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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목요일」 경험을 잊고, "광란"의 마켓에서 임계점을 넘는 투자 머니…곧 〈세계 공황〉 재래가 "자명한 이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금융의 프로가 해설】 / 9/15(금) / THE GOLD ONLINE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욕망과 갈망은 끝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반복되는 것입니다. 본고에서는, 이와나가 켄지씨의 「금융 폭락! 그레이트 리셋에 대비하라」에서 일부를 발췌해 1929년 10월 '암흑의 목요일'에 이르기까지의 길에 초점을 맞춰 임박했다는 세계적인 거품 붕괴 조짐을 짚어봅니다.
◎ 질리지 않고 되풀이되는 역사
'1927년→1933년형 세계공황'과 이번 '2022년→2028년형 세계공황'을 비교하면 모든 것이 겹치듯 닮았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그것을 클리어하기 위해, 상세한 내용을 대조해 보고 싶다.
이번에 확실하게 일어나는 버스트는 일본이 경험한 1987년→1993년 부동산 슈퍼 버블&주식시장 버블 붕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충격이 될 것이다. 필자는 '1927년→1933년형 세계공황'을 답습하는 '그레이트 리셋형'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금융공황, 금융경색, 대공황 순으로 진행되는 과정도 알고 있다.
전 세계의 돈이 집중된 미국발 세계 대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왜 거기까지 가야 하는가?
'1927년→1933년형 세계공황'의 시대배경과 현재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그렇게 이론을 제기하는 경향이 대부분일 것이다.
필자로서는 그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아무리 진보된 삶이 영위되거나 경제 규모가 다르더라도, 모든 인간의 욕망 열망, 갈망, 도박, 스페셜레이션(투기)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것들은 역사가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마켓에는 그 임계점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본질"인 욕망, 그 발로가 되는 열광, 광란, 광기에 인간은 항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켓의 임계점을 넘어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되풀이하는 것이다.
◎ 버블의 근원이 된 플로리다 부동산 붐
여기서 다시 1920년대 미국 역사를 부감해 보면 1929년 10월 암흑의 목요일로 향하는 조짐이 이미 10년 가까이 전 플로리다에서 시작됐다.
플로리다의 부동산 붐은 1920년대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열광과 함께 엄청난 부를 창출했고, 동시에 미국인들의 생활양식이 급격히 변화한 시대였다.
이 부동산 붐은 미국 역사상 최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이동"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미국인 이외의 투자자, 투기꾼의 면면이 습지대였던 곳에서 급속히 발전한 아름답고 눈길을 끄는 번화한 신도시로 몰려들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플로리다의 붐은 미국 생활 스타일의 진보와 새로운 다양화 문명을 만들어 갔다. 붐이 시작된 지 불과 5년 만에 플로리다의 중심도시인 마이애미의 인구는 3배로 불어났다.
플로리다에서는 도박도 음주도 용인되고 있었다.
이것도 플로리다의 붐을 크게 뒷받침했다. 거물과 실력자(재벌), 유명인사에다 사기꾼까지 몰려들었다. 기분 좋은 햇살 속에서 새롭고 눈부시기만 한 미국의 프론티어 스피리츠는 떠들썩하고 이용되고 활용되어 갔다.
탐욕에 찌든 플로리다의 개발자들은 주요 도시에 부동산 영업소를 차리고 움직이는 간판처럼 리조트를 홍보해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이 시기에는 이미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플로리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사상 최대 부동산 붐의 퍼스트플로어로 진입할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자 플로리다의 부동산 투자 붐은 미국 전역을 휩쓸게 됐다. 미국의 부유층 이외의 투자자(재벌), 투기자금, 평균적인 미국인이 부동산이나 개발의 일부 옵션을 구입하기까지 하면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플로리다로 몰렸다.
지금까지의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졌으므로 당연히 부동산 거품이 부풀었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해변의 일등지 리조트 개발에 대해 새로운 세그먼트가 출시될 것이라고 발표되었고, 그와 동시에 과대 선전이 이래저래 쏟아졌다. 물건·권리를 구입하고 싶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많아졌고, 그 수는 비정상적일 정도.
투자자들의 수표가 곳곳에서 난무해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그날 운 좋게 구입할 수 있었던 고액 물건 권리는 불과 3, 4일 만에 3배나 되는 가격에 전매됐다.
바로 인간의 광기에서 비롯된 토지투기 광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플로리다 부동산 시장에 많은 외부 투자자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점도 가격 급등을 뒷받침했다.
