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니다 글· 박치완/철학박사, 외대 강사
1.
나는 내가 아니다.
묘한 일이다.
몸도 마음도 내가 주인이 아니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머리는 더더욱 제 따로
천방지축이니,
굴렁쇠처럼 밖으로 싸돌고 있으니,
참으로 묘하고 묘한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2.
예나 지금이나
눈 휘돌리며 세상 두리번거리는
나는 누구인가?
나 아닌 것이 날 이끌고 다니는
나는 누구인가?
나 아닌 것에 이끌려 사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3.
그러니까 난,
망상과 무지로 집산(集散)된
헛것 덩어리가 아닐까?
숨이나 간신히 쉬고 있는
오욕(五慾)으로 병들은
고깃덩어리일 수도 있고.
4.
선업(善業)은 쌓은 바 없고
염불(念佛)은 잊은 지 오래고….
내가 누구인지 물을 겨를도 없이
숨가쁘게 살아온,
살아가는 반편이 인생.
매일 매일의 일상에 묻히어
나른하고, 고단한
무지하고, 가엾은
아! 나는 누구인가?
5.
이런 시정잡배 같은 사람에게 불교 인연이야기를 써달라니 나로선 너무 벅찬 주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와 ‘나’의 아이덴터티를 묻고 있던 터였다. ‘나는 누구인가?’ 그런 차에 이 글을 부탁 받은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하기엔, 그러니까, 무연(無緣)에 가깝지 않은가! 난 기자님께 되려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댄 어떠시오?” “요즘 어떻게 지내시오?” 라고.
6.
사실 나와 불교의 인연은 횟수로 치자면 꽤나 오래 되었다. 30년 가까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초파일날이면 어머님께서는 목욕재계하시고, 쌀 두어 되를 흰 보자기에 싸 가지고서 당곡이라는 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한 절을 가끔 찾으셨다.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가족의 건강과 복을 빌러 다니셨을 게 분명하다. 초파일날은, 그러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로 하자면, 어머님께 허락된,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일년에 딱 한 번뿐인, 유일한, 외출이신 셈이다.
두어 차례 어머님 손을 붙잡고 절에 다녀온 기억도 생생하다.
면내에 하나 뿐인 절이라 절의 규모에 비해 초파일날 절을 찾은 촌농촌부 수는 당연 많았고 산나물비빔밥을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먹이기 위해 법회 후 약간은 아수라장 같았던 풍경도 기억이 난다.
나의 가슴에선 막연하나마 그 때를 계기로 해서 불심(佛心)이 싹트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상을 처음 본 것도, 연등(燃燈)을 처음 본 것도 그 때이다. 나와 불교와의 첫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81년 대학에 입학해선 자연 불교학생반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시대가 철학을 필요로 했다.
뭔가를 붙잡지 않으면 흔들리는 시절이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 했던, 정치적으로 암울한, 정신적 혼돈의 시대였다. 난 서클에서 매일 뒹굴며 살다시피 했다, 나의 내면의 정체를 찾으려고, 천하의 심법(心法)을 설하신 부처님께 호소하며 말이다.
종손인 내가 혹시 출가(出家)를 할까봐 어머님을 비롯하여 주위 친지들께서도 걱정하셨을 정도로 부처님께 매달렸던, 그러나 가장 행복했던 나의 불교학생반 시절, 난 그때의 업으로 오늘을 버티며 살고 있다.
1987년 화계사 큰스님으로부터 묘법(妙法)이란 계명(戒名)을 받은 것도, 전공을 불문학에서 철학으로 바꾸어 버린 것도 모두 불교와의 인연 덕분이리라!
7.
세월은, 문자 그대로, 유수(流水)같이 흘렀건만, 솔직히 그 동안 난 속사(俗事)에 날 놓고, 넋을 잃고 살았다. 청탁을 기회로 되돌아보니 이를 더욱 절감한다. 밑동 잘린 나무의 나이테를 세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의, 오늘의, 삶이, 감히 ‘불교적’이라고 하기엔 많은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출가를 생각하기도 했던 예전의 내가 지금은 일상의 삶 속에서 불교신도면 지켜가야 할 오계(五戒) 마저 온전히 지켜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8.
노력하려 한다. 꼬부랑 글씨에 구멍 숭숭난 나의 혼을 초록심으로 가득 채우자면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를 둘러보는 시간이 최근 많아져 다행이다. 말똥말똥한 의식으로 살고 싶다. 나의 영혼의 언어를 찾고 싶다. 부처님 품에서 노닐고 싶다, 다 버리고.
9.
그분은 나의 혼불이셨다.
그분은 나의 등불이시다.
여력(餘力)을 다해 이 가을
그분의 살내음을 맡아보련다.
맡아보려 한다,
밝고 맑은 투명 지혜로 살기 위해.
10.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어머님께서 “임자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를 종종 흥얼거리시는 것을 듣게 된다. 이제 당신 자신이 수덕사이신 거다. 그 깊고 깊은 사려의 등불, 인생수행의 결과로 터득하신 나름의 삶의 지혜, 그 동안 방일(放逸)했던 나에게 힘이 되어주기에 충분한 가르침이시다. 매운 고추를 씹었을 때처럼 톡 쏘는 그러나 야단스럽지 않은 소박한 교훈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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