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95신]‘동경대전東經大全’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도올 필생의 대작大作 ‘동경대전’을 선물한 친구에게.
『동경대전1-나는 코리안이다』 『동경대전2-우리가 하느님이다』
(김용옥 지음, 2021.4. 통나무 발간, 각각 571쪽, 559쪽, 각권 2만9000원), 두 달에 걸쳐 마침내 다 읽었네.
흘리듯 말한 책 이야기를 잊지 않고, 곧바로 사보내 준 자네의 속정에 보답하는 의미로라도
졸문의 서평書評을 써보내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의무義務’가 돼버리더군.
의무는 내 체질에 맞지 않는데 말이야. 하하.
문제는 이 책에 대해 너무 압도당해 한 줄도 쓸 수가 없다는 거네. 『동경대전東經大全』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기껏 안다는 게 ‘동학東學’을 창시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 ∼1864)가 남긴
동학의 교리서敎理書 정도일 거야.
그런데 이 시대 고명한 대중적 사상가인 도올이 “우리 민족 최고의 성경聖經”이라며 찬탄을 넘어 극찬을 하더군.
최제우 선생이 바로 우리 시대의 예수이고 부처였다는 거야.
처음엔 그렇게나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네.
그 시대에 그런 엄청난 인물이 나타난 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홍복洪福이었건만,
21세기에도 여전히 그것을 모르고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니 ‘청맹과니’가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들더군.
동학의 맥을 이은 천도교天道敎니 뭐니 하는 종교 이야기가 아닐세.
젊은 친구들 말투처럼 ‘으잉? 정말?’을 연발하며,
종교학술서같은 이 두꺼운 책 두 권을 독파하고도 아직도 도무지 뭐가 뭔지를 몰라 서평을 쓸 수가 없네.
다만 한 가지. 페이지 곳곳에 노골적이거나 은근하게 드러내는 도올의 말씀이
결코 하나도 과장이 아닐 거라는 믿음은 들더군.
도올이 50여년간의 노력 끝에 통시적通時的으로 정리한 우리 조선(대한민국) 사상의 흐름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네.
하여 새로이 메모를 하며 정독을 할 생각이라네.
이번에 새로이 알게 된 수운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1827 ∼1898)이라는 두 인물의 사상과 저작들을,
100년도 더 지난 마당에 남김없이 번역하여 분석에 해설까지 곁들여 친절하게 들려주는 이 땅의 이 사상가에 대해서
나는 아낌없는 찬사와 한없는 존경을 보내네.
물론 이 분의 학문적 깊이와 언행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이 분도 수운과 해월 못지 않게 하늘이 낸 그릇이라는 생각까지 들더군.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사서삼경, 노장철학에 이어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들을 정리한
수십 권의 명저名著와 쾌저快著 등을 숙독하고, 유투브 특강들을 들으며,
한 사람에게만 재주를 몽땅 주는 하늘이 불평등하다는 생각까지 들던데, 자네는 어떻던가?
이 책들의 부제副題 ‘나는 코리안이다’와 ‘우리가 하느님이다’만 봐도 그렇네.
부제만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수운사상의 핵심을 어쩌면 그렇게 두 마디로 그렇게 잘 집어냈을까.
언어의 조탁사 못지 않은 뛰어난 감각(센스)의 소유자이네.
지난 해 읽은 그분의 소설(novel이 아닌 small story인 小說 『죽은 쥐의 윤회』을 읽어도 그렇더군.
참 재밌는 책이네. 읽지 않았으면 한 권 사보는 것도 좋을 걸세.
읽다보면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구나 하는 대목들이 투성이이네.
여지껏 우리 할아버지들이 하늘을 ‘한울’이라고 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잘못된 용어인 줄을 처음 알고 얼굴이 후덕거렸네. 그것도 모르고 큰아들 이름을 ‘한울’이라고 지었거든.
‘ᄒᆞᄂᆞᆯ’‘하ᄂᆞᆯ’로 쓰여 왔었으니 ‘ᄒᆞᄂᆞᆯ님’‘하ᄂᆞᆯ님’‘하느님’이 맞는 표기이고 ‘한울님’은 잘못된 용어라며
그 연유를 조목조목 밝힌 것을 보고 후련한 마음까지 들더군.
1890년 강원도 인제에서 어렵게 펴낸 『동경대전』을 비롯한 5개의 판본이 목판본이 아닌 목활자본이라도
학계의 정설이 될 게 틀림없네. ‘인제 경진초판본’이 최근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기적일 뿐 아니라
뭔가 우리에게 주는 계시啓示가 아닐까 싶더군.
결코 미화하거나 억지로 꾸민 스토리텔링이 아니고,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고증하고 역해譯解한 배경에는 표영삼(1925 ∼2008)이라는
‘동학의 성자聖子’가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네.
아무튼, 나는 도올선생이 책머리 ‘개경지축開慶之祝’에서
“동학은 눈물이다. 세월호의 참변을 지금도 우리가 눈물 없이 바라볼 수 없듯이, 동학의 혁명과정, 그 발생연원으로부터 끝나지 않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눈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는 구절에 압도되었다네.
왜 동학이 눈물이고, 동東의 학學이 아닌지는 이 책을 싸그리 읽어야 간신히 알겠지만, 그럴 짬이 어디 있겠는가?
일반대중용으로 이 두 권의 다이제스트판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왜냐하면, 우리가 어차피 한 세상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있게 마련이고, 그것만큼은 알고 죽어야 한다는 게 나의 오랜 지론持論이기 때문일세.
자네의 책 선물로 오랜만에 진지해졌는데, 여전히 뒤죽박죽이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예수와 부처보다 더 위대한 현세現世의 성인聖人이었다는데,
왜 그렇게 ‘무서운’ 주장을 무슨 근거로 하는지, 유튜브 특강이라도 한번 들어보세나.
책선물 다시한번 고맙네. 줄이네. 언제나 잘 지내소.
7월 9일
임실에서 오랜 군대친구가 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