1920년대 플로리다의 번영은 미국 전역의 투자자들에게 부동산 거품이 낀 휴양지 열대 낙원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매료시키기에 이르렀다.
개발자가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 '마이애미는 6월이다' 라고 하는 거대한 광고를 게재하자 순식간에 플로리다 땅값은 오르기 시작했다.
가격 급등과 궤를 같이해 신규 프로젝트 수는 엄청난 숫자에 달했다.
하지만 '사니까 올라간다. 오르니까 산다'는 식의 광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투기는 끝나는 것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투자 의욕에 불을 지핀 플로리다 버블 붕괴
1925년 1월, 미국의 비즈니스 잡지 포브스는 독자(투자자)를 향한 중요한 기사를 게재했다.
「플로리다의 부동산 가격은 감당할 수 없고 살 사람을 찾는 희망에만 근거하고 있다.」
실질적인 "경고"였다.
바로 그 무렵 폰지 사기(사기꾼 폰지 사기의 이름에서 유래한 투자 사기)를 우려한 IRS(미국 내국세입청)가 플로리다의 부동산 투자 조사를 시작했다.
임계점에 도달한 플로리다의 부동산 시장 신규 진입자는 감소 추세를 보이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비도 둔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거품이 붕괴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갔다.
1926년에 들어서자 마침내 매수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붐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 화살 끝, 불운한 일이 일어났다.
그해 1월 10일 마이애미 항구 입구에 떠 있는 호텔로 개조되기로 했던 덴마크의 오래된 군함 '프린츠 발데마르호'가 전복된 것이다.
국내 인구 확장에 호응하여 이미 철도는 수송 요금 인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곳에 프린츠발데마르호의 전복사고가 발생, 마이애미로 가는 항로가 차단됐다.
항구 폐쇄에 따라 열대 낙원이라는 도시 이미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보도되는 난파선 사진이 많은 사람들에게 심한 심리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토록 열중하던 플로리다에 누구나 혐오감마저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26년 9월, 10월에 두 번의 허리케인이 마이애미 휴양지를 덮치면서 완전히 마이애미는 파괴되었다. 이렇게 미국의 공전의 부동산 거품은 붕괴의 시기를 맞았다.
이듬해인 1927년부터 1928년에 걸쳐 메이저 부동산 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이들에게 막대한 돈을 빌려줬던 100개 가까운 은행(플로리다 외 다수 포함)도 도산했다.
플로리다에서의 부동산 거품 붕괴가 계기가 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부동산보다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이 투자에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이것이 1929년 가을에 일어나는 「암흑의 목요일」에의 서장이 되어 가게 된다.
당시 미국의 국가예산 규모가 현재 엔화로 환산해 10조~12조엔였던 데 비해 플로리다의 손실액은 크다고는 하지만 규모로는 1000억엔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반대로 플로리다의 부동산 거품 붕괴는 황금기라 불리던 실물경제 확대에서 주식시장의 「상승한다, 급등한다」라고 하는 젖은 손에 좁쌀 버블 경제로의 전환을 재촉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경제는 드디어 본격적인 거품경제로 접어들었다.
시대는 열광, 광소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Greed(욕망)를 강화해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롤리다의 부동산 거품 붕괴는 다음 주식 거품이라는 불에 열광이라는 기름을 부은 격이다.
플로리다의 부동산 거품이 종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NY 다우지수는 급락을 거듭하면서도 그때마다 힘찬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도 미국 경제는 활황을 보이면서 수출이 크게 증가한 반면 영국은 인프레가 되어 경제가 침체되면서 무역수지 적자는 증가 일로를 걷고 파운드화는 감가했다. 이를 위해 재할인율을 7%까지 끌어올려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국내 산업에는 큰 타격이 됐다.
전쟁 여파로 일시 중단됐던 금본위제에 주요국들이 복귀한 것은 1920년 전후부터다. 금본위제 하에서는 적자국의 골드는 감소하고 흑자국의 골드는 증가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전후부터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골드가 유출됐다.
금본위제 하에서는 금이 증가하면 그만큼 국내 화폐량을 늘리고 금이 감소하면 화폐량을 줄이는 규칙이 지켜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적자국 : 금 감소→화폐 감소→물가 하락→수출 증가→수입 감소→흑자화로
흑자국 : 금 증가→화폐 증가→물가 상승→수출 감소→수입 증가→적자화로
이 메커니즘이 성립함으로써 국제수지의 균형을 도모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이 '골드가 증가하면 화폐량을 늘린다'는 룰을 어겼다.
