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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1부 2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자신의 진찰실에서 나오다가 층계참 한복판에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다. 그는 즉각 아무 생각 없이 그 쥐를 치워버린 다음 층계를 내려왔다. 그러나 거리에 나왔을 때 ‘쥐가 나올 곳이 못 되는데……’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그 길로 발길을 돌려 수위에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늙은 미셸 씨의 반응을 보고 리외는 자기의 발견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더한층 느꼈다. 죽은 쥐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다만 괴상하게 보였지만, 수위에게는 창피한 일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수위의 태도는 명백했는데, 이 건물 안에 원래 쥐는 없었다는 것이다. 의사가 위층의 층계참에 쥐가 있는데 아마도 죽은 것 같다고 아무리 힘주어 말해도 미셸 씨의 신념은 확고부동했다. 이 건물에는 쥐가 없고, 그렇다면 누가 밖에서 가지고 들어왔을 것이며, 요컨대 무슨 장난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에도 베르나르 리외가 그 건물의 문 안에 서서 자기 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열쇠를 찾고 있었는데, 그때 그는 복도의 어둠침침한 구석에서 털이 젖은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 쥐는 멈칫거리며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듯하더니, 의사에게로 달려오다가 다시 멈추어 작은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뱅뱅 맴을 돌다가, 마침내 벌어진 주둥이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의사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쥐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쥐가 토하는 피가 그를 다시 근심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병든 지 1년이 되어가는 아내가 그 이튿날 어느 산중에 있는 요양소로 떠나게 되어 있었다. 아내는 그가 하라는 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내는 장소를 옮기는 데 따르는 피로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웃고 있었다.
“기분이 참 좋아요.”라고 말도 했다.
의사는 침대 머리의 등잔불 빛을 받으며 자기 쪽으로 향하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이 서른에 병색이 뚜렷한 아내의 얼굴이 리외에게는 여전히 청춘 시절의 얼굴로 보였다. 아마 딴것을 전부 지워버리는 그 웃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웬만하거든 자요.” 그가 말했다. “간호사가 11시에 오면, 12시 기차에 당신을 태워주겠소.”
그는 약간 땀이 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내의 웃음이 문 앞까지 그를 바래다주었다.
이튿날인 4월 17일 8시에 수위는 지나가던 의사를 붙들고, 어떤 짓궂은 장난꾼들이 죽은 쥐 세 마리를 복도 한가운데다 갖다 놓았다고 푸념을 했다. 쥐들이 피투성이인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큰 쥐덫으로 잡은 모양이라며, 수위는 쥐의 발목을 붙잡고 얼마 동안 문지방에 서서 범인들이 필시 빈정거리러 나타나지나 않을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놈들”하고 미셸 씨가 말했다. “놈들을 기어코 잡아야지.”
불안해진 리외는 그의 환자들 가운데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시의 변두리 지구부터 회진을 시작했다. 그 지구에서는 쓰레기 수거가 훨씬 늦게 실시되는 까닭에, 먼지투성이인 그 동네의 골목길을 따라서 굴러가고 있는 자동차는 인도 가에다 내놓은 오물통들을 스칠 듯이 지나갔다. 이렇게 천천히 달리던 어느 거리에서 의사는 푸성귀의 우거지며 더러운 걸레조각 위에 팽개쳐진 쥐를 열두어 마리나 보았다.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환자는 거리에 면한 침실 겸 식당으로 쓰는 방에 누워 있었다. 그는 무뚝뚝한 표정에 볼이 움푹 팬 늙은 스페인 사람이었다. 그는 이불 위에 완두콩이 가득 담긴 냄비를 앞에 놓고 있었다. 의사가 들어갔을 때, 침대에서 반쯤 일어나 늙은 해수병자의 그렁그렁하는 숨결을 다시 진정시켜보려고 몸을 뒤로 젖히며 애를 쓰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세숫대야를 가지고 왔다.
“한데 선생님, 그놈들이 나오는데 보셨어요?” 주사를 놓는 동안에 그가 말했다.
“정말이에요. 이웃집에서는 세 마리나 쓸어냈대요.” 그의 아내가 말했다.
노인은 두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나오겠지. 쓰레기통마다 보이거든. 배가 고파서 그럴 겝니다!”
리외가 온 동네에서 쥐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회진을 마치고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선생님께 전보가 왔습니다. 저 위에 갖다 놓았습죠.” 미셸 씨가 말했다.
