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4년 8월 19일 포스팅하였습니다.
6월의 장마가 7월로 미루어 지고
7월의 마른 장마는 몇 차례 태풍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댐의 물이 턱없이 부족하여 충주호 유람선이 멈추어 서고
강릉 시민의 식수원인 오봉땜이 바닥을 드러내었습니다.
8월의 휴가철이 끝날 무렵부터 시작된 반가운 비는
목마른 여름 가뭄을 해갈하고 가을 장마라는 아름이 붙을 정도로 늦은 비의 은총을 대신하였습니다.
두어 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산촌을 찾았습니다.
죽령 터널을 지나면서 쏟아지는 비는
강원도의 밤하늘을 먹구름으로 뒤덮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고요히 잠든 밤
양철 지붕이 요란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대구에서는 폭우가 쏟아져도 창문을 열거나 문 밖을 나서지 않으면
날이 흐린지 비가 오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두어 주간의 휴가 기간 동안 여행과 출사를 마치고
삼일 동안 두문불출 하였는데 비가 많이 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강원도의 산촌은 70년대 양철 지붕 그대로여서
밤에 비가 내리면 비 내리는 소리는 굵고 가는 빗줄기와 빠르고 느린 하모니를 이루어
환상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됩니다.
굵고 가는 비에 따라서 선율의 흐름이 다르고
이따금씩 지붕을 뒤덮은 커다란 두 그루의 호두 나무에서 쿵하고 호두가 떨어질 때면
잠이 깰 때가 많습니다.
비 오는 소리를 적나란하게 들을 수 있는 강원도의 산촌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하고 출사를 다니는 정서의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일날 밤에 강원도에 도착하면.....
어린 강아지처럼 가장 반기는 사람은 유치원 다니는 다윗입니다.
대문이 없는 담장 입구에서 예닮아! 다윗아! 부르면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 나오는 다윗입니다.
다윗을 와락 품에 안고 뚜둑해 주면서
반가운 정을 다 녹여냅니다.
다윗은 만나자 마자
"목사님, 다윗 사망할 뻔 했어요"라며 그간에 많은 일이 있었다며
어리광을 부리며 두서없이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 손을 잡고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걸으면서
꼬마 다윗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집에 와서는 알까지를 하자면서 같이 놀자고 하여
바둑판을 꺼내고 물티슈로 닦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둑판을 닦고 있는 물티슈를 낚아채며
목사님, 바둑판은 그렇게 닦으면 안돼요라며 꾸겨진 물티슈를 곱게 펴고서는
어린 두 손을 꽉 누르고는 앞뒤 좌우로 닦았습니다.
멍하니 지켜만 보는 감동은
탄성의 물결로 이어졌습니다.
바둑판을 이렇게 닦는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아니예요"라며 "물티슈를 꾸겨서 닦으니까 물자국이 생기고 깨끗이 닦이지 않는 것을 보고
스스로 알았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기사 유치원에서
바둑판을 닦는 방법을 가르칠리 만무하였습니다.
알까기를 하면서 어린 다윗과 재미있게 소통의 놀이를 하다가
문득 무남독녀 따래미를 이국만리 필리핀에 어학연수 떠나 보내고
고등학생과 중학생, 그리고 유치원생 있는 안 목사님과 생활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올해 나이 7살인 다윗은
하늘이 내린 영재입니다.
찬송가의 재목과 가사와 노래를 다 아는 찬송가 신동으로 시작하여
바둑과 장기의 신동이요, 또 한자 신동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다윗과 손을 잡고 초등학교까지 오고 가면서 나눈 이야기는
대부분 한자 놀이였습니다.
낱말을 말하면 한자의 음과 뜻을 말하고
뜻풀이까지 하였습니다.
장기의 한자를 다 아느냐고 물으니까
하나 하나씩 말하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앞뒤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차가 죽으면
그 장기는 끝났다고 하였습니다.
7살 어린 꼬마가 장기의 한자를 다 알고
말로서 장기를 어떻게 두는지 설명하는 다윗은 확실히 영재였습니다.
한자 놀이하다가 막히면....
어린 다윗이 한자의 음과 뜻을 말하고 뜻풀이까지 합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 한테 대꼬바리로 맞아 가면서 한문 공부를 하였지만
다윗 때문에 어떤 낱말이든지 한자의 음과 뜻을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문득 택시 기사 한 분이 생각납니다.
오래 전에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운전대 앞에 한자가 적힌 종이 쪽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운전하시면서 한자 공부하십니까 질문하였는데
별거 아니라면서 기사 식당에서 점심 먹으면서 신문을 보는데 모르는 한자는
그 날 운전하면서 다 외운다고 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하였더니
이제는 모르는 한자가 거의 없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였습니다.
생활 속에서 공부하는 습관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가장 효울적인 자기 주도적 학습의 원동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밤부터 내린 비는 낮에도 계속되고
다음 날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면
산약초 산행을 할 수 없습니다.
산약초 산행을 하다가 비를 만나면 우의를 입고 산행을 계속하지만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리면 쉴 수 밖에 없습니다.
