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안개 거닐며 이 밤을 박살 낸다 자유로웠지 권태로웠다 훤한 정수리를 드러내며 이 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돌이었다 이 밤엔 서울이 있고 부산이 있다 여관이 있고 객실이 있다 본능적으로 빨라지는 나의 걸음이 있고 음악이 있고 잠이 있다 양장으로 제본된 하늘은 협탁 위에 있다 이 밤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배우고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흔들리는 밤 돌을 쥐고 흔들려는 사람에게 선생의 입김이 닿는 밤
밤이 선생이다 혹자는 말했다지만 밤의 선생은 돌이다 돌이 밤을 혼내고 또 혼내는 밤 짓다 만 석조건물이 뼈대를 드러내는 밤
무럭무럭 자라난 아이들이 개처럼 짖어대고 돌이 부풀어 오를 때 개들이 광란하는 밤 평화는 납작하고 돌은 방황한다 돌을 주우려는 사람에게 선생의 입김이 닿는 밤 안성 안개 거닐며 나는 철거를 했지 선생 몰래 드나들던 합주실의 천장을 선생 몰래 노나 먹던 곰보빵의 속내를 선명했지 어두웠다 이제 빵 같은 건 주먹으로 쥐고 만다 이제 밤 같은 건 새워버리고 만다 안성 안개 거닐며 공란을 짓이기는 밤 검은 말풍선이 터질 듯이 부푸는 밤
돌이 말하는 밤 밤이 듣기를 원하지 않고 있는 밤 밤엔 태양이 있고 있다면 말하고 있는 밤 쪼개진 침묵 빛나는 밤
짓다 만 석조건물들이 뼈대를 드러내는 밤 적어도 세 사람이 모이기로 했던 밤 찢어진 악보를 들고 모이기로 했던 밤 시커먼 복면을 쓰고 모이기로 했던 밤 밤의 선생이 돌이고 돌이 바위였을 때 우리가 우리이고 생각이 하나였을 때 깊어지는 골목을 따라 하나 둘 입주를 하고 마을을 이룬 이들 대문을 열고 닫을 때 개처럼 짖어대는 너희들이 있었기에 담벼락 뒤의 개에 대해 묻지 않는 밤 오늘도 아이들이 빈집에 숨어버린 밤 선생의 시체를 묻자 땅이 푹 꺼지는 밤
그러자 계단을 내려오는 밤 내 머리통을 내려치는 광속의 밤 떨어트린 삽 버려진 땅 부풀어 오를 뒤통수가 웃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