의사는 혹시 또 쥐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아! 천만에요.” 수위가 말했다. “내가 지키고 있단 말씀이에요. 그러니 그놈들이 감히 못 가져옵니다.”
전보는 그의 어머니가 그 이튿날 오신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병으로 집을 비우는 동안, 자기 아들의 집안일을 돌보러 오기러 되어 있었다. 의사가 자기 집 방으로 들어갔을 때, 간호사는 이미 와 있었다. 리외는 자기 아내가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분까지 바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내에게 웃어 보였다.
“좋아.”하고 그가 말했다. “참, 좋아.”
잠시 후에 그는 역에서 침대차에 아내의 자리를 잡아주었다. 아내는 찻간을 둘러보았다.
“우리 형편으론 너무 비싸지 않아요?”
“쓸 때는 써야지.” 리외가 말했다.
“쥐 이야기는 대체 뭐예요?”
“나도 모르겠어. 심상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이럭저럭 지나가겠지.”
그러고는 빠른 어조로 좀 더 잘 돌봤어야 하는데 용서하라고 말하고,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리외는 덧붙여 말했다.
“당신이 다시 돌아올 때는 모든 것이 잘되어갈 거요. 그때는 새 출발을 하는 거야.”
잠시 후에 그녀는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플랫폼에서는 사람들이 급히 서두르느라 서로 부딪히고 야단들이었다. 칙칙거리는 기관차의 소리가 그들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리외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아내가 돌아보았을 때, 그는 아내의 얼굴이 눈물에 젖은 것을 보았다.
“그러면 못써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눈물 젖은 얼굴에 다소 찡그린 듯한 웃음이 다시 떠올랐다. 아내는 한숨을 깊이 쉬었다.
“자, 가봐요. 모든 일이 잘될 테지.”
그는 아내를 껴안아주고 플랫폼으로 내려섰다. 유리창 너머로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만이 보였다.
“제발 몸조리 잘해요.” 그가 말했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리외는 출구 근처의 플랫폼에서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예심판사 오통 씨와 마주쳤다. 의사는 그에게 여행을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머리카락이 검은 오통 씨는 어떻게 보면 예전의 사교계 인사 비슷하고 또 어떻게 보면 장의사의 일꾼 비슷했는데, 상냥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본가에 문안드리러 갔던 아내를 기다립니다.”
기관차가 기적을 울렸다.
“아 저, 쥐들이…….” 판사가 말했다.
리외는 기차 쪽을 발을 옮겼다가 다시 출구 쪽으로 돌아섰다.
“네.” 그가 말했다. “아무 일 없겠죠.”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때의 상황은 단지 죽은 쥐가 가득 찬 궤짝 하나를 겨드랑이에 낀 역무원이 지나간 사실뿐이었다.
바로 그날 오후에 리외가 진찰을 시작할 무렵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왔는데, 그는 신문기자이며 아침에 한 번 다녀갔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레이몽 랑베르였다. 키는 작달막하고 어깨는 옹골차며, 결단성 있게 생긴 얼굴에는 눈이 맑고 슬기로운 랑베르는 간편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생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는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는 어떤 큰 신문에 싣기 위해 아랍인들의 생활상을 취재하고 있는데, 그들의 보건 상태에 관한 자료를 제공해 달라고 했다. 리외는 보건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자신은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신문기자란 진실을 보도할 수 있는가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입니다.” 라고 랑베르는 대답했다.
“내 말은, 당신네들이 과연 철저히 고발을 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철저하게는 못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드려둬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그 고발이라는 것이 근거가 없는 것 같은데요.”
리외는 부드러운 어조로 사실 그런 고발이란 근거가 없는 것이겠으나,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랑베르의 증언이 기탄없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기탄없는 증언 이외에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증언을 위해서 기삿거리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냉혈 정치가 생쥐스트 같은 말투군요.” 신문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리외는 언성도 높이지 않고, 그런 것을 잘 모르겠으나, 자기의 말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진저리가 나 있으면서도 인류에 대한 관심은 가지고 있으며 딴에는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사나이의 말이라고 대답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었습니다.” 마침내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의사는 그를 문까지 배웅하면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랑베르는 약이 오른 모양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의사는 그와 악수를 하며, 지금 이 도시에는 죽은 쥐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이 기삿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 그래요?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랑베르가 외쳤다.
