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기념일 해프닝
오늘이 나의 결혼기념일이다. 43주년인지 44주년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데 매년 이때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곤혹스러워진다. 모르는 척 하고 그냥 지나가 버리기엔 뭔가 죄를 짓는것 같고 아쉽기도 하다. 다행히 아내가 친구와 약속을 했는지 11시에 외출을 한다고 바쁘다. 아마도 나에게 기대를 하지도 않고 해봤자 그렇고 그러니 아예 친구와 약속을 한 것 같다.
나는 그냥 인사조로 오늘이 결혼기념일인데 친구하고 약속이 있는 모양이지 하니 결혼기념일 그런것 다 잊었다 고 한다. 잊어 버릴 리가 없는데 그렇게 이야기 하니 오히려 마음이 무겁다. 그러면서도 ' 당신 오늘 밖에 안 나가지요. 점심때 돼지고기 구워 드실래요 하면서 돼지고기는 냉장고에 있고 상추는 씻어서 찬 물에 담가놓을테니 마늘하고 드세요 한다. 나는 알아서 할테니 시간 늦지않게 빨리 나가요 한다.
책상에 앉아 한참 있는데 다시 문이 삐이 열린다. 손에서 책 한 권과 참기를 한 병을 내려 놓는다.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가 과거 수녀였다가 환속한 친구인데 수필가로서 책을 한 권 내어서 그 책과 고소하다고 집에서 가져온 참기름 한 병을 주었다고 바로 앞에서 만나 집에 놓고 간다고 한다. 친구와 아마도 가까운 현충원으로 가는 모양이다.
그 책을 가만히 펴보니 제일 첫 부분에 '마지막 인사'라는 글이 나온다. 과거 수녀로서 법정스님과 교유를 가끔 가졌었는데 법정스님 영면하시기 나흘전에 병원에서 뵙고 눈인사를 나눴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슴이 뭉클하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했는데 아내의 친구가 나를 구해 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저녁이라도 함께 어디 가서 먹자고 하고싶으나 아내가 응할려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친구한테서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저녁식사 하자고 전화가 걸려 온다. 어떻게 해야 하나 ?
친구와 보신탕집에서 보신탕과 막걸리 한 잔을 하고 들어오면서 파리바켓에서 케이크를 하나 사 와서 '여보 우리 결혼 기념일 케이크라도 자르고 먹읍시다' 하고 촛불을 불고 케이크를 잘라 먹는데 케이크 맛이 별로다. 케이크를 살 줄 모르면 전화라도 해서 물어보고 사지 이런 케이크를 사 왔다고 핀잔이다. 혹 뗄려고 하다가 혹 붙인 격이다. 신통찮은 사람의 결혼기념일 해프닝이다.
2019.5.2 (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