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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스크랩 진주시계 2구간 (어석재~발산재)
조은산 추천 0 조회 132 13.01.27 20: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진주시계 2구간

 

 

2012. 11. 29 (목)

산길 : 어석재~발산재

사람 : 객꾼 조은산

거리 : 14.9km

 

 

구간거리

어석재~2.4~어석굴~2.3~오봉산(△524.7)~2.2~낙남정맥530봉~8.0~발산재 / 14.9km

 

Cartographic Length = 17.6km Total Time: 06:20

 

02(어석재~발산재).gpx

 

 

 

 

 

(중앙시장 제일식당 아침 해장국)

 

 

 

요령은 ‘전과동’이다.

06시 반에 진주문화예술회관 뒤편에 있는 객꾼 픽업, 중앙시장 해장국 주입, 김밥 3줄에 떡 한봉다리 적재한 후에 어석재 올라가니 여덟시 좀 못된다. 오늘도 날머리에 택배조가 나온다하니 차량회수는 잊어버려도 되겠다. 시계를 하니 이게 좋다. 가까이 사는 친구 하나 부르면 해결이 난다.

 

계획은 발산재 건너 만수산 넘고 한골재까지 갈 작정을 했으나, 발산재 도착해서 지도를 보니 남은 거리가 6km나 남은기라,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해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둘이서 만장일치로 발산재에서 끝을 냈다.

 

 

어석재 들머리에서 능선길과 나란히 가는 임도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3km를 40분 가량 임도탐구를 했다.

능선에 있는 삼각점 △229.8봉은 쳐다만 보고, 어석굴 고개 직전 삼면봉이 되는 ×216봉만 살짝 넘었다. 이 임도는 216봉 직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더 이상 탐구는 시계에 지장이 있다.

 

 

오늘구간 최고봉인 오봉산(524.7m)은 조망으로 치자면 방어산 보다 나으면 나았지 덜하지 않더라만, 기상청의 협조가 없어 깨끗한 그림은 못봤다. 희미한 가운데 지리산 상봉의 윤곽이 한순간씩 드러나곤 했다.

 

마산시계이기도 한 이반성면의 동쪽 경계를 따라 발산재로 내려가는 길은 낙남정맥과 겹치면서, 오르막이라고는 거의 없는 능선이라 바로 왼편에 나란히 가는 임도가 빤히 보이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임도파에게도 별 관심을 못 끄는 임도다. 막판에 800m 가량 임도를 따르긴 했지만 우리에겐 전혀 쓸모없는(!) 임도임에 틀림없더라.

 

 

 

 

 

 

07:48 어석재

08:25 마루금 복귀

08:40 원북고개 (140m 어석굴)

09:10 ×369

09:17 제산령 (297m)

10:02 오봉산 (524.7m △함안303)

10:57 530봉 (낙남정맥 분기점)

11:50 ×355  (~12:15 점심)

12:57 영봉산 갈림길

13:05~13:15 임도탐구

13:20 송전철탑

14:11 발산재 (120m)

 

 

 

 

 

 

 

 

어석재 (190m)

고갯마루에는 차 댈 공간이 없어 임도 입구로 살짝 넣어 댔다. 이 임도는 끝부분이 지도에 표기가 안되어 있지만 [사봉-부계지구 임도] 표석으로 봐서 끝판에 부계리로 내려가는 듯하다.

 

3.1km를 37분간 걸은 다음, ×216봉 직전 안부에서 왼편으로 두어 걸음이면 사뿐히 마루금에 올라선다.

 

 

씩씩하게~

 

 

 

어석재 임도탐구

 

 

 

×216

함안 군북면과 진주 사봉-이반성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이 된다. 올라서고 뚜럿한 길은 왼편으로 내려가는데 정점에서 우측길을 살펴보면 희미한 자국이 있고 리본도 몇장 나풀거린다. 내려가는 길은 줄줄 미끌리는 비탈이다.