수출 증가를 배경으로 급증한 골드에 대해 그만큼 늘려야 할 통화 공급량을 늘리지 않는 금불태화 정책을 펼친 것은 국내 물가 급등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또 가격이 낮아진 결과 미국의 수출경쟁력은 유지되는 반면 영국의 무역에는 불리해졌다.
미국에서는 1926년 가을 이후 주식 붐이 일면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자금이 빠져나가게 됐다. 또 1927년 이후 프랑스 정부가 영국에 체류하고 있던 자본을 대량으로 환류시킨 적도 있어 영국에서는 적자 증대와 함께 골드 유출이 심해졌다.
이에 따라 G4 중앙은행 총재회의(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가 개최됐다.
영국은행 총재 몬태규 노먼, 독일 중앙은행 총재 하르마 샤하트, 프랑스은행 부총재 샤를 리스트 등 쟁쟁한 회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연준에 영국으로부터의 골드 유출 방지를 위한 금융완화를 요구한 것이다.
FRB는 이를 꼬집었다.
구체적으로는 공정금리 인하와 시장의 국채 매입 오퍼레이션 실시였다.
1914년부터 1928년까지 FRB의 초대 의장을 지낸 벤자민 스트롱 밑에서 1927년 8월 한시적인 금융완화책으로 정책금리를 4%에서 3.5%로 인하했다.
더욱이 FRB는 시중 국채를 매입하는 매입 오퍼레이션을 통해 시중에 대량의 자금을 쏟아 부은 결과 이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됐다.
과열감을 일찌감치 느낀 큰손 투자자들의 면면은 플로리다 부동산 투기에서 한 발짝 두발짝 벗어나서 자금을 끌어갔다. 「다음의 투자처」를 찾아 머니가 향한 곳이, 1929년 9월을 목표로 강세장세를 전개해 가는 NY 다우의 주식시장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와나가켄지
https://news.yahoo.co.jp/articles/76839a1fc2f82abe904348aeab6b5e79737638ea?page=1
「暗黒の木曜日」の経験を忘れ、“狂乱”のマーケットで臨界点を超える投資マネー…間もなくの〈世界恐慌〉再来が“自明の理”といえるワケ【金融のプロが解説】
9/15(金) 7:32配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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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LD ONLINE(ゴールドオンライン)
「暗黒の木曜日」の経験を忘れ、“狂乱”のマーケットで臨界点を超える投資マネー…間もなくの〈世界恐慌〉再来が“自明の理”といえるワケ【金融のプロが解説】
どんなに時代が変わっても、人間の欲望や渇望には限りがなく、だからこそ「歴史は繰り返す」ことになります。本稿では、岩永憲治氏の『金融暴落! グレートリセットに備えよ』の中から一部を抜粋し、1929年10月の「暗黒の木曜日」に至るまでの道筋に焦点を当て、間近に迫っているという世界規模のバブル崩壊の兆しについて考えます。
【早見表】年金に頼らず「夫婦で100歳まで生きる」ための貯蓄額
性懲りもなく繰り返される歴史
「1927年→1933年型世界恐慌」と今次の「2022年→2028年型世界恐慌」を比較すると、全てが重なるように相似している。
ここからはさらにそれをクリアにするため、詳細を突き合わせてみたい。
今回確実に起きるバーストは、日本が経験した「1987年→1993年の不動産スーパーバブル&株式市場バブル崩壊」のレベルをはるかに凌駕する衝撃となるだろう。筆者は「1927年→1933年型世界恐慌」を踏襲する“グレートリセット型”のシナリオを描いている。
金融恐慌、金融収縮、大恐慌の順に進行するプロセスもわかっている。
世界中のマネーが集中した米国発の世界大恐慌に発展するのは、自明の理と言えよう。
なぜそこまで行かねばならないのか?
