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기도가 튼튼한 다음세대를 만들라!
쉬지 않고 기도하는 깨어있는 주일학교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영적인 대화이며, 영혼의 호흡이요, 능력의 통로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열차와 같다면 기도는 레일과 같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은 기도라는 레일을 통하여 나타난다.
기도는 전도를 가능케 한다.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 그것은 기도로서 가능하게 된다. 기도를 동반한 전도는 성공적인 전도로 나타나게 된다. 교회학교의 사역, 특히 전도 사역에서 기도를 제거하면 그 사역은 실패한다. 기도는 기적을 행하고 체험하게 한다.
기도로 무장한 주일학교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잠들어 있는 주일학교를 원하시지 않는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깨어있는 주일학교”를 찾고 계신다. 기도로 깨어있는 주일학교가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원하시는 뜻을 실행하는 주일학교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기도 책이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는 한 때는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많이 하면서도 기도에 대해 가장 많이 오해를 하는 교회가 한국교회이다. 영적 토양이 아직도 샤머니즘, 불교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다. 기도의 크기가 교회의 크기다. 기도의 크기가 목사의 크기, 기도의 크기가 장로, 권사들의 크기, 기도의 크기가 교사들의 크기이다.
기도하는 주일학교를 만들려면 교사가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하고 기도에 열심을 내려면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기도법칙을 알아야 한다.
기도 법칙1,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 받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는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해결함을 받고 질병에서 치료를 받고 문제가 해결된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기도의 자세이다.
누가복음 11장의 가르침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도는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마스터키이다.
시편 94:9은, 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들으시며 눈을 만드신 분이 보신다고 한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의 크기에 따라, 기도의 분량에 따라 응답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레일이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레일을 깔아놓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내 힘으로 내 실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도의 레일을 크게 깔면 크게 능력이 임한다. 기도의 레일을 길게 깔면 하나님의 능력이 길게 임한다.
주일학교가 어렵다고 이야기를 한다. 다들 힘들다고 풀이 죽어있다. 그렇다고 ‘되는’ 주일학교가 되는가? 이제 교사들이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당장 응답이 없어도 레일을 깔아놓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부흥의 열차가 우리교회를 향해 달려온다.
서울의 ㅎ교회 교사들은 매주 목요일에 정기적인 기도회 시간을 갖는다. 특별 행사시에는 특별기도회를 선포하여 2주일에서 한 달간 저녁 시간과 새벽 시간을 정하여 기도한다. 기도는 곧 부흥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한 교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기도하고자 힘쓰고 있다. 그래서 부흥이 있는 것이다.
기도 법칙2, 정직한 삶을 구함
유럽인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말은 “신에게 부탁한다”는 의미다. 히브리인들에게 “기도드린다”는 “자기 자신을 저울에 달아본다”는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 아침에는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삶을 부탁하고 저녁에는 종일 내 행위가 얼마나 옳았는가, 얼마나 정직했는가?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저울은 말씀이다. 하루의 일과(日課) 틈틈이 말씀에 자기를 비추어보며 기도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기도했고 그만큼 정직하다. 유대인들의 기도가 유대인들을 정직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교회 기도는 세계 최고이다. 모일 때마다 기도한다. 보통 오래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 때마다 기도, 새벽기도 철야기도회가 있다. 특별새벽기도회를 한다.
한국교회는 정직한가? 기도를 많이 하는 우리가 정직한 신자로 인정받고 있을까?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하다. 한국교회가 유럽교회의 기도 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유럽의 기도관이 우리 샤머니즘 토양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기도할까?”에만 관심이 있지 “어떻게 살까?”는 생각하지 못한다. 복주세요! …주세요! 이것만 기도한다.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다. 진실과 정직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기게 해달라고, 합격하게 해달라고, 성공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급급하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이 같이 가지 못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병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국교회는 얼마나 많이 기도했는가? 기도의 길이를 생각하지 기도를 통해 얼마나 변했는가? 를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나 빡세게 기도했는가, 그것만 생각하지 얼마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는가?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가 기복주의 교인을 양산한 범인이 된다.
기도는 단순히 ‘speaking’ 말하기가 아니다. 기도는 ‘listen’ 들음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며 살려는 몸부림이 기도이다. 기도는 말하는 것만 아니라 듣는 것이다.
누가복음 11장은 기도장이다. 주님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을 받고 주기도문을 주셨다. 2절,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정작 이하의 기도문을 보면 그것은 “이렇게 기도하라”가 아니라 “너희는 이렇게 살라”이다. 기도하는 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기도이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이다.
우리가 기도대로 살지 못하기에 “기도가 한국에서 학살당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마르틴 루터는 “주기도문이 순교당하고 있다”… 라고 비꼬고 있다.
기도는 복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담을 그릇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정을 나눌 수 있도록 거룩하게 진실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기도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낸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으며 살 수 있다. 이런 어린이들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오늘날 주일학교는 그냥 종교인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생략) 3월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