 

 

 

 

원북고개

 

 

08:40 원북고개 (140m)

지형도에 이름도 없고, 고개 이름 붙이기도 마땅찮아, 군북면 원북리로 넘어간다고 원북고개라 하자. 아래로 지나가는 중앙선 철도 터널이 어석굴이다. 아마도 1923년 뚫을 당시에 지은 이름일테니 ‘어석’이란 이름이 필시 유래가 있음직 한데, 현재 찾을 수 있는 내용은 ‘임금이 머물다 간...’이다. 御자로 보고 이런 유래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만 지도에는 ‘魚石屈’이라 임금과는 관련이 없다.

 

 

 

경전선(慶全線)은 삼랑진에서 광주까지 연결된 철도로 일제시대에 놓여졌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다고 경전선이 되었고, 인근 역들을 보면, 창원~마산~중리~산인~함안~군북~원북~평촌~진주수목원~반성~진성~갈촌~남문산~개양~진주... 어석굴은 원북역과 평촌역의 중간이다. 어석재에서 여기로 오는 임도에서 ×208봉 아래로 지나가는 KTX 열차를 봤는데, 진주사람(객꾸이) 말로는 아직 개통은 안 되었고 시험운행 하는 거란다. (믿어도 되나 몰라)

 

 

 

원북고개  (어석굴고개)

 

 

 

 

 

오봉산 등산로

 

 

[오봉산2.36 / 여항산9.7km] 이정표가 있는 등산로는 통나무로 된 계단길이다. 급비탈이라 계단을 힘주어 밟으면 계단 통나무가 부스러진다. 올라서면 송전철탑이 있고 길은 수렛길 정도로 활짝 열려있다.

 

 

 

09:10 ×369

문패없는 무덤을 지나 올라선 봉우리는 반석같이 편편하다. 당산나무 같은 고목이 가지가 부러진 채 처량해 보인다. 낙엽에 묻힌 묘 뒷봉이 ×369봉인데 별 특징 없다. 아직 오봉산은 까마득한데도 길은 내림질 친다.

 

 

 

 

 

 

 

 

 

 

 

 

제산령

[←백이산 4.9km] [↑오봉산1.05 / 여항산8.39km]

 

 

제산령 (祭山嶺 297m)

편편한 안부에 이정표가 있다. 왼쪽으로 [백이산4.9km], 정면으로는 [성전암0.9km]을 가리킨다. 군북의 백이산(伯夷山 ×369)은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선생이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 낙향하여 살았는데, 조려선생의 충절을 중국의  백이숙제에 빗대어 백이산이라 했고, 남쪽으로 이어진 △356.2봉을 숙제봉이라 한단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백이산은 대동여지도에도 표기가 되어 있다. 바로 앞의 오봉산도 북쪽 백이산에서 봤을 때 봉우리 다섯이 이어진 것으로 보여 오봉산이라 했을끼라(조은생각).

 

 

그런데 정면 [성전암0.9km] 팻말은 방향이 틀어진 듯하다. 정면으로 오봉산 오를 때까지 우측 갈림길은 못봤으니, 여기 제산령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성전암으로 갈 수 있지 싶다.(오봉산 너머 헬기장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오봉산1.05km 여항산8.39km] 이정표 날개는 바닥에 떨어져 있다.

 

 

 

 

 

 

제산령에서 곧바로 쳐 올린다. 524m까지 바짝 쳐 올리는, 오늘 가장 힘든 구간이다. 낙엽까지 두툼하게 깔려있어 미끌리지 않으려 용을 쓰다보니 100m 오르고는 퍼져 앉았다. 떡 몇조각 나눠먹고 운기조식한 연후에 다시 올랐다. 낑낑대며 겨우 올라서면 오봉산은 더 높은 봉우리가 되어 저만치 물러나 앉고, 저건가 싶어 오르면 다시 멀어진다.

