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85) - 관조(觀照)를 새로 깨치다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소한절기가 포근하다. 따뜻함 대신 찾아온 것은 미세먼지로 혼탁한 대기와 국내외로 불안한 세상, 이래저래 어수선한 때에 국태민안을 비는 마음이다.
미세먼지 가득한 창밖 풍경
새해 들어 이어지는 일상, 꾸준히 걷고 미디어를 통한 정보획득과 지적 탐구로 분주하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듯, 지난주 교육방송의 ‘e 클래스’ 강좌에서 새로운 깨우침을 새겼다. 주목한 강좌의 주제는 이종태의 신(神)나는 세계, 신의 메시지를 탐색하고 더불어 신나는 세상을 꿈꾸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그중 귀에 쏙 들어온 내용은 ‘반짝이는 눈’이라는 제목에서 다룬 시 ‘개안(開眼)’과 ‘관조(觀照)’의 철학적 정의였다.
개안(開眼)
박 목 월
나이 60에 겨우 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신이 지으신 오묘한 그것을 그것으로 볼 수 있는 흐리지 않는 눈
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채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꽃
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충만하고 풍부하다
신이 지으신 있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지복한 눈
이제 내가 무엇을 노래하랴
신의 옆자리로 살며시 다가가 아름답습니다 감탄할 뿐
신이 빚은 술잔에 축배의 술을 따를 뿐
2년 전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의 일환으로 서울~부산을 걷던 중 경주에 들어서며 박목월의 생가 입구의 초등학교 게시판에서 그의 명시 ‘나그네’를 접하며 반가운 마음이었는데 2023년 새해 벽두에 그의 시를 통하여 너무나 아름답고 충만한 세상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관조(觀照)의 국어사전 풀이는 대상의 본질을 주관을 떠나 냉정히 응시함, 그런데 강사는 이를 경이로운(신의 경지에 이른) 관점에서 바라봄으로 설명하는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은퇴 전에 여행의 덕목을 관광(寬廣, 풍경을 즐김), 관음(觀音, 역사와 문화를 듣고 배움), 관서(觀書, 글을 통하여 익힘), 관덕(觀德, 덕망을 쌓고 베풂)의 단계로 정립한 후 그 다음 단계로 관조(觀照)를 떠올렸다가 관념적인 느낌이 들어 배제하였다. 그러다가 2년 전에 관기(觀機, 하늘의 기미를 살핌)와 관찰(觀察,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보살피다)을 새로 새겼는데 그 다음단계로 의미심장한 관조(觀照)를 깨치니 이 아니 기쁘랴.
교육방송의 클래스 e, 신나는 세계
* 지난 해 마지막 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95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재위 8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 교황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10여년의 은거 끝에 떠난 날, 교황청은 그가 즉위한 뒤 1년 4개월 만인 2006년 8월 29일에 작성한 유언을 공개하였다. 삶을 성찰하게 하는 내용을 보내준 지인에게 감사하며 이를 공유한다.
‘나의 영적 유언서
인생의 늦은 시기에 내가 겪은 세월을 돌아볼 때, 내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무엇보다 나에게 삶을 주시고, 혼란스러운 여러 시기를 헤쳐 나가도록 인도해주시며 모든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주님은 내가 미끄러질 때마다 항상 나를 품어주시고, 당신의 얼굴을 비춰주신다. 돌이켜보면 어둡고 힘겨운 여정조차 모두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고, 하느님께서 나를 잘 인도해주신 것이 그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어려운 시기에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나를 위해 분명한 빛처럼 사랑으로 멋진 가정을 준비해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아버지의 명료한 믿음은 자녀인 우리에게 신앙을 가르쳐줬고, 어머니의 깊은 헌신과 큰 선함은 내가 충분히 다 감사할 수 없는 유산이다. 누나는 수십 년 동안 나를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도왔다. 이러한 선행과 동행이 없었다면 나는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생애에 걸쳐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많은 친구와 이웃,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감사드린다. 나의 아름다운 조국에도 감사드리며, 고국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들 속에서 나는 믿음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땅이 믿음의 땅으로 남길 기도하며, 친애하는 독일 국민들이 믿음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제2의 고향이 된 이탈리아와 로마를 향해서도 특히 감사하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잘못한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교회의 모든 이에게 말한다.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자연 과학과 역사적 연구는 종종 가톨릭 신앙과 상충하는 반박할 수 없는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 듯 보인다. 나는 오래전부터 자연 과학의 변화를 경험했고, 반대로는 신앙에 반하는 확실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볼 수 있었고, 이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과 관련된 철학적 해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과학과 대화하는 것 또한 믿음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내가 신학, 특히 성경과학(biblical science)이란 여정에 동참한 세월이 60년 됐다. 그리고 다른 세대가 거듭하면서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이론들이 단순한 가설로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다. 그것은 자유주의 세대, 실존주의 세대, 마르크스주의 세대가 해당한다. 나는 이러한 얽힌 가정들 속에서 믿음의 온당함이 어떻게 다시 나타나는지 봤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교회는 모든 부족함에도 진정으로 그의 몸이다.
마지막으로 겸손되이 요청한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영원한 거처로 맞이해 주실 것이다. 내게 맡겨진 모든 이에게 날마다 나의 진심 어린 기도가 향할 것이다.’
교황시절의 베니딕토 1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