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세의 양모(養母)를 모시고 살았던
명가문(名家門)의 하종성(河鐘成) 친구
李鶴源: 부산교대 2회 졸업,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지난 3월 7일, 친구 하종성 교장이 세수(世壽) 아흔아홉의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장두기 교
장으로부터 메일로 전해 듣고 짧은 가슴앓이를 했다. 돌아가신 분의 연세에 상관없이 누구 어머
니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으면, 나는 짧은 순간이지만 가슴앓이를 한다. 살아오는
동안 자주 앓던 그 가슴앓이가 이젠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버린 신경성 가슴앓이로 변해버려
나에겐 일종의 질병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자식인 나에게 한평생 어머니가 베풀어 주셨던 사랑과 자비, 겸손과 헌신, 절망을 이기는 인내
와 희망을 갖게 했던 원천을 잃어버린 천애고아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예수님의 사랑이나 부
처님의 자비보다 더 가깝고, 깊고, 크고, 넓게 살아있던 사랑과 자비를 잃은 자식이 되었기 때문
일 것이다.
경상대병원 장례예식장 102호에 빈소가 마련되었다는데, 직접 문상을 못했다. 상을 당한 친구
에게 참으로 면목이 없다.
하 교장은 1남 4녀의 친손 자녀들을 잘 키워주신 99세의 양모(養母)이신 안악 이씨 어머님 유택
을 고향인 진주시 일반성면 선산에 모셨다. 64세에 먼저 별세하신 양부(養父) 하삼주 아버님과
합장으로 모셨다.
하종성 친구는 명문 가문인 진양 하 씨 후손이다. 생부이신 하석주 아버님과 생모이신 진양 정
씨 어머님 슬하에 태어난 5남 3녀의 자녀 중 4번째 아드님으로 진주시 일반성면 답천리에서 태
어났다. 성장한 후, 후손이 없던 3째 숙부님의 양자로 입적하게 되었다. 양부모님께서는 34살
의 노총각이었던 하 교장 결혼도 시켜 주셨고, 하 교장 부부 사이에 태어난 1남 4녀의 금쪽같은
손자손녀를 직접 돌보시고 키우시며, 행복한 여생을 아들며느리 내외와 손자손녀들과 지내시
다가 세수 99세의 연세에 타계를 하신 것이다. 하 교장 내외가 효자효부였다.
하종성 친구 내외는 42년 동안 99세의 노모를 끝까지 잘 모신 효자효부다. 요즘 세상에 흔치않
은 일이다. 하 교장은 전화를 통하여 어머님을 여의고 참으로 마음이 허전하다 하였고, 부모님
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 집안의 예를 들면, 고부간에 한평생
사이좋게 한 집에서 잘 지낸다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나를 키워주신 어머님을 내 집에 모시지 못했던 불효자였다. 어머님께서 직접 낳으신 내 밑
의 동생 3남 3녀의 자녀들 집에도 가시기 싫어하셔서, 내 바로 밑 남동생이 고향에 가서 밥을 직
접 지어올리고 보살펴 드리는 중에 별세하여 내 동생을 제외한 모든 자손들이 불효자식들이 되
고 말았다.
하종성(河鐘成) 친구는 본이 진양(晉陽) 하 씨(河氏)다. 진양 하 씨는 삼한시대부터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1,000여년 넘게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흩어져 살며 번창해 온 선비 집안이다.
하종성 친구는 고려 10대 정종(1034~1046년)과 11대 문종(1046~1083년) 시대에 궁중에서 임
금을 모시던 사직(司直) 벼슬을 지낸 사직공파(司直公派) 하진(河珍) 선생의 30세 후손 이다.
퇴직 후, 진주에서 매 월요일 마다 같이 만나 산행을 하며, 푸른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꽃과 신
록과 고운 단풍, 산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을 벗 삼아, 신선 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2회
동기 정해근, 정갑정, 제종대, 하수종, 하종성 친구들과 2회 동기들의 친목 모임인 바랑회 친구
들이 힘을 모아 도와서 별세하신 어머님을 잘 모셨다고 하였다. 매 월요일 만나는 다섯 친구 중
에, 서각과 목각의 명장으로 유명한 하수종 친구가 하종성 사진 대작가와 같은 선조이신 하진
선생의 31세손으로 하종성 친구의 조카뻘이 된다고 하였다.
5반의 하현천 교장과 진주고등학교 내 동기인 전 MBC 유명 앵커 하순봉 친구는 같은 진양 하
씨이지만, 고려 현종 2년 1010년 거란의 3차 침입으로 고려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20여
명의 군졸들과 맨 몸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지금의 양주 지방에서 40만 거란 대군을 이끌고 친
정에 나선 거란의 성종과 담판을 짓고, 거란군 40만을 철수시켰던 시랑공(侍郞公) 하공진(河拱
辰) 선생의 직계 후손이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하종성, 하수종, 하현천, 하순봉 친구들은 거공명현(巨公明賢)과 충효절
의(忠孝節義)가 면면이 이어져 온 저명 가문 진양 하 씨 가문 후손들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
도, 오늘 날 우리들의 친구인 이 진양 하 씨 친구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늘 당당하
고, 다정다감하며 스마트 하다.
晉陽 河 氏의 시조이신 하공진(河拱辰) 선생은 진주시 남선동 진주성 공원 내 경절사 터에서 태
어나셨다. 하공진 선생은 필마 단기(匹馬單騎)로 거란 군 적진으로 달려가 거란의 성종과 담판
을 벌여 40만 거란 대군을 철수 시켰으나, 정작 선생께서는 거란군의 인질로 잡혀가 항거하다
살신구국(殺身救國)의 공을 세운 만고충신이셨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으로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륜(河崙) 선생과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만고충절(萬古忠節)의 사육신의 한 분인 충
렬공 하위지(河緯地) 선생과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하신 하계선(河繼先)
장군 등 기라성 같은 많은 선조들이 진양 하 씨 가문의 자랑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빛나
게 한 자랑스러운 우리 모두의 선조님들이다.
