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정한 다니엘 (다니엘 1:8-17)
행복한 추석이 되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부모 형제 일가 친척 친구를 만나면 행복합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거운 놀이도 하고, 고스톱 좋아하는 이들은 계속 고스톱만 하지요.
추석 명절은 우리 민족이 수천년간 지켜온 추수감사제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다릅니다만, 영고나 무천 동맹, 한가위 등의 이름으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드린 제사와 같은 제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추석 문화는 조상을 신으로 하는 조상 숭배로 변질되어 있습니다. 추석이 되면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을 신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후에 이제는 더 이상 조상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신으로 경배 받기에 합당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살아서도 신이 아니고 죽어서도 신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이 신의 성품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맞지만 경배받을 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것은 거짓 신을 버리고, 가짜 신을 버리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2천 600년 전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베르디의 유명한 오페라 나부코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포로 중에서 총명하고 지혜로운 청년들은 바벨론 제국의 왕실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왕실학교의 학생이 되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왕이 하사한 진미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궁중요리는 대단히 맛있는 요리였지만 문제는 그 음식이 이스라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에 금지한 음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온 신세입니다. 이 학교만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됩니다. 음식문제로 사단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이때,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이 하사한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불이익과 희생을 각오한 것입니다.
이것은 탄탄대로의 출세가 보장된 길을 걷어차는 것과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뜻을 정한 다니엘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다니엘은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다니엘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나라가 망하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바벨론이 쳐들어 왔을 때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지고 자신은 비참한 포로가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포로들은 더 이상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노예시장에서 노예로 팔려가고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던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 마르둑에게 패배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믿던 하나님이 능멸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성전은 불타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어디 너의 하나님이 있다면 기도해 보아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시편 137편에 바벨론의 강변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히브리 노예들에게 어디 시온의 노래를 한곡 불러보라고 합니다. 그들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아, 우리가 어찌 남의 나라 땅에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보냐? 자신이 믿던 하나님이 이방신에게 패배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느라고 믿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렇게 될 때, 믿음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내가 아는 청년, 대학생 하나를 만나 ‘너 아빠랑 교회 나와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했습니다. 어릴 때 우리교회 다니던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교회를 잘 다녔습니다.
그 가정이 IMF 때,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부도가 나서 야반도주를 했고, 수많은 채권자들을 피해서 먼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때까지 그 가정은 믿음생활을 하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도가 났고 야반도주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생 많이 했습니다. 불신 세계의 한복판에서 이 아이는 믿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자신이 믿던 하나님이 이방신에게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이 현실이 다니엘과 그 친구가 처한 상황(context)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의 우리 아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믿지 않는 대학교수, 믿지 않는 직장 상사, 믿지 않는 선배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불신세상의 한복판에서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그들의 이름도 개명을 당했습니다. 이방신, 우상이 들어간 이름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이지만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존하소서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를 나타냅니다. 이 청년들은 유대인에서 바벨론 사람이 될 것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신의 종이 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처한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고 내가 원치 않는 것을 교육받고 기독교인의 냄새가 없는 세속세계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편해 보이고 그것이 잘 될 것처럼 보입니다.
다니엘은 이 현실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환난과 고난 속에서, 다니엘은 견디고 버텨 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당할 때, 가난과 질병과 파산과 실직과...어떤 환난이 와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환난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다니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다니엘은 인간의 생각을 따를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지 선택의 귀로에 섰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결심했습니다. (8절)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모릅니다. 왕실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식민지의 젊은이 하나 파리 목숨과 같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세상의 왕과 하늘 왕의 명령 중에서 하늘 왕의 명령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직장의 상사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의 어느 선박회사 사장이 토요일에 “내일 주일날 나와서 선박의 짐을 내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한 청년이 “내일은 주일이고 교회에서 맡은 일이 있어서 교회에 가야 됩니다. 죄송합니다.” 사장은 “그렇다면 회사를 그만 두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해고되어 한 달 동안이나 일자리를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은행장이 이 선박회사 사장에게 “은행원 하나를 구하는데 믿을만한 사람을 좀 추천해 달라”는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사장은 ‘비록 나는 해고했지만 주일 성수를 위해 신념과 뜻을 바꾸지 않는 이 청년이라면 은행 일을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청년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 청년은 더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축복의 길입니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이 뜻을 정한 다니엘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9절에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9절)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좋은 사람을 붙여 주셨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은혜는 선물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긍휼은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마음으로 나를 아껴주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환관장이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내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좋은 사람으로 채워 주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으면, 내 마음에 은혜가 없으면 이상한 것들이 들러붙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받기를 원하시면 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은혜로 가득 차게 해야 합니다.
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 예수님께 은혜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면 은혜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이 충만하시면, 성령이 충만하면 은혜가 충만합니다. 요한복음 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했습니다.
원천교회 김요셉 목사의 간증입니다. 교회에서 학교사역을 하려고 학교를 짓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짓기 위해 땅을 판 돈이 손에 들어오자, 아버지가 “십일조 먼저 드리고 시작해야지.” 했습니다.
전체 건축 예산 중 절반이나 모자라서 여기저기 돈 꾸러 다니는 걸 아버지도 잘 아실 텐데, 기분이 좀 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목사님은 십일조로 꽤 큰돈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건축을 시작하려고 보니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구입한 땅은 산비탈 한가운데 있는 땅이었습니다. 산을 다듬어야 했고, 진입로를 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갑자기 한국 전력 직원 몇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목사님에게 뜻밖의 제안을 해 왔습니다. “고압선이 지나가는 길에 학교 설립 계획이 있더군요. 고압선을 지중화하려면 땅이 필요합니다. 둘러보니 저 산 위의 땅이 제격입니다. 그 땅을 저희 측에 팔면, 철탑도 없애고 고압선도 지중화하고 진입로도 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은 땅 위로 고압선이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학교 운동장 위로 고압선이 지나간다면 학교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 제안 덕분에 골칫거리였던 서너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었습니다.
학교 건축비도 해결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십일조가 떠올랐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순종이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의 10배로 되돌려 주셨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더니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그 얼굴을 빛나게 해 주셨습니다. 얼굴에 더 윤기가 흐르고, 아름다워졌다고 했습니다. 빛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혜를 주셔서 학문에 통달하고 명철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니엘은 영적으로 깊은 경지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꿈과 이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높이셨습니다. 바벨론의 최고위직에 올랐습니다. 나라가 바뀌어도 다니엘은 최고의 자리에 중용됐습니다. 나라가 바벨론에서 메디아, 페르샤로 바뀌지만 다니엘은 계속 총리로 영광을 누렸습니다.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다니엘과 같이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