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이여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6)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이름과 주의 나라와 뜻을 위해 기도하기를 가르치신 우리 주 예수님은 이제 주의 백성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첫째가 지난 주에 다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기도입니다. 오늘은 주의 백성을 위한 두 번째 기도로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기도를 원어로 보면, (카이 아페스 헤민 타 오페이레마타 헤몬 호스 카이 헤메이스 아페카멘 토이스 오페이레타이스 헤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어에서 직역하면 “우리가 또한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한 것처럼, 우리의 빚을 우리에게서 용서하옵소서”가 됩니다.
이 문장에서 개역 개정이 ‘용서하다’라고 번역한 원어는 (아피에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는 (아페스)라고 하여 과거 명령형 2인칭 동사가 사용되었고, “우리가 또한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한 것처럼”이라고 할 때는 (아페카멘)이라고 하여 과거 능동 1인칭 복수 직설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개역 개정이 ‘용서’라고 번역하였지만 헬라 원어 (아피에미)는 “떠나 보내다, 헤어지다, 버리다, 포기하다. 거절하다, 곁으로 치우다, 평강 가운데 떠나게 하다, 빚이나 죄에 대해 무효화하다, 용서하다, 사면하다, 관면하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사의 목적어로는 아버지 하나님께 “용서하옵소서”라고 할 때는 (오페일레마타)인데 (오페일레마타)의 뜻은 “진 빚, 또는 의무 또는 책임, 죄를 지음으로 받아야 할 형벌”로서 일반적으로 ‘지은 죄악’을 말하는 (타스 하마르티아스)와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하여 준 것 같이”라고 할 때 사하여 준 것은 원어로 (아페카멘)인데 그 목적어는 (오페이레테스)로서 “내게 빚진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즉, 내게 죄나 악이나 상해를 가함으로 법에 따라 벌을 받아야 할 가해자, 죄인, 죄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우리 주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먼저 분명하게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이 기도에서 죄에 대한 개념을 ‘빚’이라는 개념으로 연결시킨 사실입니다. 즉, 죄와 빚은 이 기도에서 서로 같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주님이 가르치신 이 부분의 기도에서 빚이라는 단어 대신에 죄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카이 아페스 오민 타스 하마르티아스 헤몬, 카이 가르 아우토이 아피오멘 판티 오페이론티 헤민)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우리가 현재 우리에게 해를 가하는 자를 용서하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누가복음과 함께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결국 우리가 우리에게 해를 가한 자를 용서한 후에 “우리의 빚진 죄를 용서하옵소서”라고 하든지, 또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해를 가하는 상태에서라도 그 가한 자를 용서하면서 “우리의 빚진 죄를 용서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아무튼 죄의 개념을 빚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릴 때 지녀야 분명한 개념입니다.
이 개념과 관련해서 우리 주 예수께서 죄를 다룬 교훈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복음 7장의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7장 36절 이하를 보면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어떤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님께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가셔서 식사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식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뒤쪽으로 가서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의 발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파 사람이 이 장면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이 예수라는 사람이 선지자라면 지금 자신을 만지는 이 여인이 누구며 어떤 죄인인 줄을 알았을 텐데 가만 있는 것을 보니 수상하도다. 가짜 선지자일 수도 있겠구나”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네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이때 예수께서 하신 비유가 바로 빚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눅 7:41-42).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입니다”(눅 7:43).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판단이 옳도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이 여자가 많이 사랑함이라. 적게 사함 받는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3-47)
그리고 그 여자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죄 사함을 받았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7:48, 50).
예수님이 시몬에게 하신 이 비유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배우는 교훈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한없는 감사는 주 예수님으로 인한 죄 사함을 인식하는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에 대해 한없이 큰 죄책을 느끼는 사람이 그 죄책을 주 예수님으로 인하여 해결 받을 경우, 주를 향한 감사가 무한한 가운데 주를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죄 사함에 대한 가르침은 죄를 빚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에 대한 귀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은 오백 데나리온 빚을 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 빚을 진 자를 등장시켜서 두 사람이 다 탕감 받았을 때 누가 더 그들의 빚을 탕감을 해 준 채권자에게 감사하겠는가 라는 질문으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채권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신이요,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조건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그 채무자의 빚을 갚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죄 사함을 많이 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많이 감사하며 그분을 사랑하며 헌신하려고 할 것이요, 그렇지 않고 적게 사함 받은 사람은 적게 감사하며 적게 헌신할 것이요, 아무런 죄 사함을 받을 필요도 없고, 그러한 사함도 받은 적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전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진정한 감사와 사랑과 헌신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죄 사함에 대한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독히 교만한 사람으로서 자신에 대해 한없이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시몬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척하고 예수님을 초청하는 것 같이 행동하더라도 결코 마음 깊은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무한한 감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내 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지를 모르고 있고 또한 내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얼마나 한없는 고통을 당하셨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함으로 죄 가운데 죽게 되고, 그 결과 그는 영원히 스스로 죄값을 갚을 수 없는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한 죄의 형벌 아래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인 줄을 깨닫게 될 때 그 사람은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죄인일 줄 알고 두려워 떨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마련된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죄 사함으로 인해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사도 바울처럼 평생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헌신과 희생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까?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창세 전에 우리 주께서 하나님과 맺으신 새 언약인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새언약에 따른 죄 사함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량을 믿음으로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지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더라”(눅 5:20-25).
