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원폭 피해국인 일본과 한국이 빠진 이유는?
[NPT 회의 참여기](下) NPT 준비회의 결산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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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5-06 오후 5:24:32
핵확산금지조약(NPT) 준비회의가 4월 22일부터 5월 3일 일정으로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개막됐다. 2015년 뉴욕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이 회의는 핵문제를 둘러싼 지구촌의 갑론을박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필자는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 회의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이 회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순서 '북한과 NPT'(☞바로가기)에 이어 준비회의를 총평해보고자 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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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11일 평양에서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 탈퇴 지지 100만명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다. 북한은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했다가 같은해 6월 미국과 고위급회담 이후 탈퇴를 보류했다. 그러나 2002년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기개발 의혹을 제기하자 2003년 1월 NPT 탈퇴를 선언하고 공식 탈퇴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1970년에 발효되어 1995년 무기한 연장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가장 희한한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대표적으로 성공한 군축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회원국이 189개국에 달하는데, 이는 네 나라를 제외한 유엔 회원국 대다수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핵보유국은 북한을 포함하더라도 9개국인데, 그나마 이 정도로 묶어둘 수 있었던 것도 NPT에 힘입는 바가 크다는 지적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문제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비확산'에 초점을 맞춘 조약이다. 이 조약은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을 한 미국, 소련(이후에는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하면서 핵폐기 의무를 '선의(good faith)'에 맡겨 버렸다. 반면 비핵국가들의 핵무기 개발 금지는 의무사항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이를 철저하게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NPT를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으로 일컫는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물무기금지협약, 화학무기금지협약, 대인지뢰금지협약, 집속탄금지협약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군축 조약은 해당 무기의 사용 및 실험을 금지하고 폐기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NPT에는 이런 내용들이 없다. 조약에 따르면 핵보유국이 핵무기를 사용해도, 핵실험을 해도, 핵무기를 추가적으로 생산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보완책들이 모색되고 있지만, 핵보유국들 내의 이견과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사이의 입장 차이로 인해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태이다.
아직도 높은 경계 태세?
2015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리는 본회의를 앞두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106개국 정부 대표와 53개의 NGO 관계자 및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차 준비회의에서도 이러한 한계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5월 3일 회의 결과를 담은 요약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는데, 요약문에는 핵보유국들의 핵 독트린, 투명성의 부족, 핵 신고의 표준 제정, 핵보유국들의 핵폐기 의무 소홀 등이 두루 담겼다.
특히 요약문에서는 "많은 나라들은 많은 핵무기들이 여전히 높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우발적인 핵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핵보유국들은 핵미사일 발사 태세를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핵무기와 운반수단, 그리고 관련 인프라가 계속 현대화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는 꾸준히 핵무기 감축에 나서왔다며 문제는 자신들이 아니라 NPT에서 탈퇴해 핵무기를 만든 북한과 NPT 회원국이면서 조약상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는 이란에 있다고 주장했다.
4월 29일에는 이집트 대표단이 NPT 회의에서 1995년에 합의된 '중동 비핵지대 창설'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하면서 철수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중동 비핵지대 창설은 아랍 국가들을 비롯한 상당수 비핵국가들이 1995년 NPT 무기한 연장의 핵심적인 조건으로 내걸었던 사안이었다. 또한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핵문제 논의를 기피해온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로 이 구상은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어? 일본과 한국이 없네
이번 NPT 준비회의 내내 가장 주목을 끈 부분은 '핵무기의 비인도성'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 점이었다. 회의 중반인 4월 24일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제안과 77개국 정부의 연명으로 '핵무기의 인도적 영향(humanitarian impact of nuclear weapons)에 관한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공동성명에서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핵무기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국제사회는 핵무기가 또 다시 사용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폐막일에 발표된 요약문에도 이 부분은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핵폭발에 의한 결과는 용납할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하고 "사회경제적 발전에도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에 추가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세계 유일의 피폭 국가인 일본 정부가 공동성명 서명을 거부한 것이다. 남아공을 비롯한 공동성명 제안국들은 일본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적극적은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 정부 대표단은 "어떠한 환경에서도(under any circumstances)"라는 표현의 삭제를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명을 거부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 대표단은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핵폭발의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일본이 처한 안보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장, 그리고 일본 NGO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가즈미 마쓰이 히로시마 시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공동성명은 히로시마의 염원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고 개탄했다. 토미히사 타유 나가사키 시장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의 태도는 "원폭피해자들의 노력을 수포로 만든 것이자 핵폐기를 위해 노력해온 많은 나라들을 실망시킨 것"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