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제1독서 이사 2,1-5
제2독서 로마 10,9-18
복음 마태 28,16-20
종종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우들과 함께 하는 성지순례 때문에,
한인교회에서의 초청으로, 성지순례,
그밖에 친한 동창 신부들과의 여행 등의 이유로
외국을 나갔었지요.
물론 언어 소통이 잘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와 다른 환경과 문화를 접하면서
새로움이라는 힘을 얻곤 합니다.
그런데 하나의 기억이 떠올려집니다.
여행 중에 아주 예쁜 아이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영어로 몇 살이냐고 물어보니 다섯 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게 계속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짧은 저의 영어 실력으로는
이 아이와 긴 시간 대화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아이와의 짧았던 만남을 지금 되새겨 봅니다.
참 영어를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당연하다고요?
그런데 이 아이는 불과 몇 년 배우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 배웠던
6년간의 시간을 포함해서,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시간,
또 개인적으로 공부했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니
분명 더 많은 시간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처럼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아이가 저보다 더 똑똑하고 잘 나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영어가 그들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잘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분명히 나의 생활이 아닌 것들입니다.
일상의 생활처럼 반복되고 훈련된다면 분명히 잘 할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계명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특별히 선교에 대한 것은
오늘 복음인 마태오 복음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것으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에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 28,19-20)
그런데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이
선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제게 피정 강의 주제로
‘선교’를 부탁하실 때가 참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힘들까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나의 생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혀 시도도 않고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선교에 대해 소극적이 되게 한 것이지요.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몇몇 개신교 신자들의
공격적인 선교를 따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생활로써 직접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주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그 뜻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선교가 됩니다.
이것이 나의 생활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모습이 아닌,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을 따라갈 때 선교가 내 자신도 모르게
생활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잘 안 될까봐 걱정되신다고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께서 늘 함께 하기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빠다 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