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12.24.대민(주일낮)
성탄의 큰 별(마2:1-10)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세월은 비켜갈 수 없습니다.
2023년도는 남다른 한 해 였습니다. 무더운 더위가 오래동안 지속되었고 유난히 비도 많이 내렸으며 더위가 물러가자 마자 가을이 없이 훌쩍 겨울이 왔으며 벌써 성탄절을 앞둔 주일이며 이제 한 주일만 더 보내면 한해도 마감합니다.
성탄절은 소망의 절기입니다. 아이들은 유행하는 장난감이나 컴퓨터게임을 갖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각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기념하는 소망은 우리가 그저 휴일에 바라는 것들보다 훨씬 더 큽니다. 예수님, 곧 “모든 나라의 보배”(학 2:7)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골 1:13-14).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선에 대하여 지혜로우며, 악으로부터 순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롬 16:19).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소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탄절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 된 날입니다.
이 사랑은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특별한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행동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놀라운 사건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의 사랑이 만들어낸 놀라운 사건이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선물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린 역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했던 역사, 그리고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캐롤과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울리는 시간,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은 다실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고 이 땅의 평화와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히 염원하는 시간입니다.
오늘날 성탄절의 참 의미를 모른 채 그저 공휴일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보내 주신 가장 귀한 선물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겨울에 더욱 지내기 힘든 환경에 있는 소외된 이웃에게 지역 교회와 성도들이 따뜻한 사랑과 복음을 나누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동방의 박사들이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별을 보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실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탄절을 준비하였다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별(1-2)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성경은 세상을 가리켜 어두움 또는 흑암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가리켜 어두움을 비취는 큰 빛이라고 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 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었습니다.
여기 큰 빛은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22장16절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을 가리켜 새벽별이라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새벽은 어둡기 때문이고 새벽별은 어두움을 밝히는 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마태와 누가도 예수님의 오심을 별 또는 빛과 관련하여 묘사했습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Persia) 나라의 점성학자 혹은 천문학자 들로서 큰 인물이 출현할 때는 특별한 별이 나타난다고 믿어 왔다고 합니다.
특별히 그들은 포로로 잡혀 왔던 히브리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장차 메시야가 나타날 것과 메시야가 나타날 때는 특별한 별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을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민수기 24장17절에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별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말씀에 의해서 이스라엘에서 장차 메시야가 나타날 것과 그 때는 특별한 별이 나타나리라고 믿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상한 큰 별이 하나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이 동방박사들은 직접 예물을 준비해 가지고 떠났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먼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까지는 왔지만 왕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랍비들을 만나 왕의 출생지에 대해 묻게 된 것입니다.
박사들은 베들레헴이 메시야의 출생지란 사실을 알게 되어 헤롯왕의 안내를 받아 베들레헴으로 발길을 옮겨 메시야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갈 때 그들 앞에 문득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별은 그들이 동방에서 메시야 탄생의 징조로 보았던 그 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별은 정확하게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에까지 인도하여 그 위에 머물러 섰다고 했습니다. 이 별은 광명한 새벽별이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큰 별은 특별한 별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별의 출현으로 계시된 것은 이미 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의 나타나심이 별과 별빛으로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9장1~2절에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라고 했고, 민수기 24장17절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결국 베들레헴의 광명한 새벽별은 메시야의 탄생을 고하는 소망의 별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별은 그들의 안내자와 같았습니다.
별은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시는 아기 예수를 만날 때까지 그들을 인도해주었습니다.
