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언약의 생명
성경 말씀: 이사야 61장; 마가복음 10:17-31
요약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로 말해집니다. 즉 예수님으로 새로운 생명을 뜻합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은 생명으로 서사됩니다. 복음서에 서사된 예수님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은 예수님으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고 말해집니다. 영원은 시간의 길이로 말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음 믿음
영원한 생명은 요한복음 3:16에 이렇게 표현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이것은 개인들에게 들려지는 진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 예수님을 믿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이해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은 개인이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그는 개인으로 머물러왔기 때문에 그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는 그의 개인 수명이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개인에게 적용되면,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여겨집니다.
개인이 요한복음 3:16을 자기의식으로 이해하려 하면, 그는 이렇게 이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가 고정된 자기의식으로 그것을 읽으면, 그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어떻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16은 하나님으로부터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으로 읽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이나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그분 뜻으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16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분 자신이 세상과 함께하시려고 뜻하시는 것으로 읽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함께로 세상에 보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은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함께를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믿으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그들의 믿음은 그들 마음의 결정이니, 그들을 고립되게 합니다.
사람이 개인으로 고립되면, 자신의 태어난 수명으로 삽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더라도, 단지 자신의 일입니다. 그가 개인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은 그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즉 개인의 믿음과 영원한 생명은 독립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경우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영원한 삶을 삽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보다 영원한 생명으로 믿음을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믿음으로 말해지면, 믿음은 개인의 믿음으로 쉬이 여겨집니다. 영원한 생명은 개인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믿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말해지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개인의 믿음으로 여겨지게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은 개인의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함께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으로 이루어집니다.
함께로 영원
하나님의 함께로 영원한 생명은 새 언약의 삶입니다. 새 언약의 삶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서사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명의 서사입니다. 복음으로 서사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서사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서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는 믿음의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개인의 마음에 가두어지게 되지 않습니다. 각 개인이 마음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는 경우가 아닙니다. 마음에 모셔지는 그리스도는 우상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예수님은 영원한 삶에 함께로 말해집니다. 즉 새 언약의 삶에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고백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은 영원한 삶입니다. 영원한 삶이 말해짐으로, 개인으로 말해지게 되지 않는 측면이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3:16은 영원한 생명인 새 언약의 삶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새 언약의 삶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삶, 곧 새 언약의 삶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어떤 것이라고 정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명시적으로 정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함께가 드러나며, 영원한 생명은 펼쳐집니다. 새 언약의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말함으로 보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존재를 뜻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말함은 언약의 뜻을 갖습니다. 그리고 영원은 하나님께 부여됩니다. 언약의 백성은 그들의 하나님은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언약에서 다루어집니다. 존재론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지 않습니다. 즉 존재에 의해 지니게 되는 생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끝없는 수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존재는 존속하는 수명으로 말해집니다. 영원한 생명은 존재의 수명으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수명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수명은 존속의 뜻을 지닙니다. 존속 후 소멸하는 것이 수명으로 말해집니다. 그러나 생명은 자람과 번성으로 말해집니다. 씨는 수명이 아닌 생명으로 말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은 자라고 번성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은 수명으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생명으로 말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은 소멸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언약의 삶은 존속적으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은 영원합니다. 이 경우 영원은 끝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원은 씨와 같은 내재된 생명을 뜻합니다. 영원은 생명 가운데 영원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즉 그것은 생명의 수식어가 아닙니다. 수명의 수식어로 생각되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언급될 때, 영원은 하나님의 수식어가 아닙니다.
이루어지는 영원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영원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인의 수명 의식으로 영원을 생각하기 때문에, 수식어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은 새로운 생명으로 혹은 영원한 생명으로 표현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이 말해지는 한, 영원은 그 안에 내재됩니다. 예수님으로 새 언약의 삶은 영원합니다. 새 생명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새 언약으로 영원한 삶을 삽니다. 새 언약은 복음으로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으로 예수님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였는지의 서술을 위해 써지지 않습니다. 그 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보이기 위해 써집니다.
영원은 시간의 길이로 생각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수명으로 살기 때문에, 시간의 길이를 의식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삶을 사는 이들은 시간의 길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시간은 측정된 시간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의 시간은 생명의 펼쳐짐으로 다루어집니다.
영원한 생명의 펼쳐짐과 시간의 펼쳐짐은 같이 갑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펼쳐지는 시간은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수명으로 시간은 시간에 측정됩니다. 그러나 영원한 삶은 시간으로 펼쳐갑니다. 이 경우 시간은 생명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에 두어질 수 없음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 또한 시간에 두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일은 시간의 틀에 설정되지만, 하나님의 함께는 시간의 틀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시간은 하나님 함께로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시간의 펼쳐짐으로 영원합니다.
영원은, 예수님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역사성을 띠지 않기 때문에, 복음, 곧 예수님의 이야기로 말해집니다. 복음의 예수님 이야기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의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성이 아닌 영원성으로 읽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새 언약의 삶은 영적으로 펼쳐집니다. 영성을 보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은 영성을 띱니다. 영원은 영적으로 말해집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의 영원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됨의 영원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막혀질 수 없습니다.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새 언약의 삶 또한 막혀질 수 없습니다. 영성을 막을 어떤 조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영성은 시간에 담아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성령님으로 갱생이고 영원한 생명은 성령님으로 갱생의 새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영원한 생명은 영적으로 다루어집니다. 예수님에 의해 말해진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세상을 저희 중심으로 살려고 합니다.
저희가 지닌 수명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 저희를 아버지와 함께로 살게 하옵소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옵소서.
저희가 지닌 수명이 아닌
아버지와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명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