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괴로움과 즐거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염원들을 가지고 있다. 원하지 않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줄어들고, 원하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일은 늘어나기를! 그러나 사람들이 대부분 이와 같이 염원한다 할지라도 원하지 않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더욱 늘어나고, 원하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일은 점차 줄어든다.
제자들이여, 그대들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따라야하는지, 무엇을 따르지 말아야하는지, 무엇을 연마해야하는지, 연마하지 말아야하는지를 모른다. 따라서 따라야할 것은 따르지 않고, 따르지 말아야할 것은 따르고, 연마해야할 것은 연마하지 않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늘어나고, 원하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일은 줄어든다.
그러나 여기 가르침을 아는 사람들은 무엇을 따라야하는지, 무엇을 따르지 말아야하는지, 무엇을 연마해야하는지 연마하지 말아야하는지 알기 때문에 연마해야할 것은 연마하고, 연마하지 말아야할 것은 연마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그에게 원하지 않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줄어들고, 원하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일은 늘어난다.”<맛지마니까야> ‘마하담마사마다나경’
사회에 자비를 실천하고 부처님 가르침 전해야
삶은 단순하다. 우선 알아야 한다. 모르면 부끄러운 법이니까. 가장 부끄러운 일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스스로도 모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탄식했다. 남은 아는데 자신만 모른다면 이보다 부끄러운 일이 없다. 공자께서 배움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항상 탁마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모르는 것보다는 묻고 배우는 것이 덜 부끄럽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시작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보다 불행할 확률이 더 적고, 행복할 이유는 더 늘어날 것이다. 난 법문에 자주 말한다. “행복을 원한다면 책을 보고 머리를 쓰라. 잘 살고 싶으면 복을 지으라.” 삶을 단순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에서 부처님은 유쾌하고 불쾌한 심리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말씀하셨다. 핵심은 마땅히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면 좋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삶이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주역> ‘계사’에 “길흉은 득실에 있고 회린(悔吝)은 근심에 있다”고 했다. 회린은 작은 결함을 말한다. 결함이 없다는 것은 허물을 잘 보완하는 것이라 했다. 사소한 것부터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열정이 있다면 우린 분명 좋아진다. 최근 본사에 회의가 있어 다녀왔다. 상대적으로 나았던 송광사도 최근 들어 출가자가 감소하는 상황이라 했고, 회의 후에는 세찬 봄비 속에서도 민족문화수호결의대회가 있었다. 난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에게 진정 급하고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지금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좋은 불교가 이뤄지지 않는다. 개인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함께 믿고 함께 행복해야할 종교로서의 사명, 그리고 사회에 대한 자비의 실천과 가르침을 전파하는 일에 소홀했던 잠깐의 간극이 오늘의 이런 불균형을 초래하고 말았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좋은 법문이 불교를 살리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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