당시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고 새로운 왕을 통해 시작되는 새로운 인류의 평화의 시대, 구원의 시대, 영원한 복된 시대가 열린다는 믿음으로 희망의 별빛을 따라 위험한 사막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은 희망 속에 살아야 합니다. 희망이 없이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산소가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불가능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어떤 환경, 어떤 조건, 어떤 실패의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소망을 갖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메튜헨리 주석에 의하면
“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된 땅"에 이르기까지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으나 박사들은 그 자신이 "광명한 새벽별"이신 "약속된 씨(후손)"에게 별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았다(계 22:16). 하나님은 부지런히 충실하게 그를 찾는 자를 혼란 속에 내버려두시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것"을 창조하신다. 이 별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일종의 표식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빛이시며 그의 백성을 앞장서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우리가 신앙으로 우리의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 자신이 그의 인도하심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눈으로 지켜보시고 인도하시며"(시 32:8), 또한 "이것이 그 길이니 이리로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의 마음속에는 한 샛별이 떠 있어 그들을 인도한다(벧후 1:19).” 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날 밤, 그 이상하고 큰 별을 많은 사람들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별을 보면서도 그 별이 메시야의 탄생을 알려 주는 별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직 이 세 박사만 깨달아 알고 메시야를 찾아가 경배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 사람을 남달리 사랑하시어 택하시고 은총을 주셨음을 밝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보혜사 성령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이상하고 큰 그 별처럼 예수님의 빛을 비추고 계시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특별히 은총을 내려 주시는 자만 깨닫고 믿으며 예수님께 경배합니다(엡 1:3-14, 2:8-10, 롬 8:30, 요 6:44, 15:16, 살후 2:13, 시 65:4).
이 특별한 은총으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구원을 받고 복되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는 만 입이 있어도 그 은총을 다 감사하지 못하고 찬송하지 못합니다.
특히 이 성탄의 계절에는 더더욱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벽별은 밤이 지나고 새벽을 맞게 될 때 유난히도 빛납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어두운 밤에 광명한 새벽별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새 희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별은 성탄의 큰 별입니다.
2.경배하는 별(3-8)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그러므로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헤롯 왕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요셉에게도, 마리아에게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바르게 알았던 것입니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에게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세토록 우리의 경배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그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헤롯왕과 예루살렘성 사람들은 소동하였습니다. 왕은 모든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으고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탄생하실지 물었습니다. 그 지도자들은 성경 예언을 잘 알고 있었으나, 동방박사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경배하러 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능통했던 그들은 왜 메시야의 탄생을 확인하고 그에게 경배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마태복음 15장의 말씀대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교훈을 덧붙임으로 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불신앙을 범했고, 마태복음 23장의 지적대로 위선과 외식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다 사람의 생각을 덧붙임으로 결국 성경을 부정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믿음은 지식만이 아닙니다. 교회 생활의 연륜이 쌓여가고 직분이 더 무거워져도, 사람은 생명 없는 형식적 종교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신앙과 교회 연륜 혹은 직분은 꼭 비례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가까울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진다”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신앙은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을 포함하는 전인격적 신뢰입니다. 악인들과 위선자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겠지만, 진실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그에게 합당한 경배와 영광을 돌립니다. 시간만 낭비하는 위선자가 되지 말고,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헤롯은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아기 예수님께 경배할 뜻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기 예수님의 소재를 정확히 알아낸 후 그를 죽여 없애고자 했었음은 후에 그가 한 짓을 보아 틀림없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자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여 없애는 끔찍하고도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적대하는 사람입니다. 제3의 선택이란 없습니다. 중립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온전히 경배하지 않는 삶은 결국 예수님께 등 돌리는 삶입니다.
이러한 헤롯의 행위는 자신의 추악한 음모를 은폐하기 위하여 경건을 가장한 위선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살해하기 위한 계략(stratagem)의 겉포장은 '경배'였습니다.
먼길을 마다 않고 자기 발로 걸어 와서 스스로 드리는 동방 박사들의 진정한 '경배'(2, 11절)와 어두운 데 웅크리고 앉아서 '나도...하게 하라'는 헤롯의 거짓 '경배'는 비교할 바가 안 됩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경배하고자 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자기도 사람이기에 경배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사도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에게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또한 천사도 경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경배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드리는 것입니다.
