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그분 3주기였지요. 많은 분들이 그분에 대한 기억을 말하고 있으나, 그다지 가까운 관계가 없던 나로서는 그저 존경의 대상이었고 그만큼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그저 한 두가지의 일에 따라 바람 바꿔 불듯 바뀌면 안되겠지만 그분의 생각이나 결정 하나가 그 외의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자리인 때문에 그런 비판의 목소리마저도 그분이 감당해야 마땅했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분이 무척 정의로운 지도자였고 또 매력 넘치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튼,
지난 두 번에 걸쳐 NL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자 경향신문을 보면 재밌는 기사가 있습니다. “[2030세상읽기]그리스 급진좌파와 한국 진보정당 (바로가기)”입니다. 이 기사 중 한 단락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이들은 스탈린주의라는 낡은 사상과 결별하고 국내의 정치적 현실에 발 디딘 살아있는 진보정치를 펼칠 수 있는 정치노선을 택했다. 두 번째로 이들은 여성주의와 생태주의 등 제각각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다양한 진보적 정파들을 아우르려는 노력을 거듭했고, 이를 체계화하여 당의 근간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위기가 현실화되고 우경화의 바람이 몰아칠 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비정규직과 청년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 세 가지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진보정치의 일부가 분열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중요한 시기에 이르러서는 유럽 전체의 운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 셈이다.”
이 기사를 쓴 “이상한 모자”라는 익명 평론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 진보 세력의 가장 중심이 되는, 그리고 지금 통합 진보당의 위기 해결이라는 사안을 두고 쓴 것으로 보입니다. 좌파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좀 골치 아프긴 하지만 기억을 되살려서 생각해 보면,
북한의 주체사상은 레닌과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무척 많이 받습니다. 스탈린주의의 현실적 성격은 강력한 지도자론이지요. 그는 마르크스가 예상한 사회주의의 실현은 나약하고 예측 불가능한 노동자 계급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보았던 겁니다. 노동자에 대한 정치적 신뢰가 없던 그는 노동 계급의 정치적 전위인 공산당과 그 대표인 수령(지도자)의 지도력을 통한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를 요청했던 것이지요. 그는 결국 노동계급의 승리를 통한 국가의 소멸이 아닌 당과 지도자를 통한 강성 사회주의 국가를 주장했습니다.
사실 북한은 1960년대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방식을 배타하고 독립적인 사회주의 노선으로 길을 찾습니다. 또 70년대 초반 냉전이 조금씩 무너지고 중국과 미국이 수교함에 따라 경제적 봉쇄를 당하지요. 이런 국제 역학적 상황에서 자립적 경제구조를 추구하게 되며 그 동력으로 강력한 지도자론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주체사상이 자리잡게 됩니다.
NL과 PD 사이의 간격이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의 간격보다 넓다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그 간격의 중심에 이런 인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당 우위의 조직과 노동 중심의 조직, 지도자 우위의 조직에 대한 불신, 노동자 계급의 정치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등이 그런 것이지요. 강력한 정당 조직이 노동 계급을 견인해야 한다고 보는 NL과 노동자 계급의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정부의 수립이 목표인 조직의 차이는 매우 멀 뿐 아니라 정치적 협력조차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경향들은 지난 진보 대통합 논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유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과의 통합을 보는 관점인데 PD 계열의 좌파들은 근본적으로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NL로서는 정치적 선택에 따른 조직적 자신감이 통합으로 나타난 것이겠지요. 그런데,
나는 지금의 통합진보당을 보면서 심상정 등의 PD계열 참여자와 유시민 등이 당연히 예상했던 일이었다고 봅니다. 만일 애써 무시했다면 그건 그분들의 절대적 실패였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면 지금 위기를 불러온 당의 권력투쟁에서 미필적 고의가 있어 보입니다. 그분들은 대중적지지 혹은 당권을 얻었을지 몰라도 지지기반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서버 등 당의 기초 문건을 검찰에 합법적으로 뺏겼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당 조직의 건설을 늘 우위에 두고 민노총을 전위조직으로 생각했던 통합진보당에게 당원명부는 생명입니다. 수많은 공공노조원과 교육 노동자들의 신분이 드러날 것이고 법적 조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또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기타 활동가가 드러날 것입니다. 아마도 검찰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소위 “주사파”잡기에 나설 것이고 우리 노동세력은 대부분 잠수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권파의 몰상식한 처신보다 더 큰 위기가 온다고 봅니다. 진보운동 아니 노동운동의 근간이 뽑혀나갈 수도 있습니다. 겨우 10% 이내의 조합 조직율인 이 사회에서 말입니다. 당권파의 노선을 비판하거나 법적 위반사항을 법으로 조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하겠지만 치열한 진보 정치의 내부 노선투쟁을 통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요 다음에 PD쪽의 생각들을 한번 써 볼 생각입니다만 많은 좌파 정치세력들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어디 있는지 본격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현장이나 조직 안에서 고생하고 또 핍박받으며 일하고 계신 분들의 말을 이렇게 쉽게 몇 자로 쓴다는 것이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겉치레가 아니고 자신들의 프로그램 안에서 스스로 다변화된 사회의 수많은 새로운 계급적 전선들을 배타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 보는 것도 중요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