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노병철
오랜만에 술을 마셨더니 속이 많이 부대낀다. 워낙 안주가 좋길래 그냥 먹을 순 없었다. 세꼬시가 아주 연하고 부드러웠기에 씹는 맛이 제대로다. 문제는 내 건강이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 처지인데 서로 주고받는 잔을 보고만 있으려니 입맛이 동했다. 위궤양이 있다는 의사 소견이 생각이 났지만 지금 당장 벌어지지 않은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속이 탈이 난 모양이다. 가족들 잔소리 안 들으려고 내색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컨디션이 최악이다. 오늘 할 일도 많은데 일정을 다 소화해 낼지 걱정이 앞선다. 저녁 약속은 내가 좋아하는 복집이라 또 음주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의학 기술 발달로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60세 한국인의 남은 수명은 10년 전과 비교해 3년 가까이 늘어났다. 요즘 장례식장에 가면 80세에 돌아가신 분에게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옛날보다 많이 오래 산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세상을 달리하는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간이 얼마인 것이 중요한 것이다. 40평 사무실에 실평수는 30평이 안 된다고 하면 그 평수에 맞춰 인테리어 견적을 뽑아야 한다.
병에 걸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상태로 있는 기간이 예상을 초월한다. 사람이 평생 병에 걸리는 기간을 유병 기간이라 하는데 이게 남녀 평균 15년 정도가 된다. 이중 나이 들어 요양병원 신세 지내는 게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수명은 더 늘어났지만, 그 수명이라는 게 숨만 쉬고 있다고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논리이다. 통계에 보면 60세 이상 나이에 사람들이 병원에 가는 일수가 늘었고 초고령층의 요양병원 생활 기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음을 본다. 종일 병실에 누워 주는 밥 먹고 텔레비나 보면서 누워 지내는 기간을 수명 연장은 아니지 않는가.
칠 공주라고 불리던 동네 복지관을 주름잡았던 엄마 친구 일곱 분 중 이제 세분만 움직이고 나머진 다 요양병원에 계신다. 전국이 좁다면서 여기저기 여행을 즐기면서 좋은 것을 먹었다며 자랑하시던 양반들이 이젠 병원 침대에 누워 죽으로 연명한다. 힘이 쭉 빠져있는 엄마 모습을 보면 그날은 분명 친구분들 병문안 다녀오신 날이다.
“도대체 엄마 연세에 무슨 추석 대목이 뭐가 중요하다고.”
세분이라도 여행가시라고 펜션 하나 준비해 드렸더니 추석 앞이라고 취소해 달라신다. 추석 시장을 봐야 한다며 걱정을 늘어놓으시길래 괜한 역정이 났다. 나이 육십인 며느리한테 맡겨 놓으면 다 알아서 할 텐데 구십 된 노인네가 뭔 그런 걱정을 하시는가 싶고 갈수록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엄마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마는 남은 생은 당신만을 생각하면서 모든 짐을 다 벗어 던지고 자유롭게 옛날처럼 놀러나 다니시면 좋으련만 갈수록 집에서만 웅크리고 계시려는 모습을 보면 내 속은 고구마 세 개를 한꺼번에 먹은 기분이다. 다리에 힘이 갈수록 떨어져 이젠 재래시장 휘젓고 다니시는 재미도 못 본다며 웃으신다.
“아고. 나도 요양병원 갈 때가 다 된 모양이다.”
큰 인심 쓰듯 며느리에게 다리 멀쩡할 때 돌아다니라며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충동질한다. 그리고는 절대 나를 요양병원에는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하신단다. 말은 요양병원 타령을 하시면서 병상에서 누워 천장만 보는 친구분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으신 모양이다. 요양병원이 현대판 고려장이 된 것 같다. 사무실에서 이것저것 약이란 약은 다 입 속에 털어 넣었다. 저녁을 대비해야 했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 친구분 중에 한 분이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엄마가 방에서 안 나오시고 꼼짝도 안으신단다. 속이 갑자기 더 아려온다.
첫댓글 인생무상
오래 살아있다고 좋아할 일 아니죠.
사람답게 살아야~~ 그 나이는 78세 까지라는데~~후~~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