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26일 금요일 아침에 비가 뿌리더니 오후에 눈이 내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길가의 플라타너스 잎들을 몰고 다닌다.
이제 겨울이 바짝 다가왔다. 눈이 내릴 때 읽을 수 있는 시를 한편 보여 주고 싶다.
겨울 노래
마 종 기
눈이 오다 그치는 나이,
그 겨울 저녁에 노래 부른다.
텅 빈 객석에서 눈을 돌리면
오래 전부터 헐벗은 나무가 보이고
그 나무 아직 웃고 있는 것도 보인다.
내 노래는 어디서고 끝이 나겠지.
끝나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으니까.
짧은 하루가 문 닫을 준비를 한다.
아직도 떨고 있는 눈물의 몸이여.
잠들어라, 혼자 떠나는 추운 영혼.
멀리 숨어 살아야 길고 진한 꿈을 가진다.
그 꿈의 끝막이 빈 벌판을 헤매는 밤이면
우리가 세상의 어느 애인을 찾아내지 못하랴.
어렵고 두려운 가난인들 참아내지 못하랴.
쓸쓸하다. 시인은 언제부터인가 노래를 하였다. 무대에 서면 ( 진짜 가수일 수도 있고 인생을 비유하여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도 있다.) 나를 보아주는 많은 이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에는 나의 노래에 열광하고 박수를 보내는 이러한 모습이 영원할지 모른다는 착각을 가져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눈이 오다가 그치는 나이를 맞은 때- 이제는 객석이 텅 비어 있고 창밖에는 헐벗은 나무가 눈에 뜨인다. 주위에 어느덧 어둠이 내려 오늘 하루도 끝이 다가온다. 이제는 잠이 들어야 할 때이다. 잠이 들어버리면 ,꿈속에서 추운 영혼이 되어 혼자 길을 떠나 빈 벌판을 헤매면 마침내 애인을 만나 안식을 얻고 어렵고 두려운 가난도 참아낼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마치 이상화의 '나 의 침실로,를 덜 퇴폐적이고 덜 허무적으로 쓴 시처럼 여겨진다.
어두운 현실을 피하여 꿈속으로 도피하여 들어가 버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죽음의 그림자가 깃들여 있다. 몰래 속삭이는 밀투로 죽음 뒤에는 평화가 있고 가난도 없으며 아늑한 애인이 기다린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결코 옳은 말이 아니다.
눈 돌리면 극락이라는 말은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도 내가 처한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예전 신문에서 읽은 어느 사형수의 이야기- 사형이 확정된 후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다가 감형이 되었다.
그때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느낌은 얼마나 하찮은 것에서 발견한 대단한 기쁨인가!
늘 들이 마시는 공기의 상쾌함, 소파의 따듯한 느낌 , 길거리에 넘치는 활력- 이 사람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의 기분을 다시 생각하여 본다고 한다. 살아 있다는 느낌 , 그 기쁨.
인생의 가을이 깊어 겨울이 올 때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저녁 노을 -인생은 수평선에 머무는 저녁 노을 같다고 강인한 시인은 '우리가 만나자는 약속은 ' 아라는 시에서 이야기하였다.
눈이 오다가 그치는 나이-인생의 후반기가 추운 겨울에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