「1927年→1933年型世界恐慌」の時代背景と現在とではまったく違うではないか。そう異論をはさむ向きがほとんどであろう。
筆者としてはただ、こう答えるしかない。
どんなに時代が変わろうとも、いくら進歩した生活が営まれようとも、経済規模が違おう
とも、人間の欲望、熱望、渇望、ギャンブル、スペキュレーション(投機)には限りがないからだと。
それらは歴史が明白に証明しているではないか。
マーケットにはその臨界点が必ずや存在している。そして、どんなに時代が変わろうとも、人間の“本質”である欲望、その発露となる熱狂、狂乱、狂騒に人間は抗えない。それゆえマーケットの臨界点を越えていってしまう。
だからこそ、「歴史は繰り返す」ことになる。
バブルの原点となったフロリダの不動産ブーム
ここでいま一度、1920年代の米国の歴史を俯瞰してみると、1929年10月の「暗黒の木曜日」に向かう兆しが、すでに10年近く前のフロリダから始まっていた。
フロリダにおける不動産ブームは、1920年代は信じられないほどの熱狂とともに、莫大な富を生み出し、それは同時に、米国人の生活様式が急激に変化した時代であった。
この不動産ブームは、米国史上最大とも言える人の“移動”を生み出した。加えて、米国人以外の投資家、投機家の面々が、湿地帯だった場所から急速に発展した美しく人目を惹くにぎやかな新都市に群がった。
別の視点から見れば、このフロリダのブームは、米国の生活スタイルの進歩と新たなる多
様化文明を生み出していった。ブームが始まって以来わずか5年で、フロリダの中心都市であるマイアミの人口は3倍に膨れ上がった。
フロリダにおいては、ギャンブルも飲酒も容認されていた。
このこともフロリダのブームをおおいに後押しした。大物や実力者(財閥)、有名人に加え、詐欺師までもが押し寄せた。心地よい日差しのなかで、新しくまばゆいばかりの米国の「フロンティア・スピリッツ」は喧伝され、利用され、活用されていった。
強欲にまみれるフロリダのデベロッパーたちは、主要都市に不動産営業所を構え、動く看
板のごとくリゾートを宣伝し、人々を興奮させた。
この時期にはすでに不動産価格が高騰し始めていたので、フロリダに関心を抱く人々には、史上最大の不動産ブームのファーストフロアに入る最後のチャンスのように見えたのであろう。
そうなってくると、フロリダの不動産投資ブームは全米を巻き込むこととなった。米国の
富裕層以外の投資家(財閥)、投機資金、平均的な米国人が不動産や開発の一部のオプションを購入するまでになり、おびただしい数の人々がフロリダに殺到した。
これまでの米国の歴史のなかで最大の不動産取引が行われたことから、当然ながら、不動
産バブルが膨れ上がった。
例えばこんな出来事があった。海辺の一等地のリゾート開発について、新しいセグメントが売り出されると発表され、それと同時に誇大宣伝がこれでもかと打たれた。物件・権利を購入したいがために投資家たちがたかってきて、その数は異常なほど。
投資家たちの小切手がいたるところで飛び交い、確認するのも難儀であった。そしてその日に幸運至極にも購入できた高額物件・権利はわずか3、4日後に、3倍もの値段で転売された。
まさしく、人間の狂気からくる土地投機への狂乱の極みと言えた。
フロリダ州の不動産市場に多くの外部投資家が容易に参入できたことも、価格高騰を後押
しした。
1920年代のフロリダの繁栄は米国中の投資家たちに、不動産バブルの格好のリゾート地、熱帯の楽園のイメージを植え付け、魅了するに至った。
デベロッパーがニューヨークのタイムズ・スクエアで「マイアミは6月だ」とする巨大な
広告を掲載すると、瞬く間にフロリダの土地価格は上昇し始めた。
価格の高騰と軌を一にして、新規プロジェクト数は膨大な数に上った。
しかしながら、「買うから上がる。上がるから買う」といった狂乱が最高潮に達したとき、投機は終わるのである。
皮肉にも人々の投資意欲に火をつけたフロリダバブルの崩壊
1925年1月、米国のビジネス誌「フォーブス」は読者(投資家)に向けた重要な記事
を掲載した。
「フロリダの不動産価格は手に負えず、買い手を見つける希望だけに基づいている」
実質的な“警告”であった。
ちょうどその頃、ポンジ・スキーム(詐欺師ポンジ・スキームの名に由来する投資詐欺)
を恐れたIRS(米国内国歳入庁)が、フロリダにおける不動産投資の調査を開始した。
臨界点に達したフロリダの不動産市場への新規参入者は減少傾向となり、不動産価格の伸
びも鈍化していた。そして、バブルが崩壊するための全ての条件が満たされていった。
1926年に入ると、とうとう買い手の流入が衰え始めた。ブームに翳りが見え始めた矢
先、不運な出来事が起きた。
同年1月10日、マイアミ港の入り口に浮かぶホテルに改造されることになっていたデンマークの古い軍艦「プリンツ・ヴァルデマール号」が転覆したのだ。
国内の人口拡張に呼応し、すでに鉄道は輸送料金の引き上げを開始していた。そこへプリンツ・ヴァルデマール号の転覆事故が発生、マイアミへの航路が遮断された。
