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회에는 깨달음이나 명상, 호흡, 마음수련 등을 내세워서 돈벌이를 하는 수련단체가 아주 많은데, 고층차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체계적인 이론도 없고 바른 가르침 또한 아닌 곳이 거의 대부분이라서 수련자들에게 상기증, 기체, 빙의, 정신이상, 금전갈취 등의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으며 아무도 이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아무데나 찾아가서 함부로 수련하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할 일이다.
깨달음은 경지가 있다. 경지에 따라 지혜와 법력과 神體의 크기도 서로 다르다. 우주의 진리는 자기가 깨달은 수준까지만 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실상과 이치는 보지 못한다.
그래서 지혜가 낮은 층차로 열린 사람은 우주의 진리를 다 아는게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주의 근본적인 진리에 대해 알 수 없기에 핵심을 말하지 못하고 표면적이거나 추상적인 말을 주로 한다.
하물며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스승 노릇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道를 구하는 것은 소경에게 서울 가는 길을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장님이 어찌 종착지까지 인도할 수 있겠는가!
그럼 가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과연 어떤 곳이 正法(正道)인지를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
붓다는 열반하시기 전에 이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하나 남겨주었다.
붓다께서 법을 전할 시에도 인도에는 상류 기득권층이 믿던 바라문교를 비롯한 6개의 수행단체(六師外道)가 있었는데, 수밧다라는 구도자가 어떤 곳이 바른 곳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결국 붓다를 찾아오게 된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일러준다.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없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없다.
수밧다여, 그러나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가지 성스러운 도(팔정도)가 있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도 있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있다.
수밧다여, 이 법과 율에는 여덟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 수밧다여, 그러므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서는 사문들이 텅 비어있다.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
(출처 - 마하빠리닙바나경, 대반열반경, D16, 각묵스님역)
사문이란 아라한, 아나함, 사다함, 수다원 경지의 고층차 수행자를 말한다.
팔정도는 바른견해(正見), 바른사유(正思維), 바른말(正語), 바른행위(正業), 바른생활(正命), 바른정진(正精進), 바른마음(正念), 바른선정(正定)을 말하는데, 이는 戒(正語, 正業, 正命) ㆍ定(正精進, 正念, 正定) ㆍ慧(正見, 正思維) 수행법을 8가지로 세분화 해놓은 것으로
붓다는 아난다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제자들에게 계정혜 수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계를 지니고 선정을 닦아서 지혜를 깨달으라.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사람은 덕망이 높고 명예가 드날리게 될 것이다.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解脫)이라 한다.
이 계행(戒行)이 있으면 저절로 선정(禪定)이루어지고, 선정이 이루어지면 지혜(慧)가 밝아지리니, 이를테면 흰 천에 물감을 들여야 그 빛이 더욱 선명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를 닦으면 道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고, 일심으로 부지런히 닦으면 이 생을 마친 후에는 청정한 데에 들어갈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면 스스로 이 몸을 버리고 다시 나지 않는 줄을 알아라. 만약 계정혜의 행을 갖추지 못하면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갖추면 마음이 저절로 열리어 문득 천상, 인간, 지옥, 아귀, 축생들의 세상을 보게 되고, 온갖 중생들의 생각하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시냇물이 맑으면 그 밑에 모래와 돌자갈의 모양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밝으므로 보고자 하는 것이 다 나타난다. 도를 얻으려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마치 물이 흐리면 그 속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마음을 깨끗이 지니지 못하면 세상에 나고 죽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스승이 보고 말하는 것은 제자들이 마땅히 실행해야 할 것이다. 스승이라 할지라도 제자의 마음 속에 들어가 그 생각을 잡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이 청정한 사람은 道를 스스로 얻을 것이다. 여래는 청정함을 가장 즐거워 한다."
- 장아함경 -
위와 같이 붓다는 어떤 수련법이든 그 속에 팔정도가 있으면 고층차 사문들이 배출되나, 팔정도가 없으면 사문들이 배출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팔정도는 과거의 모든 부처들이 걸었던 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행승들이여, 전생에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팔정도)이다.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마음, 올바른 선정이다. 이것이 수행승들이여, 과거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이다."
(나가라경-Nagarasutta-도시의 경, 상윳따니까야 S12:65(7-5),전재성님역)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남이 주지 않은 것을 갖지 말며, 음행과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삿된 견해로 業을 짓는 모든 악행을 금하고 선을 실천하는 계율을 지켜야, 마음이 청정해지고 화평해져 선정에 깊이 들어갈 수 있고, 선정에 깊게 들어가면 지혜가 열리게 된다.