그렇습니다. 사람의 아들로 오신 나사렛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중풍병자와 맹인과 못 듣는 사람과 저는 자와 말 못하는 자들을 죄 사함과 함께 치료하시는 메시야, 즉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 6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4-6).
그러므로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중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인 사실을 알고 그가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써 실제로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죽이신 것이고, 또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살아계셔서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 대제사장으로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와 연합될 때 단번에 영원히 사함 받은 것입니다.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단번에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언약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최고 법정 앞에서 단번에 영원히 의롭다 여김을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다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6-48).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 및 그분의 부활 승천하심으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사건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이루어지는 단번에 영원한 죄 사함을 알려주는 것이 온 땅에 복음을 전하는 가장 시급한 핵심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성령 강림 사건을 계기로 새 언약의 교회 역사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첫 번째 설교를 할 때 이렇게 외쳤습니다.
[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
40 …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33, 36-41)
또한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은 동일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이일에증인이요하나님이자기에게순종하는사람들에게주신성령도그러하니라
](행 5:30-32)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
43 …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 10:39-40, 43)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고 중생한 후 세계 제1차 선교 여행을 다닐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할 때 이렇게 선포합니다.
[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행 13:27-30, 38-41)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영원한 멸망 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합니다.
[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 26:15-18)
그리고 바울은 말합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는다고 알려줍니다.
[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4-7)
따라서 바울은 신자 또는 성도는 어떤 자들인지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 덕분에 죄 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의로 말미암아 이미 영원히 의롭다 칭함을 받은 복된 자녀들입니까?
성경은 택함 받은 주의 자녀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말합니다. 즉, 죄값을 치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에 죄는 빚의 개념이며,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도다”(눅 1:68-69)
이에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는 아기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게 될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 예수)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참조, 눅 2:38).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가장 분명하게 계시한 로마서에서 복음의 핵심으로 속량을 말합니다.
[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19-26)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을 치렀다고 알려줍니다. 그것이 우리가 죄 사함과 구원을 얻은 유일한 근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바울은 디도서에서도 복음의 핵심을 속량이라고 알려줍니다.
[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1-14)
히브리서 사도도 동일한 핵심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히 2:17).
그러므로 지금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는 대상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로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기에 죄 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에 그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이미 단번에 영원한 죄 사함을 받은 자들로서 죽는 날까지 변함없이 드려야 할 가장 중요한 기도가 있으니,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즉, 이 기도는 구원 받기 위한 죄 사함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미 죄 사함을 통해 영생의 구원을 받은 주의 자녀가 드리는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지금 이 자리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 드리며 교통할 수 있는 거듭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얼마나 자주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까? 매일 항상 죽는 그 날까지 기도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이 기도를 진심으로 드릴 수 있고 그렇게 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며 죄 사함을 받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사실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 따라서 그는 죄 사함을 받은 적이 없는 바리새인 시몬처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기도는 가짜 신자와 참 신자를 나누는 시금석이기도 하고, 또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받은 새생명 또는 영생을 드러낼 수 있는 증거와 기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듣고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으면 그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런 사건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함께 동시에 발생하는 사건들입니다. 아무튼 죄 사함은 영생 즉, 새생명을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 사함은 단번에 영원한 죄 사함이며 그 증거는 처음에 새언약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생명을 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받은 거듭난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거룩한 씨입니다. 그 씨를 따라 살면 죄를 멀리하며 거룩한 삶을 살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질문에 답한 대답과 정확하게 같습니다.