 

 

오봉산

 

 

 

오봉산 (五峰山 524.7m △함안303)

아담한 사이즈에 이쁜 글씨가 박힌 정상석이다. 정상부 보다도 남쪽으로 테라스 처럼 튀어나간 바위에 내려서니 조망은 일망무제다. 좌에서 우로 180도 조망을 훑어보다가 발 아래를 보고는 깜짝 놀라 뒷걸음 쳤다. 발 아래 절벽은 수직보다 더 안쪽으로 꺾인 오버행이다. 감히 나서지 못하고 엎드려 머리만 빼꼼히 내밀어 봤다. 수십미터 아래로 떨어진다면 사망확률 120%다.

 

한 순간 박무가 걷히면서 지리산 상봉의 윤곽이 드러나다가 이내 사라진다. 야속한 하늘이다. 남쪽 중턱에 성전암이 있고, 성전암까지 차가 올라오므로, 마음만 먹으면 다시 찾아 오기는 쉽겠다.

 

 

지리산 상봉이 보이다 말다...(바로 아래 성전암)

 

 

 

성전암 (聖殿庵) 은 네이버 지식백과에도 나오는 이름있는 절이다.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879년(헌강왕 5)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도선은 우리나라의 국토를 풍수지리학의 입장에서 살펴본 결과, 백두산의 정기가 태백산맥을 끼고 내려오다가 한 지맥은 한강 이북인 서울 삼각산에 머물렀고, 한 지맥은 남강 물을 먹고 있는 여항산(艅航山)에 와서 맺혔음을 관찰하고 이곳에 암자를 창건하였으며, 이곳이 성인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하여 성전암이라 하였다.

 

 

어석재에서 걸어온 길

박무가 걷히면 방어산까지 보이겠다.

 

 

 

 

오봉산 헬기장

 

 

정상 바로 아래에 넓은 헬기장이라 단체팀 모여앉기에 적합하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마도 성전암 길이겠고, 시계는 정면이다. 왼쪽 아래로 보이는 오곡리 도로가 낙남정맥 오곡재로 올라간다.  오곡은 다섯가지 곡물이 아니라 까마귀골짜기라.

 

 

왼편 오곡리쪽으로 약초재배를 한 모양인데, 아마도 오래전 일끼라...

 

 

 

 

 

낙남정맥 분기봉

 

 

 

 

 [발산재7.39km  여항산5.2km]

 

 

낙남정맥

오곡재에서 올라 온 낙남정맥에 올라섰다. 낙남정맥을 한 지가 10년전이라, 여항산의 그림은 기억이 난다만 여기는 전혀 모르겠다. 그 때 지나가면서 저 뒷쪽에서 다시 올라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터다. 옛 추억을 찾으며 밀감하나 먹고 간다.

 

 

 

낙남정맥과 함께 가는 진주시계

 

도면상  '큰정고개'는 뚜렷한 안부의 형태도 없이 바로 옆에 임도가 바짝 붙어있다. 예전에는 마산 고사리에서 진주 장안리로 넘어 다닌 고개였는지 모르겠으나 세월의 흐름에 흔적도 남지 않았다. 능선길이 워낙 편편해 임도로 눈길이 전혀 가질 않는다. 임도파에게도 외면받는 임도다.

 

×355봉 직전에 우측 점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고, 왼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살짝 열린 틈으로 여항산이 들어온다.

 

 

여항산

 

 

 

Since 2002.11.2.

 

낙남정맥 때 걸었던 [부산山사람들] 리본이 빛이 바랜 채 걸려있다. 산행기를 찾아보니 2002. 11. 2.이니 정확하게 10년 전이다. 산줄기를 따라가는 마루금 산행이라고는 처음 시작했던 낙남정맥이다. 이 길로 천왕봉에 올랐고, 이어서 백두대간을 시작했으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를 지날 때만 해도 지맥이 뭔지 대간이 뭔지 산자분수령이 뭔지도, 천지를 모르고 거저 남들이 하니 나도 해보자 식이었는데,  그게 10년전이었구나. 옆에 있는 팔뚝만한 나무도 그 때는 젓가락 같은 가느다란 가지였을끼라...