이와같이 계율과 선정과 지혜는 상호보완적이면서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정혜 중에 어느 하나가 빠지면 마치 중간에 다리가 빠진 사다리와 같아서 제대로 오를 수가 없다.
따라서 그 당시 계정혜를 함께 닦지 않는 다른 단체는 사문들이 텅비어 있고, 오직 계정혜를 함께 닦고 있는 당시의 붓다의 제자들중에서만 고층차 경지의 사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계율을 지켜서 업을 짓지 않고 선정에 깊게 들어 지혜를 계발하는 것은 탐진치가 모두 소멸되는 해탈의 기본이치이기 때문에 팔정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어떤 수행법이든 그 속에 계정혜의 원리가 담긴 실천적 수행법이 없으면 깨달음에 근접한 고층자 경지의 사문도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붓다의 여러 제자들이 고층차 경지에 도달하여 그분의 가르침이 正法임이 실증된 것처럼, 깨달음을 내세우는 여러 수련단체 중에서 어떤 곳이 正法인지를 볼려면 그 단체에 고층차 경지의 수련자들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보면 될 것이다.
설령 자신들의 방법이 최상의 정법이라 주장하고, 하는 말들이 겉으로 보기에 좋은 말 같고 일부분이 사실과 부합하고 이치에 맞는 듯 해도, 그것이 현실 속에서 사실로 증명되지 않으면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기에 사람을 해탈시킬 수 없다.
본인이 30여년 전부터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접하고 그 단체를 주의깊게 관찰해 온 바에 의하면, 성명쌍수의 佛法(法輪大法)을 전하는 李洪志 대사의 제자들 중에 고층차 경지에 도달한 제자들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法輪大法의 가르침엔 계정혜의 원리 뿐만 아니라, 유불선 三敎의 이치를 다 포함하고 덮고 있는 大法(大道)으로 우주만물의 근본특성인 眞善忍에 동화되고자 심성수련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고층차 경지의 제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몇몇 성자분들이 자신이 깨달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인과의 법칙을 설하고 생사윤회에서 해탈하는 가르침을 남겼지만, 인류의 근본적인 미스터리에 해당하는 생명의 기원과 물질의 근원, 우주의 특성(우주의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만물에 작용하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자비(박애)가 중생들의 본성이라는 것과 마음을 깨끗이 닦아 본성을 회복해야 생사윤회에서 해탈하여 영혼의 고향인 천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공통적으로 설했을 뿐이다.
본인이 탐구한 바에 의하면 성경, 불경, 도덕경, 기타 영적스승들의 가르침을 다 찾아봐도 우주의 특성과 우주의 구조, 생명의 기원과 물질의 근원, 덕과 업력, 情의 실체, 제3의 눈, 첨단과학과 외계인의 비밀 등등 천기를 투철하게 밝힌 스승은 현재 李洪志 대사가 유일하다.
李洪志 대사가 방출하는 고차원의 에너지와 법력은 과학기술계의 측정과 수많은 제자들의 체험으로 증명되었고, 대각자에게만 존재하는 法身과 法輪 등도 천안이 열린 많은 수련자들에 의해 그 존재가 입증되었다.
인류가 사는 현상계에는 음양의 상생상극 작용때문에 국가에서 어떤 정책을 실시하든
항시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또 반대하는 사람이 동시에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대각자가 출현하여 진리를 전하면 사이비도 덩달아 같이 창궐하는데, 사람들은 그 중에서 자신의 의식수준에 따라 대각자를 따라 진리를 실천하기도 하고, 반대로 핍박하고 배척하기도 한다.
과거에 붓다와 예수 그리고 그 제자들이 악인들로부터 박해를 당해서 죽을 뻔하거나 죽임을 당한 것처럼, 무신론을 신앙하는 사교인 공산당은 李洪志 대사를 여러차례 암살하려 하였고, 그 제자들은 지금까지 잔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은 자유의지에 따른 각자의 몫이며, 그로 인한 결과도 각자가 선택한대로
고스란히 거두게 마련이다.
성자들이 이르길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대각자를 만나기는 더더욱 어렵고, 설령 대각자를 만나도 믿음을 내기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진리를 탐구하는 분들이라면 李洪志 선생의 설법을 잘 읽어보시면 비록 수련은 못할지라도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李洪志 대사의 주요설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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