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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면 되리라/ 박재삼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 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 시집『아득하면 되리라』(정음사,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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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무인우주선 보이저1호가 태양계 행성을 탐사할 목적으로 우주를 향해 발사되었다. 보이저는 태양계 행성의 많은 사진들을 지구로 송신했다. 그 덕에 우리는 토성의 고리가 얇은 얼음조각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구를 떠난 지 13년이 흐른 뒤인 1990년 2월 초, 보이저는 태양의 가장 바깥쪽 행성의 궤도를 넘어선 공간을 초속 18km의 속력(서울에서 부산을 20초만에 갈 수 있는 속도)으로 달리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미 배터리는 다 닳고 관성으로만 진행하고 있을 보이저 호에 광속으로 신호를 보내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 사진을 찍어 전송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신호는 5시간 후에 60억km 떨어져 있는 보이저에 도달했다.
몇 달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실현가능성을 기대치 않았던 이 명령에 따라 보이저는 90년 3월부터 5월 사이에 태양계의 가족별과 우주공간에 외롭게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 지구 등을 찍은 수 십장의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태양계 행성 탐사 임무를 마치고 아무런 에너지도 없이 관성으로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보이저호의 충실한 명령수행은 많은 과학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 보이저1호가 이제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나 광대무변한 우주공간을 외롭게 질주하고 있다는 NASA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이 외로운 우주여행은 예상대로라면 앞으로도 이백만년 동안은 계속 되리라.
보이저에는 다른 항성의 외계인과 조우할 상황에 대비하여 지구 정보를 담은 골든디스크가 탑재되어 있다. 디스크에는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삿말을 비롯해 54개 언어와 고래의 울음소리 등이 수록되었으며, 지구인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한 사진, 피그미족 소녀들이 성인식에서 부르는 노래, 모짜르트 음악도 담겨있다. 칼 세이건은 보이저가 보낸 그 한 장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공간에 외로이 떠있는 한 점을 보라. 우리는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성자와 죄인 등 모든 인류가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티끌과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우주에는 천억 개의 은하가 있다고 한다. 은하간의 거리는 너무나 멀어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만 하더라도 이백만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단다. 그 시공의 상상만으로도 아득함을 넘어 어질하다. 그렇게 견주어보면 이승에서의 삶 전부가 아주 짧은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별들을 인도양 모래알처럼 쪼개어 생각하니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가 다시 아득해진다. 다만 달과 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까지 함께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 오는 그 이상을’ 볼 수는 없는 것. 그러니 그 우주의 한 귀퉁이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어른거리는 냉수사발을 그냥 ‘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으라.
권순진
Oliver Shanti & Friends - Nuurelarb
첫댓글 길위에서 ~ 멀리 바라보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은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그렇듯 아득했던 하루였습니다. 우주가 지금 이순간도 온세상을 통털어 젤 빠른속도로 팽창하고 있듯, 나의 삶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의 거리도 날이 갈수록 서로의 반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 아득한 시공의 한 점만도 못한 인간의 100년이 얼마나 헛헛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