이 있는 유방암, 난소암, 췌장암 등의 조기 발병 원인이 된다. 이런 가운데 BRCA2가 결핍된 세포는 텔로미어 '네가닥 특이 구조(G4)'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심각한 텔로미어 손상과 세포노화로 이어진다. 이 교수 연구팀은 일부 세포에서 짧아진 텔로미어가 어떻게 암으로 발전하는지 확인했다.
연구팀은 BRCA2 결핍으로 비정상적으로 안정화된 텔로미어 G4 구조는 전사-복제 충돌을 일으켜 DNA와 RNA(리보핵산) 복합체인 '알-루프(R-loop)' 구조를 유발하는 것을 밝혔다. 특히 텔로미어는 짧은 세포에서 이러한 R-loop 구조가 많이 축적됨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텔로미어 핵산 구조가 암 발생의 중요 인자임을 밝혔다.
R-loop 구조가 축적된 텔로미어는 두세 개가 모이는 텔로미어 클러스터링 현상을 보였다. 생물리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는 액체-액체 상분리 현상이었다. 텔로미어 상분리는 텔로미어 연장과 암세포의 증식에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상분리는 단백질-핵산의 밀집된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하나의 요소라도 없으면 상분리가 해체되고 나아가 암세포의 사멸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BRCA2 돌연변이를 가진 유방암 환자 조직샘플에서도 텔로미어 상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빈도는 약 50%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텔로미어 구조적 손상이 어떻게 암을 개시하는지 생물물리화학적으로 접근하여 풀어냈다"며 "상분리 특성을 활용해 항암 치료의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결과는 암 뿐만아니라 다양한 텔로미어 이상 관련 질환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핵산연구'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