죡변은 윗모깃글에서 “갓난정신에게 처방될 만한 이유식”을 운위하면서 정신능력을 음식소화력에 비유하여 암시하려고 부지불식간에 의욕한 듯이 보인다.
물론 이따위 의욕은 정신을 생물의 소화기관으로, 육체로, 물질로 환원해버릇하는 유물론에나 물질주의에 영합한다는 혐의를 뒤집어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눈치를 미비한 죡변은 이따위 혐의를 무릅쓰고 〈끽다잡상(喫茶雜想) 정신 현실 괴리 이성 탄식 헤겔 갓난정신〉이라는 모깃글에서는 급기야 “헤겔의 정신은 갓 태동한 정신, 갓난정신이었다”고 히스테릭하게 주장해버렸다. 그런데 헤겔의 문장들이야말로 공교롭게도, 아이러니하게도, 하필이면, 장황하기로 유명하거나 악명떨친다.
뭐, 그랬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하여튼, 죡변은 〈한국 입시 교육 취업 눈치 단문 노예 독서 생각 토론 불능 퇴행 언어 베스트셀러 특성; 무분별되는 해문력과 문해력〉이라는 모깃글에다가 “자신의 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이유식을 떠먹기는커녕 모유(어미젖)나 젖병우유(물에 섞어 끓여 적당히 식힌 분유)마저 스스로 빨아먹지 못할”뿐더러 “아예 링거 주사맞듯이, 기껏해야 베스트셀러 따위나 문득언뜻얼핏가끔깜박 떼지어 떼몰려 읽을랑말랑알랑해야만 가까스로 연명할 수 있을 듯이” 보이는 “아직 갓나지도 않은 미정신(未精神)”을 암시하려는 듯이 부지불식간에 의욕했면서도, 정작 그런 미정신에게는 이유식이나 모유나 젖병우유처럼 섭취되기는커녕 링거처럼 흡수될 수도 없을 장황한 문장들만 자판질해버렸다.
그러나 죡변은 얄망궂고 게을러터졌으면서도 눈치마저 미비해서 그런지 그따위 장문들을 미정신에게 흡수될 만한 링거 같은 문장들로 가공하기는커녕 갓난정신에게 섭취될 만한 이유식이나 모유나 젖병우유 같은 문장들로도 가공하지 않고 세월아네월아 방치해두었다.
더구나 그런 가공기술은 미정신이나 갓난정신을 측은히 여겨서 장문을 잘게 짤막짤막 채썰어 수선하는 솜씨뿐 아니라 그런 솜씨를 익히려는 의욕과 노력, 익힐 수 있는 인내력과 시간, 문법과 문맥을 정확히 파악하여 운용하는 지식마저 요구하기 때문에 죡변이 그것을 숙련할 날은 요원하리라.
(2024.01.16.01:17.)
아랫그림은 프랑스 화가 알렉상드르-가브리엘 드캉(Alexandre-Gabriel Decamps, 1803~1860)의 1837년작 〈전문가들(Les Expert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