 

 

355봉 점심

 

 

 

 

 

 

여기가 차라리 고개라면 고개다.  왼쪽으로 임도가 빤히 보이고, 우측에도 새밭골 임도가 가까이 있다.

 

 

 

 

 

10년전 사진...

 

 

 

영봉산 갈림

 

 

영봉산(△395.2m)은 마루금의 개념으로는 이 갈림길 내려서기 전 봉우리(315m)에서 우측(서)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길은 보이지 않았고,  내려서니 이정표와 함께 훤히 열린 갈림길이 나온다. 발산재에서 올라 서는 방향이라면 봉우리 오르기 전에 사면으로 질러가는 길이 되겠다.

 

 

임도탐구  잠깐

 

 

×236봉 직전에서 큰 오르막도 없지만  능선길도 지루해 임도에 내려섰다. 시야가 넓어지니 가슴이 탁 트인다.

그렇더라도 계속 갈 임도는 아니다.  임도는 고사리로 휘돌아 내려가고, 송전철탑 직전에서 다시 산길로 올랐다.  시계는 ㄷ자를 그리며 발산재로 내려앉는다.

 

 

진전면 평암리  평거저수지.

지도에는 진로소주 마산공장이 표기되어 있는데, 진로소주 요즘도 나오나..?

 

 

 

 

 

 

 

 

 

발산재 날머리의 장승

 

 

 

옛 발산재길  매점

 

10년전에 지날 때 도로를 내느라 산을 깎고 있었는데, 지금은 고속도로 같은 4차선이 시원하게 뚫려있고, 짐승들을 위해선지 산꾼들을 위해선지는 몰라도 도로를 건너가는 생태통로까지 설치되어 있다. 계속 이어갈 산행이라면 생태통로를 건너가겠지만, 여기서 끊고 시작하는 산행이라면 왼쪽에 수발사로 건너가는 굴다리가 더 가깝다.

 

 

발산재의 생태통로

 

진주시와 마산시의 경계였는데, 마산이 창원에 통합되었으니 창원시와 경계가 되겠다. 고개 우측이 이반성면 발산리(鉢山里)인데  알 듯 모를 듯한 유래가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를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 한다. 인위적으로 대단위 호수를 만들어 외침을 막아야 한다는 전설에 따라 발산이라 하였다...." 라는 발산리 마을 유래보다도 발산재는 6-25전쟁 때 해병대의 격전지로 더 유명하다.

 

 

 

진동리지구전투(鎭東里地區戰鬪)

1950년 8월 1일부터 6일 사이에 국군 해병부대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시킨 전투이다. 당시 북한공산군은 진주를 점령한 뒤 마산방면으로 진출하고 있었으며, 한국해병대는 이를 진동리 서쪽에서 막으려고 하였다. 해병대의 김성은부대(金聖恩部隊)는 8월 3일 고사리와 개양리 일대의 고지에서 전차를 앞세운 북한공산군 6사단 정찰대대의 주력부대를 맞아 기습공격을 가하여 피해를 주고 퇴각시켰으며, 곧이어 고성방면으로부터 나타난 공산군 역시 격퇴하였다.

 

귀신잡는 해병

1950년 8월 17일 통영 상륙 작전에서 해병대 1개 중대는 조선인민군 대대 병력을 격파하고 통영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1950. 8. 23.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 마거릿 히긴스 기자는 이 성과를 보도하며 (Ghost-catching Marines)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해병대는 악마조차도 잡을 정도였다."(They might even capture the devil)고 썼고, 그 이후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신설 2번국도. 건너편에 수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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