港の閉鎖に伴い、熱帯の楽園という都市イメージが崩れ出した。報道される難破船の写真が、多くの人々に酷い心理的影響をおよぼすようになった。
あれほど熱中していたフロリダに誰もが嫌悪感さえ抱く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ある。
そして1926年9月、10月に二度のハリケーンがマイアミのリゾート地を襲い、完膚なきまでにマイアミは破壊された。こうして米国における空前の不動産バブルは崩壊の時を迎えた。
翌1927年から1928年にかけて、メジャーな不動産会社が次々と倒産した。
彼らに莫大な金額を融資していた100行近くの銀行(フロリダ以外も多数含む)も倒産に追い込まれた。
このフロリダでの不動産バブルの崩壊がきっかけとなり、米国人のなかに「不動産よりも、苦労せず手っ取り早く儲けられる株のほうが投資にはいいのではないか」という気持ちが日に日に増幅していった。
これが1929年秋に起こる「暗黒の木曜日」への序章になっていくこととなる。
当時、米国の国家予算の規模が現在の日本円に換算して10兆~12兆円だったのに対して、フロリダの損失額は大きいとはいえ、規模的には1000億円強程度であった。
逆に言えば、フロリダの不動産バブル崩壊は、黄金期と言われた実体経済の拡大から、株
式市場の「上昇する、高騰する」といった濡れ手に粟のバブル経済への転換を促した。
これを機に、米国経済はいよいよ本格的な「バブル経済」へ向かっていった。
時代は熱狂、狂騒へ、そして人々の心はGreed(欲望)を強めていった。皮肉にもフロリ
ダの不動産バブル崩壊は、次なる株式バブルという火に熱狂という油を注いだようなものである。
フロリダの不動産バブルが終焉へと向かうのと時を同じくして、米国のNYダウは急落を
繰り返しながらも、その都度、力強い上げを見せるようになってきた。
第一次世界大戦後も、米国経済は活況を呈し輸出が大きく伸びたのに対し、英国はインフ
レとなり経済が低迷、貿易収支の赤字は増加の一途を辿り、ポンドは減価した。そのため公定歩合を7%まで引き上げ、通貨防衛に努めたが、国内産業には大打撃となった。
戦争の影響で一時停止していた金本位制に主要国が復帰したのは、1920年前後からとなる。金本位制のもとでは赤字国のゴールドは減少、黒字国のゴールドは増加することになるが、第一次世界大戦前後からは、英国から米国へとゴールドが流出した。
金本位制のもとでは、ゴールドが増加すればその分国内の貨幣量を増やし、ゴールドが減
少すれば貨幣量を減らすルールが守られる必要がある。するとどうなるか。
赤字国:ゴールド減少→貨幣減少→物価下落→輸出増→輸入減→黒字化へ
黒字国:ゴールド増加→貨幣増加→物価上昇→輸出減→輸入増→赤字化へ
このメカニズムが成立することで国際収支のバランスが図られてきた。
しかし米国はこの「ゴールドが増加すれば貨幣量を増やす」というルールを反故にした。
輸出増加を背景に急増したゴールドについて、その分、増やすべき通貨供給量を増やさない「金不胎化政策」を行ったのは、国内の物価高騰を避けるためであった。また価格が抑えられた結果、米国の輸出競争力は保たれる一方で、英国の貿易には不利となった。
米国では、1926年の秋以降、株式ブームが発生しており、英国から米国へと資金が流出するようになった。また1927年以降、フランス政府が英国に滞留していた資本を大量
に環流させたこともあり、英国では赤字増大とともにゴールドの流出が激しくなった。
これを受けてG4・中央銀行総裁会議(米国、英国、フランス、ドイツ)が開催された。
イングランド銀行総裁モンタギュー・ノーマン、ドイツ中央銀行総裁ヒャルマー・シャハト、フランス銀行副総裁シャルル・リストなど錚々たるメンバーが米国に渡り、FRBに対して、英国からのゴールド流出防止のための金融緩和を要求したのである。
FRBはこれを吞んだ。
具体的には公定金利の引き下げと、市場の国債の買いオペレーションの実施だった。
1914年から1928年までFRBの初代議長を務めたベンジャミン・ストロングのもとで、
1927年8月に、一時的な金融緩和策として政策金利を4%から3.5%に引き下げた。
さらにFRBは市場の国債を購入する買いオペにより、市中に大量の資金を溢れさせた結果、この資金が株式市場へと流入していった。
過熱感をいち早く感じ取った大口投資家の面々は、フロリダの不動産投機から一抜け、二
抜けして、資金を引き揚げていった。「次の投資先」を求めてマネーが向かった先が、1929年9月を目指して強気相場を展開していくNYダウの株式市場であった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
岩永 憲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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