진주를 충절의 고장으로 우뚝 서게 한 분이 하공진 선생과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사수한 김시민
(金時敏) 진주 목사와 하계선 장군, 최후의 일인까지 진주성을 지키다 순절한 수많은 진주백성
들이었다. 진주라는 이 고장에 이 같은 충절이라는 정신적 문화 바탕이 세세손손 내려오지 않았
다면, 오죽하면 기생 신분이었던 일개 여성이었던 논개 마저도 적장 목을 껴안고 푸른 남강에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했었겠는가!
나는 2013년 3월에 전립선암 선고를 받고 서울대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은 이후, 금년 201
8년 3월이 암치료를 시작한지 만 5년이 되는 해다. 지난 5년 동안 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 저자
(著者)인 하종성 친구가 보내준 ⌜회상의 여운(回想의 餘韻)⌟ 사진 Ⅰ집, Ⅱ집, Ⅲ집에 실린 아름
다운 사진 한 장, 한 장이 암으로 어쩔 수 없이 당황한 내 마음을 진정시켰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정서적 안정을 찾는 데, 크나 큰 도움을 준 내 암 치료의 명약 중의 하나였다.
저자인 하종성 친구의 철학과 인문•자연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명 사진들이 속삭이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금방 저승사자가 부를지도 모를 음산하고 울적한 밑바닥 마음을 뿌리치고
달랠 수 있었다. 각고의 노력과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만든 귀한 사진첩을 강원도 북동쪽 끄트
머리 춘천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이 이학원이를 기억하고 보내준 내 동기 친구인 하종
성 교장이 고맙지 않겠는가!
암환자에게는 약물치료 외에도 그림치료와 음악치료와 식이요법 치료가 병행되어야 5년 이상
을 살 수가 있다고 하였다. 음악치료에는 Youtube의 Andre rieu 음악을 즐겨 들었다. 식이요
법 치료는 아내가 고생을 했다. 그 외에도 가족들과 선배 동기들의 간단없는 조언과 용기를 갖
도록 격려해 주신 따뜻한 마음 때문에 여태까지 살 수 있었다. 나는 여러분의 도움으로 5년이란
세월을 살 수 있었으니, 지금은 여한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친구 하종성 교장은 자랑스러운 친구다. 모교 재학시절 남상돈 교수로부터 학문적인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1964년부터 9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다가, 1972년 중등
학교 지구과학 검정고시에 합격, 1973년부터 26년 동안 중등교사, 교감, 교육연구사를 지냈고,
5년 동안 교장으로 봉직하며 사천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을 맞으며, 40여년간 정들었던 교
단을 떠나 가족과 친구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친구들 곁으로 돌아온 하 교장은 시조창의 명인이 되어 지금도 우리들에게 창도 들려주고, 국궁
과 등산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으로 국내와 세계 각 지역으로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사진첩으로
발간하여, 이 세상에 온 하종성 교장을 길이길이 남기고 있다. 교직에 봉직하는 동안 수상한 수
상경력도 화려하다. 장관표창을 3번이나 수상했고, 1985년 국무총리상을 수상, 2004년 사천중
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 하면서 정부로부터 황조근정 훈장을 수상했다. 자랑스러운 수상 경력
이다.
하종성 교장!
나의 경우에는 부모님을 여인 슬픔이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1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네. 무한
한 절대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부모님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잘 못 모신 자식의 후회가 조석으
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네. 하루해가 저무는 석양이 되어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이 들면, 추운 겨
울이 지나고 봄이 와서 나뭇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는 이른 봄이 되면 나에게도 죽음이란 것이 아
주 내 가까이에 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문득 문득 있다네.
99세의 어머님을 여이고 마음이 슬픈 친구에게 나의 사모곡을 들려드리며, 친구 마음을 조금이
라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네. 용서하시게.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다시 만나보세.
엄마 얼굴
생후 9개월 만에
엄마가 죽었다
나는
엄마 얼굴을 모른다
무슨 원수지간인지
세상에 사진 한 장을
남기지 않았다
나는 한평생 엄마 얼굴을
찾아 먼 길을 떠다녔다
혹시 내 얼굴 어딘가에
엄마 얼굴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 아닌가
엄마와 같은 시기에 시집왔던
동네 아주머니들께도 물어도 보고
함 참 거울을 들여다보고
엄마 얼굴을 찾아보기도 한다.
혹시 손자인 아들 얼굴에
할머니 얼굴 흔적이
남아 있을까
혹시 재롱이 한창인
네 살배기 손녀 얼굴에
증조할머니 피색이
전해져 내려왔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을
쳐다보고 찾아보기도 한다.
나는
초등학교 어린 제자들 얼굴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제자들 얼굴에서
대학 강의실 제자들 얼굴에서
DMZ 특강 아주머니들 얼굴에서
내 마누라 얼굴에서도
내 엄마 얼굴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며
구름 같은 인생길을 떠다녔다
내 엄마 얼굴은
활짝 핀 4월의 벚꽃이
5월의 짙은 라일락 향기가
온갖 유혹을 다해도
지지구구 지지구구
수놈 비둘기가
사랑의 찬가로
숲 속 삶의 환희를
그렇게 아름답게
노래해도
나타나질 않다가
뇌성벽력 몰아치는
여름이 지나가고
초가을
파란 하늘이 나타나면
소슬바람 탄
산봉우리 흰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 못난 아들 앞에
찰나에 나타났다
찰나에 사라진다.
2018년 4월 14일
춘천에서 이학원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