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13. 불날. 날씨: 낮에는 더운데 가을 날 답다.
아침열기-고물상가기-영어-직조-점심-청소-우리나라 알기-실 직조-마침회
[지진과 핵발전소, 고물상과 빗물통]
학교에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어제 지진이 났다고 알려줍니다. 아침열기 때 6학년 아이들도 지진이야기를 합니다. 원서는 일찍 시골에 가서 못
오는 날입니다. 우철이가 와서 모두 반갑습니다. 아침열기는 자연스럽게 지진과 화산에 관학 과학책을 꺼내들고 함께 읽어보고 지진 공부를 했어요.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에 나와있는 땅과 암석을 배우게 되네요. 간단하게 땅 속 움직임, 습곡과 단층, 진원와 진앙, 진도와 리히터 개념을 알아갑니다. 우드락을 두 손으로 밀어
구부러지는 걸 습곡, 우드락이 부러지는 것이 단층과 같다고 풀어 이야기 하니 못 알아들을 게 없습니다. 낮 우리나라 알기 시간에도 줄곧 우리나라
지진의 역사를 살펴봤어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지진 이야기가 책에 자세히 쓰여있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진도 8에 해당하는
지진이 무려 40차례 있었고, 1643년쯤에는 진도 10(7리히터가 넘는)에 해당하는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어요. 삼국시대에도 100명이 넘는 사람이 지진으로 죽은
이야기도 나옵니다. 우리 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고 꾸준이 지진이 일어나고 앞으로 더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큰
지진들이 일어난 곳이 주로 경상도 김해부터 영덕에 이르는 활성단층 지역입니다. 경주에서 지진이 많이 일어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동해안에 16개가 밀집되어 있는 핵발전소를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핵발전소 내진설계가 7리히터 아래라니 깜짝 놀랄 일입니다. 이번 지진이
5.8리히터이니 운이 좋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진은 자연스러운 조륙운동이나 판의 부딪힘이니 지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지만 사람이
만들어놓은 무서운 핵발전소가 무너지는 날이면 제2의 후쿠시마는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무섭기까지 합니다. 핵발전소 가동을 당장 중단하고
재앙을 막을 채비를 미리 하는 건 인류와 우리 아이들 앞날을 위해 당연한 일일텐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힙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일본을 보더라도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세상은 굴러가고 에너지 문제가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지요. 한 번 사고가 나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칠 것을 아는 사람들이 이리 태평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도록 사람들이 나서야 우리 아이들에게 앞날이 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눈물나도록 고맙습니다. 함께 책을 읽은 성범이가 그럽니다. "선생님 우리 핵발전소 멈추라고 나가야 되는 거 아니예요?" 책에 쓰인 대로 공부한
아이도 알만한 사실과 실천 제안인데 아이에게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침 나절 개학하고 미뤄온 고물상을 다녀왔습니다. 본디 1학년과 같이 갈 계획이었는데 짐이 많아 차에 다 타기 어려워 6학년만 갔어요.
책과 옷, 쓰레기를 분류해 차에 싣고 있는데 밖에서 놀고 있던 예준이와 종현이가 달려오더니 일하고 싶다 합니다. 부지런히 책을 나르며 일을 하는
아이들을 보니 놀이보다 일이 아이들의 본성이라고 말한 프레네와 일놀이 교육을 강조한 이오덕 선생님 말이 떠오릅니다. 일하기를 즐기도록, 일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삶인지 어릴적부터 가르치고 배우도록 이끌어야 할 몫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고물상까지 함께 가고 싶어하는 3학년
아이들에게 다음에 같이 가자 약속하고 고물상에 갔습니다. 여전히 고물 값은 시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삼만원을 버는데 그쳤습니다. 이것도
고마운 일이지요. 부모님들이 가져다 주고 아이들이 분류해 싣고 가져온 것이니 모두가 애쓴 결과입니다. 이제 빗물통을 설치할 값이 얼추
되어보입니다. 고물상을 다녀서 번 돈으로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데 이어 빗물통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와 아나바다를 줄곧 실천하는
교육활동이니 아이들에게 뿌듯한 보람을 안겨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청소 시간에는 우리 이준이 때문에 한바탕 크게 웃습니다. 숲 속 놀이터 움집을 타고 올라가는 호박줄기에 매달린 호박을 이준이가 따서
선생이 한 소리를 했는데 이준이 대답이 아주 멋있습니다.
"이준아 그거 따면 안되는데 왜 땄어? 선생님이 줄곧 관찰하고 있는 거야."
선생이 놀란 표정으로 큰 소리를 내자 이준이 목소리가 작아집니다.
"따고 싶어서 땄어요."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따야지. 그런데 뭐에 쓸려고 땄어?"
"호박가지고 할러윈하려구요."
"아 호박으로 사람 모습 같은 거 만들려구 그런거야."
"네."
"그랬군. 그런데 다음부터는 꼭 물어보고 따야 돼. 알았지. 그리고 이 호박은 안에 애벌레가 가득해서 그 상태로는 안돼. 이리 줘봐.
선생님이 긁어줄테니."
그제서야 호박을 따버려 혼나는 줄 알던 표정이 환하게 바뀝니다. 안에 가득한 애벌레와 호박 속을 모두 긁어내고 수돗가에서 씻어서 건네주니
아주 좋아합니다. 호박을 집에 가져가겠다는 이준이는 평소에도 뭐든지 관심이 많고 주머니에 곳곳에서 주운 게 가득합니다. 나중에 보니 페인트
빈통을 또 찾아내 호박 몸통으로 삼겠다 하네요. 참 호기심 많은 멋진 이준이입니다.
오후에는 우리나라 알기로 지진의 역사를 줄곧 공부한 뒤 이번주 줄곧 하고 있는 직조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양말목 직조에 이어 실직조로
가는데 훨씬 더 정성을 들여야 하는 수고로움 때문에 더 천천히 꼼꼼하게 빠져들어야 합니다. 양말목 직조를 두 개씩 금세 끝낸 뒤라 실조가 더디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합니다. 느림과 정성, 몰입하는 힘을 키우기에 아주 좋습니다. 권진숙 선생과 송순옥 선생이 가져온 큰 직조틀도
살펴보더니 민주는 양말목 직조틀보다 큰 실직조틀에 실을 겁니다. 익숙한 손놀림 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직조입니다. 새참으로 본준어머니가 보내준 포도와 5학년이 만든 김치지짐을 먹습니다. 그런데 본준어머니가 보내준 포도는 선생들에게 보내는 한가위 포도였다네요. 덕분에 아이들이 잘 먹었습니다.
내일부터 한가위 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일찍 떠나 벌써 고향에 간 분들도 있고, 이제 길을 나서거나 오늘 저녁이나 내일 새벽에 나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녁부터 차가 줄곧 막힌다 하니 내일 새벽에 떠날 셈입니다. 경기도 주민자치 우수사례로 양지마을 공원 만들기가 선정되어 발표
자료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은지라 마무리 할 게 있어 천천히 학교에서 볼 일들을 처리하고 갑니다. 두 번째로 연습하고 있는 막걸리도
밤에 걸렀어요. 같이 방범을 돈 지빈아버지가 괜찮다 하는데 약간 신 맛이 나요. 온도가 잘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처음보다 덜 시고
맛이 더 좋습니다. 한참을 걸러 저온 숙성에 들어갑니다. 한가위 뒤 함께 마시면 맛나겠어요. 이제 새벽 고속도로만 탈 일이 남았네요. 덜
막히기를 기도하며. 어려운 분들이 많겠지만 잠시나마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하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