의사는 오후 5시에 다시 왕진을 가려고 밖으로 나가는 길에 계단에서 아직 젊고 육중한 덩치에 얼굴 혈색이 좋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굵은 눈썹이 수북이 난 어떤 남자 곁을 지나갔다. 리외는 그 남자를 가끔 그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스페인 무용가들의 집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장 타루는 연신 담배를 빨면서, 자기 발밑의 층계에서 죽어가고 있는 쥐 한 마리의 마지막 경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흐리멍덩한 눈을 치뜨고 침착한 눈길로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는, 이 쥐들의 출현은 좀 희귀한 일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렇죠. 그러나 결국은 난처해질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런 일을 난생처음 봅니다. 그뿐이죠. 그러나 나는 좀 흥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럼요, 아주 흥미 있습니다.”
타루는 손을 들어서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고는,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쥐를 보다가 리외에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선생님, 결국 이런 것은 특히 수위가 걱정할 일이지요.”
바로 그때 의사는 아파트 앞 현관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수위를 발견했는데, 여느 때는 벌겋던 얼굴이 피로에 지쳐 있었다.
“네, 압니다. 이제는 두 마리, 세 마리씩 나타나는군요. 그러나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지요.” 또 나타났다고 눈짓으로 말하는 리외에게 미셸 씨가 말했다.
그는 기운이 없고, 근심스러운 눈치였다. 그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목덜미를 비볐다. 리외가 그에게 몸은 괜찮으냐고 물어보았다. 수위는 물론 좋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여느 때 같지는 않았다. 내심 속을 태운 탓인 것 같았다. 그 쥐라는 놈들이 그에게 타격을 주었을 테고, 그놈들만 없어지면 모든 일이 나아질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튿날인 4월 18일 아침, 역에 나가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온 리외는 미셸 씨의 얼굴이 더욱 수척해진 것을 보았다. 지하실에서부터 고미다락에 이르기까지 계단에는 여남은 마리의 쥐들이 흩어져 있었다. 집집마다 오물통은 쥐로 가득 찼다. 의사의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그런 일도 있지”라고 말했다.
그녀는 눈이 까맣고 부드러운, 키 작은 은발의 부인이었다.
“너를 보니 반갑구나, 베르나르. 쥐쯤이야 아랑곳할 게 있느냐”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는 시인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하고라면 모든 것이 수월할 듯싶었다.
그래도 리외는 시청의 서해대책과(鼠害對策課)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 과장인 메르시에를 그는 알고 있었다. 과장에게 수많은 쥐들이 바깥으로 나와서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물었다. 과장은 들었을 뿐 아니라, 부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기 청사에서만도 50여 마리나 쓸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연 이 사실이 중대한 문제인지 판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리외도 그러한 판단은 내릴 수가 없었으나, 아무래도 서해대책과에서 나서야 할 문제라고 얘기를 했다.
“그렇고말고.” 메르시에가 말했다. “지시가 있어야지. 만약 자네가 정말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시가 내려지도록 노력함세.”
“물론 필요하고말고.” 리외가 말했다.
그의 가정부가 조금 아까 와서 말하기를, 자기 남편이 일하는 큰 공장에서 죽은 쥐를 몇백 마리나 쓸어냈다고 했다.
어쨌든 우리 시민들이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이다. 그도 그럴 것이, 18일부터 공장이며 창고들이 실상 쥐 몇백 마리의 시체를 도해냈으니 말이다. 어떤 때는 너무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숨을 질질 끄는 쥐들의 명을 끊어주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변두리 지대부터 도심지까지 리외가 지나다니는 곳마다, 또 우리 시민들이 모여 있는 곳마다 쥐들이 오물통이나 도랑 속에서 길게 열을 짓고 기다리고 있는 판이었다. 석간신문은 그날부터 이 사건을 도맡아 과연 시청에서는 행동을 개시할 용의가 있는가 없는가, 또 이 구역질 나는 침해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어떠한 긴급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를 추궁했다. 시로서는 아무런 계획이나 대책도 없었지만, 그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기로 했다. 매일 아침 일찍 죽은 쥐를 모으라는 지시가 서해대책과에서 내려왔다. 수집한 쥐는 서해대책과의 차 두 대가 소각장으로 운반해다가 태워버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