역대상16장29절에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기서의 제물은 예물을 의미합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한 요소입니다. 빠져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이 시간 우리도 엎드려 예수님께 경배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했다고 할 때 우리말로 "경배하다"로 옮겨진 원래의 말은 몸을 완전히 엎드려서 존경을 표시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행동은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사탄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유혹할 때 말한 그 경배는 바로 그러한 행위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말씀하시며 그 유혹을 물리치신 일을 통해서도 그 경배의 행위는 오직 하나님께만 향해질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경배를 받으실 분이심이 동방의 박사들의 경배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4장10절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보좌 앞에 둘러선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 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린 것”처럼 우리의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동방박사의 경배하는 별은 성탄의 큰 별입니다.
3.크게 기뻐하는 별(9-10)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성탄절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아무리 가야할 길이 사막처럼 어렵고 힘들어도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산다는 한 가지 이유로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뻐하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단테는 {신곡} 에서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넣어 놓았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여기 왔느냐?"고 묻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의 말이 "다른 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 믿는다고 하면서 기쁘게 살지 못하고 늘 우울하게 한숨만 쉬며 산 죄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말하게 합니다.
무신론적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반복해서 동방 박사들의 큰 기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우리는 이 단어들을 통해서, 동방의 박사들이 메시야의 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찾아서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바야흐로 곧 그들은 여행의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그들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인도해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기쁨과 감격이 정말 컸습니다.
실로 별이 아기있는 곳에 머물러 섰을 때, 박사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신앙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 자체를 기뻐합니다. 예수님 한분 때문에 행복하고, 예수님 한분이면 족하다는 고백이 참된 신앙입니다.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들중에 토마스 아퀴나스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신학대전이라는 여러권으로 된 책을 쓰신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신학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서 참 잘 썼더구나. 내가 네게 상을 주고 싶은데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네 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꿈을 깬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 종은 아무것도 원치 않사옵니다.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하나님 당신만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와 같이 아기 예수님을 찾은 것을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교회는 한 해 동안 미루었던 구제와 성탄행사가 주요 관심사이지만,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발견한 자체를 무엇보다 크게 기뻐하고 또 기뻐하였습니다. 첫 성탄절의 주인은 성탄행사가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한편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기뻐한 이유는 그들의 목적지에 무난히 찾아올수 있게 된 까닭입니다.
이 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서 별을 보고 기뻐하였으나, 그 때에 하늘을 쳐다 보지 않은 자들은 그런 기쁨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이따금 진리와 성령님의 인도에 부닥칠 때에 그 기쁨은 큰 것입니다. 이 기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바라보며 찾는 자들 만이 맛봅니다.(벧후1:19)
예수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과 날마다 더불어 사는 성도들에게는 기쁨이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처음 이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기쁨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에게 기쁨을 만들어 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너무나 기뻐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도 아깝지 않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결혼을 위하여 준비하였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도 아깝지 않은 기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기쁨이 너무나 커서 물동이를 버려둔 채 마을로 달려가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갈릴리 바닷가에서 만나던 날 예수님과의 만남이 너무나 감격적이어서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엄숙한 명령에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는 새 소망이 넘치는 기쁨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기쁨의 감격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기쁨이 사라진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어 살 맛 나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 기쁨은 예수 안에서만 발견되어지는 기쁨입니다. 성도들의 기쁨은 예수 밖에서는 절대로 찾아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동방박사들이 본 성탄의 별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것은 아기 예수 탄생을 알려주기 위해 단 한번 보여주신 표적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아니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 말씀과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동방박사들처럼 세상의 죄와 욕심을 버리고 깨끗함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의 인도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의 기쁨과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기쁨이 넘치는 이번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크게 기뻐하는 별은 성탄의 큰 별입니다.
1.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별(1-2)
2.경배하는 별(3-8)
3.크게 기뻐하는 별(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