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고개
오랜만에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올랐다. 전철역에서 내려 청사포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60년대 중반, 군복차림으로 해운대 백사장에서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엔 숲이라곤 없는 민둥산으로만 나와 있는 곳이었다. 그 이후 18홀 골프장이 들어섰다가 다시 서민형 AID아파트 단지로 바뀌기도 했었다. 그랬던 언덕이 해운대 신시가지가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원래의 산은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와우산이라 불리었다. 도시계획 때 골목길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해월정으로 향하는 길은 자주 막혔다. 와우산 속에 '오산'이 또 있었는지 ‘오산공원’ 간판도 보였다. 산책 나온 노인에게 길을 물었더니 양팔을 흔들 뿐 없는 길을 그가 무슨 수로 가르쳐줄 수 있겠는가. 연전 82세로 떠난 직장 선배의 아파트 앞을 지나자니 상념이 밀려들었다.
때론 조물주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했지만 병문안을 할 수 없었다. 소탈한 선배에게 어찌 실어증을 안겨주었단 말인가. S대를 나왔지만 격의없이 후배를 대하는 선배는 따르는 후배가 많았다. 그가 애주가여서 더욱 그러했을 터이지만 포장마차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보다 직장은퇴자 단체를 먼저 맡았고 그때의 탁상용 명패를 전달하러 아파트를 방문한 것이 선배와의 마지막 조우였다.
역사 속 경성방송국이 청취자들에게 물어서 만든 '조선팔경가'에 이곳 달맞이고개가 들었었다. 금강산과 한라산, 석굴암, 그리고 함경도 부전고원과 평양 대동강 모란봉 을밀대,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 뗏목도 이름을 올렸다. 1936년 일제 강점기에 나온 노래여서 남북 분단 이후 '대한팔경'으로 바뀌면서 북한 쪽 명승지를 빼고 강릉 경포대와 낙산사 저녁종이 들어갔다.
해월정에선 추리문학관도 가깝다. 대작 ‘여명의 눈동자’로 세운 문학관이다. 2000년대 초, 우린 부산대학 사회교육원 소설창작반 수료식을 이곳에서 가졌다. 김성종 관장과 지도교수 김중하 평론가, 윤정규 조갑상 작가 그리고 조교 정태규 선생까지 함께 했었다. 그때 수료한 30여 명 중 신문 신춘문예 통과는 시와 소설에 각각 한 명씩이고 수료식에 참석한 내빈 중에도 유명을 달리한 이가 셋이나 된다.
해운대 백사장 끝자락 미포엔 해변열차 시발점이자 종착역이 있다. 옛 동해남부선 폐선을 이용하여 운행하는 관광열차가 대박을 터뜨려 외국인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이들은 열차로 풍광이 아름다운 청사포도 즐겨 찾는다. 미포와 청사포는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도 운임은 7천원을 받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서양인 남녀가 대합실에 나붙은 운임표를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