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우면 귀가 멀고
외로우면 눈이 먼다
저녁도 거기까지
새벽도 거기까지
늘그막
뒤늦게 우는
첫눈 내리는 내 사랑
-석야 신웅순의 「여울-묵서재일기47」
모란꽃 피고 질 때면 소쩍새가 운다. 올해는 모란꽃도 못보고 소쩍새 울음도 못 들었다. 못보고 못들은 것은 처음이다. 내 철 이른 목련꽃 어디쯤, 철 지난 구절초 어디쯤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 꽃 이름 외우다 그런 것도 아니다.
해마다 봄날 지는 꽃 울어주던, 맺힌 마음 달래주던 소쩍새. 인생에 밑줄을 긋고 가는 새이다. 속이며 살아왔던 것도 아니요 괴롭히며 살아왔던 것도 아니다. 아, 모르긴 하되 내 누군가를 많이 미워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목련꽃 지는 밤도, 소쩍새 우는 새벽도 몰랐을 것인가.
봉숭아꽃, 분꽃, 채송아, 맨드라미, 백일홍이요, 뻐꾹새, 부엉새, 소쩍새, 까마귀, 물총새이다. 고향을 떠나올 때 두고 온 꽃과 새들이다. 목련, 철쭉, 장미, 모란이요, 개개비, 휘파람새, 동박새, 황조롱이다. 고향을 떠나 사귀었던 친구들이다.
눈과 귀가 멀쩡한데 아직도 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인가. 진정 눈이 멀고 귀가 멀어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인가.
늘그막 뒤늦게 찾아와 훌쩍거리는 첫눈 내리는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