비 내리는 적막한 산촌에서 쉬고 있는데
안 목사님께서 강릉에 있는 교회당으로 가서 휴대폰으로 찬송가 녹음 하자고 하였습니다.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찬송가 녹음에 필이 꽂혀 있는 안 목사님이 애처로왔습니다.
처음 방문하는 개척교회......
20평이 되지 않는 건물 2층 뒷편에 강대상을 마주보고 싱크대가 있었습니다.
많은 개척 교회를 둘러 보았지만
이렇게 소박한 개척 교회는 처음 보았습니다.
철제 의자에 기다란 식당 탁자......
강대상만 없으면 간이 식당으로 알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
70년대 시골 교회의 다다미 마루보다 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산약초 산행을 하면서 개척 교회를 돌보고 생계를 꾸려가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맑은 목자의 상을 가졌습니다.
지난 날 교회 방송실의 장비를 다루고.....
찬양대의 찬양과 찬양단의 노래, 그리고 설교를 편집해서 홈페이지에 포스팅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찬양 잘하는 형제나 자매를 만나면......
촬영을 하고 영상 편집을 해서 포스팅하는 취미를 가졌습니다.
그 가운데 정순자 권사님 찬양을
촬영하였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는데도
아무도 없는 커다란 교회 당에 반주자와 단 둘이 찬양을 하고
방송실에서 모든 상황을 영상으로 녹음하였습니다.
권사님은 성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성악가처럼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고된 시집살이로 음악적인 재능릉 살리지 못하고
나이들어 걸어다니는 병원신세가 되어 그나마 찬송가를 부를 여유가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카셋트 테이프도 만들고 Mp3로도 만들고,
DVD를 제작하였습니다.
영상 편집을 위해서 프리미어를 독학하였고
음성 편집을 위해서 음악 전문프로그램인 피날레를 공부하였습니다.
역동적인 영상 효과를 위해서 이펙트와 플래쉬를 독학하면서
인터넷 선교를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대구의 목사님들 가운데는
최첨단의 영상 문화를 가장 앞서 만들어 가며 도약하는 비상하는 날개를 달았습니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 날들.......
그러나 지금은 강원도 산촌에서 산약초 산행으로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열어 가고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찬양하는 모습을 담아 블로그에 올리고
찬양으로 선교와 개척 교회를 스스로 도울려는 안스러운 모습 지켜 보면서
손각대로 찬양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안 목사님은 찬양의 은사가 있어
요즘도 매일 저녁이면 얼굴도 모르는 환우들에게 휴대폰으로 찬양을 들여줍니다.
밤이 되면 옆방 서재에 기거하면서 안방의 안 목사님의 찬양을 들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례자의 노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닉네임 순례자로 활동하시는 안 목사님은
실제로 노래하는 순례자를 가장 열창합니다.
하늘의 곡조 울리니 내 마음 기쁘다
아름다운 멜로디 날마다 주 찬양해
노래하는 순례자 구주의 손잡고
약속의 땅 찾아서 길 가는 순례자
주께서 내짐 지시니 발걸음 가벼웁다
주님의 그 크신 은혜 날마다 찬양하리
노래하는 순례자 구주의 손잡고
약속의 땅 찾아서 길 가는 순례자
허름한 앰프의 스피커 음을 휴대폰으로도 담을 수가 없어서
그냥 육성을 담았습니다.
영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찬양하는 영성이 느껴지고 가난한 순례자의 노래, 그 자체의 감동으로 넘쳤습니다.
휴대폰으로 열창하는 모습을 담으면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때 느꼈던 희열과 감격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휴대폰으로 담은 영광의 찬양은
카페의 영상으로 포스팅 되었습니다.
컴퓨터는 있지만 프린터가 없어
인터넷의 악보를 복사집에서 출력하는 모습은 산촌의 정서 그대로였습니다.
가끔씩 강릉시를 다니면서 정차하고 뛰어가서 들고 오는 것은
아이스 박스와 박스, 그리고 유리병과 단지였습니다.
소박한 삶의 정서는
모든 생활에서서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가장 세련된 모습은
강릉 중앙시장 한복판에서 깔끔한 차림의 모자를 쓴 패션으로 피켓 들고 전도하는 모습입니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산약초 산행을 하지 않고
강릉시에서 목사로서 길거리 전도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하는 모습은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사명으로 존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휴대용 엠프가 준비되는 대로......
강릉의 경포대 호수 공원 같은데서 찬양하며 전도사역을 할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약초 산행을 하면 극한 작업을 하는 산꾼으로 손색이 없고
찬양을 하면 복음성가 가수의 열창을 뛰어넘습니다.
또한 원어에 대한 깊은 연구로
성경 속의 참 복음의 메세지가 무엇인지 바로 아는 귀한 목사님입니다.
"성경 속으로라"는책을 저술하여
성경의 난해한 문제를 명쾌하게 풀었습니다.
대구에서는 복음적인 대화를 나눌 동역자를 찾지 못하였는데
강릉의 오지 삽당령 아래 산촌에서 산약초 산행으로 더욱 깊어진 안 목사님과
언약과 복음 신앙의 소통이 되었습니다.
노래하는 순례자, 순례자의 노래는.
닉네임 순례자에 걸맞는 맞춤형 찬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