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 - 지로 디 롬바르디아 낙엽의 경주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4. 17.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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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자전거 이야기
지로 디 롬바르디아
낙엽의 경주
기살로의 마돈나
이 성당은 자전거의 수호신에게 헌정되었다.
시즌 마지막 대회
10월에 들어서면 북반구에는 벌써 추위가 찾아온다. 이제 프로 사이클링 시즌도 서서히 끝나간다. 10월은 프로 선수들이 봄부터 시작된 한 해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때다. 국제 사이클 대회의 일정에는 몇 개 대회가 남아 있을 뿐이다.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고 나면 그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지로 디 롬바르디아(Giro di Lombardia)가 개최된다. 이 대회가 끝나면 국제 사이클 대회의 대단원이 막을 내린다. 그만큼 지로 디 롬바르디아는 프로 사이클 경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로 디 롬바르디아는 1905년에 시작돼 1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대회는 이탈리아의 첫 번째 국제 대회로 밀란-산레모 대회와 지로 디탈리아보다 앞서 시작됐다. 또 파리-루베, 밀란-산레모, 플랑드르 투어,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대회와 함께 세계 주요 클래식 대회의 하나로 꼽힌다. 이 다섯 개의 대회는 모두 대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별명을 갖고 있다. 험난하기로 이름이 높은 파리-루베 대회는 '북쪽의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과 함께 '모든 클래식 대회의 여왕'이라는 명예로운 이름도 갖고 있다.
리에주-바스토뉴-리에주 대회는 가장 오래된 대회로서 '최고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봄에 열리는 밀란-산레모 대회는 '봄의 클래식'으로 불린다. 지로 디 롬바르디아는 '낙엽의 경주'라는 가장 낭만적인 이름을 갖고 있다. 지로 디 롬바르디아가 열리는 때가 되면 아름다운 코모 호수 주변의 나뭇잎이 황금색으로 물들며 이 멋진 축제에 호사스러움을 더한다.
이 대회의 코스 중에서 가장 힘든 곳은 바로 '기살로(Ghisallo)의 언덕'이다. 해발 754m인 이 언덕 꼭대기까지는 10km에 달하는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이곳을 넘어가기가 더 힘들어진다. 대회가 열리는 10월에는 춥고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1992년 대회 때는 특히 비가 많이 왔다. 그해 이 지방 출신으로 세계 챔피언이 된 지아니 부뇨(Gianni Bugno)는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그를 위해 특별히 대회 코스도 그의 고향을 지나는 곳으로 변경됐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성격의 부뇨는 떨어진 낙엽과 비 때문에 도로가 빙판처럼 미끄럽게 변하자 내리막길에서 경기를 포기해 버렸다.
2006년 지로 디 롬바르디아
기살로의 마돈나 내부의 모습
자전거의 수호신
코모 호수 부근의 언덕에는 '기살로의 마돈나(Madonna del Ghisallo)'라는 작은 성당이 서 있다. 이 성당은 자전거의 수호신인 '기살로의 마돈나'에게 헌정된 곳이다. 기살로의 마돈나는 어떻게 자전거의 수호신이 됐을까? 이야기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에 이탈리아의 기살로 백작이 이곳을 지나다가 제단에서 성모 마리아를 보고 있던 중에 노상강도를 만났다. 그가 성모 마리아에게 다가가자 성모 마리아는 위험에 빠진 백작을 구해주었다.
그 후로 기살로의 마돈나는 모든 여행자의 수호신이 됐고, 훗날 한 신부의 청원에 의해 자전거의 수호신이 됐다. 1949년 이 지역의 사제인 에르멜린도 비가노 신부가 기살로의 마돈나를 자전거의 수호신으로 지정해 달라고 청원했고 교황 비오 12세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여행자의 수호신인 기살로의 마돈나는 항상 위험에 놓여 있는 모든 사이클리스트와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도 좋은 수호신이 될 수 있었다.
'기살로의 마돈나 성당'은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찾아오는 이탈리아의 자전거 순례지다. 이 성당으로 올라가는 언덕도 지로 디 롬바르디아의 코스에 포함되는데 선수들이 이곳을 지날 때면 성당에서는 종을 울리며 선수들을 환영한다. 그리고 선수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의 안전을 기원한다.
성당 내부는 마치 자전거 박물관처럼 자전거 기념품으로 가득 차 있다. 벽면에는 이탈리아의 모든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 죽은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 채워져 있다. 또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영원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며 건강과 자전거를 타는 동안의 안전을 기원한다.
성당 입구에는 "모든 사이클리스트의 열정과 영광을 위해 이 성당을 바친다"는 글이 쓰여 있다. 성당 앞에는 지노 바탈리와 파우스토 코피의 흉상이 코모 호수와 멀리 알프스의 산들을 바라보며 서 있다. 그의 흉상에 새겨진 글을 읽어 보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에 열광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신은 인간이 힘든 인생길에서 수고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도구로 자전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