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 미 육군참모대학의
‘우리 자신에게 거짓말하기: 군 직무에서의 부정직’
 
정직한 지휘,
상호묵인의 거짓말 관행을 깬다
 
상부의 과중한 요구에 ‘노’라고 말하지 못하는 군대
관행 같은 거짓보고·장부조작 등 조직 차원의 문제
업무부담·진급경쟁 탓…조직·지휘의 실패 인식해야
 
“왜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가?” 대부분의 관료 조직이 그렇듯이 군대도 100% 정직한 조직이라 보기 어렵다. 점검 사항 목록을 대충 작성하거나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어 있는 교육을 하지 않고도 한 것으로 보고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세계 최강의 미군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FM’이란 용어가 대변하듯 원칙주의적 태도로 상징되는 미군 역시 구조적 차원의 군 내부 ‘부정직한 행위’가 적지 않아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1일 경기도 평택 개리슨 험프리스에서 열린 미8군사령부 신청사 개관식에서 참석 내빈들이 워커 장군 동상 제막을 하는 모습. 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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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Wong & Stephen J. Gerras. 2015. LYING TO OURSELVES: DISHONESTY IN THE ARMY PROFESSION. U.S. ARMY WAR COLLEGE. Carlisle Barracks, PA. | 미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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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은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20세기 최고의 군사사학자인 존 키건(1934-2012) 교수는 이렇게 그 책을 시작하고 있다. 전쟁이 비극적이라는 지적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불필요한 전쟁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들에게 1차 세계대전(1914.7-1918.11)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우리의 역사와 만나는 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일제 식민지였고 일본의 참전 역시 미미한 것이었다.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해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서 3·1운동과의 희미한 연관성을 발견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전쟁이 조선의 운명을 가름한 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200만 명의 독일인이 헛되이 쓰러졌을 리 없다. 우리는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는 요구한다, 복수를!”이라고 외치며 독일을 장악한 아돌프 히틀러는 전선의 무명용사였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역시 1차 세계대전의 부산물이었다. 러시아 차르가 엄청난 전비를 낭비하며 수백만의 젊은이를 전쟁에 내몰지 않았다면 혁명이 그리 쉽게 성공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역사의 경로가 달라졌다면, 이념대립, 전쟁, 그리고 분단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 또한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최초의 세계대전
그런 점에서 1차 세계대전은 현대사의 궤적을 장식한 ‘대단한 전쟁(Great War)’이었다. 주전장은 유럽이었지만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난 곳은 거의 없었다. 유럽에서는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 수백만의 젊은 영혼을 집어삼키고 있었고, 아프리카 각지에서도 상대의 거점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졌다. 대서양과 남태평양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 연방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역시 군대를 파견했다. 아시아에서도 영국과 동맹관계인 일본 해군이 독일 식민지들을 점령해 들어갔다. 고립주의를 택한 미국도 독일 U-보트의 무제한 공격에 말려 참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 문명사에서 처음으로 전 세계가 전쟁에 직간접으로 뛰어든 것이다. 말 그대로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
전쟁의 확대는 단지 전투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젊은 남성이 징집됨으로써 공백이 생긴 노동력을 여성들이 빠르게 채워갔다. 군부에서도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이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부여된 것도 전쟁 수행에 여성이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독일 황제·러시아 차르의 몰락
이러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키건 교수는 이 전쟁은 불필요한 전쟁이라고 말한다. 역사교과서에서는 삼국동맹(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과 삼국연합(영국-프랑스-러시아) 간의 경쟁적 적대감이 작용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어느 한쪽이 공격받으면 반사적으로 동맹국이 개입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저자가 잘 언급했듯이 “1914년 여름의 유럽은 평화롭게 풍요를 누렸고, 그 풍요는 국제적 교류와 협력에 매우 크게 의존했기에 전면전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가장 진부한 상식이었다.” 게다가 주요 교전국은 사라예보의 총성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으며,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지도 없었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독일의 황제나 러시아의 차르도 히틀러 같은 전쟁광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꼭 필요한 전쟁이 아니었다.
만약에 “신중함이나 공동의 선의가 제 목소리를 냈더라면 최초의 무력충돌에 앞서 5주간의 위기 동안 어느 때에라도 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던 사건들의 사슬을 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키건 교수만의 주장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아무도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전쟁이 일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 위기 시 소통의 어려움, 전시 계획의 경직성, 그리고 군사적 우위에 대한 강박감이 상호작용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공격에 처한 세르비아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러시아 슬라브 우월주의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맏형 노릇을 자임했던 독일 황제의 허풍이 맞물려 들어간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역사의 운명이라면, 1차 세계대전의 발발만큼 아이러니한 운명을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전후 질서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가 바로 독일 황제와 러시아 차르의 몰락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쟁의 시작
전쟁의 전개 역시 발발만큼이나 어처구니없었다. 유럽의 군대는 19세기 나폴레옹 시대의 정신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적극적 돌격 정신이 강조되었고 정신력이 무기를 압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군 지휘관을 지배했다. 그에 비해 무기의 살상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야포와 기관총의 위력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돌격명령을 받은 보병들은 철조망으로 차단된 무인지대에서 적의 야포와 기관총의 제물이 되었다. 솜 강 전투에서 첫날에만 5만 명의 영국군이 사라져버렸다. 1915년 4월부터 12월까지 터키 갈리폴리 전투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 손실은 26만5000명이었고 터키군 또한 30만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전선은 그대로였다. 전쟁 내내 경험한 일이지만 연합군은 적절히 준비되지 않았고 적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이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불가사의한 전쟁
그런 점에서 저자는 1차 세계대전을 ‘불가사의’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는 “대전의 원인도 불가사의였고 진행 과정도 그러했다”고 지적한다. “지적 성취와 문화적 업적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동안 얻은 모든 것과 세계에 제공했던 모든 것을 서로를 죽이는 사악한 충돌에 내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이 발발한 지 몇 달 만에 분쟁을 신속하고도 결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이 도처에서 실패로 돌아갔는데도 교전국들이 군사적 노력을 계속하고 총력전을 대비해 동원하며 결국 젊은이들 전부를 실존적으로 무의미한 상호 간의 학살에 내맡기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이유이다.
더욱 불가사의한 이유는 병사들이다. “천편일률적으로 갈색 옷을 입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무명의 병사들이 싸움을 지속하고 싸움의 목적을 인정할 수 있는 결의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는가?”
그는 그 대답을 전우애에서 찾는다. “참호 속에서 친밀하게 된 병사들은 그 어떤 우애보다도 더 강한 상호의존과 자기희생으로 결합했다. 이것이 1차 세계대전의 궁극적인 불가사의다. 병사들의 증오는 물론 그 사랑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면 인생의 불가사의를 좀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
키건 교수의 이 책 역시 다른 그의 저술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문화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전쟁을 군인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삶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전투의 승패보다 전장의 참혹한 상황을 이겨내야 했던 병사의 고통과 인내를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전 세계에 걸쳐 전개된 광대한 전쟁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거시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미시적 개인들의 시선을 놓지 않음으로써 전쟁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미덕을 갖고 있다. 군 지휘관들에게는 의도하지 않은 전쟁 발발의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나,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지 않은 지휘관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일깨울 수 있는 좋은 역사교과서이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 교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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