마태복음 18장을 보니 이러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주님, 형제가 제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입니까?”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죄 용서와 관련하여 빚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23-35)
예수님의 이 비유에서 한 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의 품삯이고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입니다. 그렇다면 1만 달란트는 6천만 데나리온이고 그것은 한 사람이 6천만일을 일해야 하는 품삯입니다. 6천만일은 165만년으로써 사람이 평균 40년 정도 노동할 수 있다고 보면 한 사람이 4,100번을 죽었다 다시 태어나서 일해야 갚을 수 있는 액수입니다. 한 마디로, 이런 빚은 한 개인으로서는 갚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어떤 사람의 죄의 빚을 하나님이 탕감해 주신 것은 무한한 대가를 치르고 용서해 주신 것임을 알려주려는 의도이고, 그 무한한 대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속량으로 인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 즉 3개월치의 빚을 아직 돌려 받지 못했다고 해서 채무자를 멸시하며 옥에 가둔다면, 심지어 상대가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라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음에도 용서하지 못하고 보복한다면 이런 사람에 대해 하나님은 죄 사함의 효력을 거두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사람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죄 사함을 참으로 받은 자는 그 마음에 변화가 나타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용서함 같이 그도 역시 다른 사람의 죄악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교훈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거듭난 영혼들은 무한한 죄사함을 받은 자들로서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백 데나리온과 같은 죄악들 및 억울한 일들에 대해 상대가 용서를 구한다면 계속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큼 용서하는가?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고 용서하되 이러한 특성은 죄 사함을 받은 거듭난 참 성도들에게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거꾸로 말하면, 삶 가운데서 백 데나리온의 죄악을 당하게 될 때, 주께서 나를 일만 달란트를 용서함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백 데나리온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죄 사함의 즐거움과 감사와 사랑과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전혀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은 행여 구원 받은 자라도 구원 받지 못한 자와 다를 바가 없으며, 이에 구원 받은 자라도 롯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는 자인 것입니다. 또는 스스로는 구원 받은 자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 사함을 받은 적이 없는 바리새인 시몬과 같은 가짜 신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반란을 일으킨 무서운 죄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영원하시고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우리 인간들은 무한한 빚을 진 죄인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죄를 무한하신 하나님이 사하여 주실 수 있는 대가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며 죄 없는 의로운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량 외에 없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속량은 그 가치가 무한합니다. 이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공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무한한 속량 만이 만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량 외에 죄인된 인간이 죄 사함을 받을 길은 이 우주 상에 전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십자가의 무한한 속량으로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가 없는 상태이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덧입은 자이기 때문에 의를 이룬 자로 간주되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 영생이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입니다. 이에 죄 사함을 받은 자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아들의 생명을 얻게 되고 그 생명 때문에 신자들은 하나님을 예수님처럼 “아빠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5-17)
[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 4:4-7)
그러므로 성경은 죄 사함을 받는 사건을 새언약에 따라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에 내재하시는 사건과 같은 맥락에 둡니다. 즉, 주의 백성은 죄 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들인 것입니다.
[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1-4)
율법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이웃을 온 맘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무엇보다 가장 먼저 이웃을 향한 용서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았고, 또한 그렇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놀랍게도 죄 사함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경외함 같이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시 130:4, 7-8)
그러므로 우리가 백 데나리온을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 데나리온은커녕 한 데나리온 빚 진 자를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보복하려는 정신을 가진 자라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즉, 교회를 다니는 신자라고 하면서 만일 누군가를 절대 용서하지 못하고 평생 원한과 미움과 앙심을 갖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결코 주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참 성도일 수 없으며 혹시 거듭난 성도라도 고작 롯보다 나을 것이 없는 맛을 잃은 무익한 천박한 신자일 뿐입니다. 이는 우리의 자녀됨은 우리가 무한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죄악에 대해 용서하는 것으로 마땅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죄 사함을 받은 참된 성도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용서할 수 있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신 직후에 놀랍게도 용서에 대한 실천을 가장 소중히 강조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한편,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 나는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맞구나.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한 죄 사함을 받은 주의 백성이로구나’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세상 사람들도 늘 용서를 베푸는 그러한 주의 자녀를 볼 때 자신들과는 다른 대단한 높은 경지에 있는 아름다운 백성을 보게 되면서 빛 앞의 어두움처럼 수치를 느끼든지 혹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 사는 모습이며, 이러한 삶에 하나님은 친히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고 수많은 하나님 나라의 복락을 차고 넘치도록 베푸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참된 주의 자녀라면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마음으로부터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배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때마다 마음에 두어야 할 복음적인 교훈인 것입니다.
이제 이 기도를 이해한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와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기도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죄인 된 여인이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인한 죄 사함을 확증하고 주 예수님께 행한 행위를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진리와 계명과 율법을 성령 안에서 바르게 깨달은 자들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진노의 대상인지, 얼마나 지옥 불에 합당한 죄인 중의 괴수인지를 알고, 그럼에도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무한한 고통을 십자가에서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 이 죄인 여인처럼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즉, 내 모든 삶과 모든 것을 다 주께 쏟아 남들이 낭비라고 할 정도의 사랑과 헌신과 희생을 남은 평생 주께 바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행위를 우리 주 예수님을 한없이 사랑하던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도 동일하게 행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
이 때 예수께서 마리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
6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요 12:3; 막 14:6-9)
이것이 주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속량에 의해 죄 사함을 받게 된 것을 깨달은 참 성도들의 동일한 삶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후로 더욱 만 달란트의 무한한 죄 사함을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인해 단번에 영원히 받은 사실을 알고, 또한 이로서 주 예수님의 생명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아 거듭난 주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주의 자녀 된 생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일곱 번에 일흔 번의 용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삶은 끝없는 사랑과 자비 가운데,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스데반처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첫댓글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언 10장 1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