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 하이에 도달하기 까지 그 과정을,
그 속도를 받아 들여야 한다.서두르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을 때 빨리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걸음씩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運炭高道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이 명칭은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던 중국의 높고 험준한 옛길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인
茶馬古道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길은 석탄산업의 好況期에 태백,영월,평창,정선 등 강원 남부 내륙지역의 산중 탄광에서 채굴한 석탄을 가까운 기차역까지 나르던 트럭들이
다녔던 길로, 해발 1,100m 넘는 산간 지역에 1962년 2월 10일 창단한 국토건설단 단원 2,000명을 동원하여 삽과 곡갱이만으로 닦은 길이다..
석탄 운반을 목적으로 조성된 터라 비교적 편편하고 반듯한
産業路 여서 '運炭道路' 또는 '運炭길'이라 불렸다.
당시 국토건설단은 부랑자, 불량배 등을 군대식 편제와 규율로 도로·철도 건설 등 국가사업에
노역을 시켰던 조직이었다.
이 운탄고도를 트래킹 하는 사람들은 한 번 즘
이들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도 손해 볼 것이 없을 것이다.
함백산과 백운산, 두위봉 등의 7부 능선을 따라
조성된 약 40km의 구간은 함백산 晩項재에서
영월 상동과 정선의 사북을 잇는 고개인 화절령을 거쳐 영월군 산솔면 직동리 한밭골
에서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로 가는 고개인 새비재로 내려와
함백광업소가 인접하여 수 십 년간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함백역으로 이어졌다.
이 운탄길은 함백산 등의 능선으로 이루어진
본선 40km의 구간과 거미줄처럼 엮어진 枝線을 포함하여 정선에만 길이가 80km에 달하였고
영월, 태백, 삼척의 지선까지 합하면 100km가
넘었다고 하니 석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그길을 달리는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다.
1989년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1990년대 초중반부터 탄광들이 거의 다 폐광되면서
석탄을 가득 싣고 운탄고도로 달리는 트럭의 모습도 사라졌다.
2020년 12월 강원도와 폐광지역 영월군·정선군·태백시·
삼척시 4개 시군, 동부지방산림청이 '운탄고도' 조성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고, 2022년 10월 '운탄고도 1330'
이라는 명칭의 트레킹 코스가 정식 개통되었다.
이 길은 평균 고도 546m, 총길이 173.2km에 이르는 길로, '1330'이란 이 길에서 가장 높은
만항재의 해발고도 1,330m를 의미한다.
1~2길은 영월 청령포에서 동강을 지나 김삿갓의 고장으로 이어지는 길, 3~8길은 석탄산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길,
9길은 삼척 바다에 이르는 길은 총 9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광부의 길로 통하는 주요코스인 3~8길에는 가장 질 좋은 무연탄을 생산하던 옥동광업소와 폐광산, 철분이 가득 섞인 황금폭포, 무연탄 등의 화물수송을 위해 개설된 철도역들,
운탄길의 역사를 지닌 새비재와 화절령,
탄광 갱도의 지반침하로 생긴 인공연못으로 鑛夫인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원한 곳이라는 도롱이연못,
고한·사북 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舍北광업소의 1177갱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과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자 국내에서 차량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晩項재, 석탄생산 과정에서 순직한 이들을
기리는 순직산업전사위령탑, 까막동네 등의 옛 탄광촌 등이 있다.
보잘 것 없던 1960년대 한국경제
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천 명이 모이던 1964년 12월 10일,
돈을 빌리려 서독에 간 박정희 대통령은 목숨을 담보로 노동을 팔러간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함보른 탄광을 찾았다.
얼굴과 작업복에 석탄가루가 묻은 광부 300명과 피곤에 지친 간호사 50여 명이 모였다. 박 대통령이 단상에 오르자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했다.
박 대통령의 선창으로 애국가 합창이 시작됐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까지 힘차게 부르던 목소리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목부터 합창은 울음으로 변했고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에서는 끝내 통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애국가 합창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눈물을 닦고 연설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자 박 대통령은 연설원고를 밀치고,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결국 울음이 북받쳐 연설은 끝을 맺지 못했다.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정말 반드시....”
대통령을 비롯해 광부, 간호사들뿐 아니라 서독 뤼브케 대통령까지 눈물을 닦으며 강당 안은 울음바다가 됐다.
광부들과 악수를 나누고 차에 오른 박 대통령은 서러움이 북받쳐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70의 뤼브케 대통령은 40대 박 대통령의 눈물을 손수 닦아주며 이렇게 말한다.
“울지 마십시오. 잘사는 나라를 만드십시오. 우리가 돕겠습니다. 분단된 두 나라가 합심해서 경제부흥을 이룩합시다.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경제 건설뿐입니다.”
첫댓글 만항재
해발 1,330m로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는
지방도 414호로 태백, 영월, 정선의 경계점 선상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참고로 지리산 성삼재는 1,102m 이다)
만항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함백산은
백두대간의 심장부이자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계방산(1,577.4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1,573m)로 높은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