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음 중심 삶>에서 바른 신앙은 회심을 경험하는 순간부터 점점 성화가 시작된다. 성화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아름다우심에 대해 더욱 깨닫게 되고 동시에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됨에 대한 인식이 자라게 된다. 이 두 가지 성장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통해 더욱 커진다.
복음이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주어진 것이기에 이미 100점을 맞고 신앙이 시작되는 것이다. 문제는 신자 안에서 복음을 잊어버리는 것 때문에, 신앙이 왜곡되고 점점 축소된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잊어버리는 문제이다.
2.
복음을 잃어버리면 위선(Pretending)과 행위(Performing) 가 커지면서 십자가의 은혜가 축소된다. 복음은 내가 죄인되었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다는 확신이지만, 위선은 자신의 죄인됨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죄인이 아닌 척하는 삶을 살아갈 때 생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죄로 인해 벌거벗은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신의 몸을 가렸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죄인됨을 숨기기 위해 여러가지 다양한 것들로 자신이 더 나은 존재로 보이도록 노력한다. 복음이 좋은 소식인 이유는 먼저 나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3.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어서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라는 명확한 인식, 자기 절망을 통해 진정한 구원이라는 기쁜 소식에 이르게 한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명확한 자기한계를 깨닫게 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 더욱 눈뜨게 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도 <영적 침체>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 침체에 빠지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를 "칭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체 성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된 기독교의 기쁨을 경험하려면 먼저 비참해져야 합니다. 비참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문제는 자신이 유죄임을 알고 참으로 비참해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기쁨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단계를 건너 뛰어 버렸다는 것, 기쁨을 누릴 자격이 없는데도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영적침체, p43)
4.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시므온은 예수님을 향해 예언하기를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한다고 말했다. 흥하기 위해서는 먼저 패해야 한다. 복음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못할 때 위선을 하게 되고 위선은 점점 우리가 행동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는 쪽으로 몰아간다.
5.
스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이지만 스스로 구원을 찾고자 집단적으로 어떤 집단에 속할 때 안정감을 누리기 때문에 더 나은 집단에 속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마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집단을 통해 구원을 추구했던 것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재능이나, 심리적 안정같은 것으로 구원을 추구하기도 한다.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는 식의 적당한 명상관리로 평안을 추구하기도 하고, 재능을 통해 구원을 추구하기도 한다.
6.
또 사회적으로 친구나 배우자등을 통해 구원을 이루려고 하면서 관계에 짐착하기도 하며, 정치적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사회운동이나 다양한 정치적인 이슈들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이기에 늘 위선과 행위는 점점 자신을 협소하게 만들고 위축되게 만든다.
개인적 차원으로 구원은 아무리 가져도 부족한 공허함을 채울 수 없고 사회적 차원에서 구원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과 경쟁을 통해 승리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므로 빈익빈부익부의 차별적 현상을 극복할 수 없다. 은혜가 아니고서는 인간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7.
진정한 복음에 대한, 칭의의 은혜가 회복되지 못하면, 적당한 신앙생활로 늘 위선과 행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마치 예수님이 장님을 치료해주었을 때 먼저, 나무같은 것이 보였고 두 번째 터치를 통해 세상을 바로 보는 것처럼, 내가 한 번의 터치 만으로 적당히 보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명확한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런 현상을 "세상을 마냥 즐기지 못할 만큼은 기독교를 알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큼은 알지 못합니다." 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무같은 것만 보고 있지만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완전히 보지 못한다고 절망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8.
우리는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그때 올바른 신앙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바쁘지만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이 땅을 살아가고 싶은 소원이 생기게 된다. 예수님의 한 번의 터치 정도로 눈은 떳지만 명확하게 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복음은 내가 죄인인 것을 깊이 알게 해주지만 또한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깊이 깨닫게 해준다.
나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위로 나는 의로운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렇게 강조했다. "설사 여러분이 거의 지옥의 나락까지 떨어졌다해도, 온갖 악한 죄를 짓고 살인까지 저질렀다해도,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과 우리가 모두 소망이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9.
복음이 좋은 소식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구원 받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위선과 행위를 따라 살아가는 신자에게도 날마다 필요하다. 복음은 나쁜 소식을 통해 좋은 소식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그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사명자로 이 땅을 살아가는 더 위대한 소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첫댓글 은혜가 아니고서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음을 잊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