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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2. 묵상글 (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 나는? 우리 공동체는?.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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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2.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나는? 우리 공동체는?
여러분이 교회 모임을 가질 때에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오늘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에 분열이 있음을 지적하며 꾸짖는데
여기서 분열은 앞서 3장에서 아폴로 파니 바오로 파니 하는 그런 분열이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과의 차별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주님의 성찬례를 거행하기 전에 각자 음식을 싸 가지고 와
같이 나누는 전통이 있었는데 두 가지 볼썽사나운 모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일하느라 늦게 오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먼저 먹은 것과 다른 하나는 부자들은 잘 싸 와서 맛있게 그리고
배불리 먹고 가난한 사람들은 굶거나 변변한 음식이 아니어서 밖에서 초라하게
먹은 것인데 결과적으로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의 모임이 따로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부자들의 만찬은 주님의 만찬과 다르다며 그럴 바에는
각자 집에서 먹고 올 일이지 왜 굳이 부자들끼리만 음식과 친교를 나눔으로써
주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느냐고 꾸짖는 겁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부자들의 끼리끼리 만찬이 가난한 사람들만 부끄럽게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긴” 것이라고까지 합니다.
주님의 만찬을 나누는 주님의 교회라면 절대로 이런 차별이 있을 수 없는데,
그것은 인간적인 차별일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차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 만찬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첫째는 가난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내게 해준 것이라는 주님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과 주님을 동일시해야 하고, 나중에 바오로 사도가 더 자세하게
얘기하겠지만, 같은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듯 음식을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회적인 차별이 교회 안에 그대로 있다면
그 교회를 어떻게 주님의 교회라고 할 수 있고
나눔이 없는 만찬을 어떻게 주님의 만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면,
아니,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아니면 주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 안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을 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일 때였습니다.
그때 우리 교회 안에는 ’가난한 자의 우선 선택‘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에게 뭣을 좀 주는 사회 복지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한 구성원이며 중심으로 여기는 그런 차원이었지요.
가난한 사람을 우선 선택한다는 말은 부자를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난한 이들을 먼저 선택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부자들은 ’우선 선택‘하지 않아도 교회에 떳떳하게 나오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고,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강론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밖에서는 청소차가 와서 쓰레기를 치우는데
시끄럽다고 아무 생각 없이 창문을 닫으려다가 이것도 듣기 싫은 소리 밀어내고,
맡기 싫은 냄새 피함으로써 그들을 밀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창문을 닫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종의 그분들을 받아들이는 예식을 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구별심만으로도 불행하다고 하는데
차별심까지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면 그것은
형제적 사랑을 얘기하는 그리스도교인과 프란치스칸으로서
오히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고 자신을 크게 꾸짖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우리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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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2.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7)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에서 이방인을 위한 최초의 이적으로서,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지설교를 마치시고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 병들은 노예를 위한 백인대장의 청을 전하는 유다인 원로들의 말을 듣고 백인대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백인대장의 친구들이 와서 백인대장의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루카 7,6-8)
이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군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는” 이방인임을 알았으며, 또한 자신이 군사력을 지닌 백인대장이지만 왕에게 속해 있듯이, “상관 밑에 매인 사람”, 자신이 누구에 속해 있는 지를 철저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깨달음, 곧 자신의 부족과 한계와 무능함과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 존재인가를 깨달은 데서 한편으로는 ‘겸손’이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 ‘밑에 매인 사람’인지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에게 매여 있고 속해 있는 종을 소중하게 여길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이 속한 분께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졌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말씀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청한 것은 오로지 한 마디의 “말씀”뿐 이었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7)
그는 말씀의 권능을 믿었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시어 은총을 입은’ 성모님처럼, 그도 은총을 입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께 속해 있는 존재임과 우리의 무능과 나약함을! 그러나 그분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존재임을! 그러기에 우리 또한 주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함을! 그리고 주님의 말씀의 권능을 믿고 의탁해야 함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루카 7,7)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머리 위에 계시되 누르지 않으시는 분, 당신을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소유하시되 속박하지 않으시는 분,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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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2.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믿음은 하느님의 능력을 만나는 기회
“저는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믿음도 부족합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도를 하는 대로 들어 주신다면 매달려 보겠는데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에나 성당을 찾는 발바닥 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하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저를 두고 하는 말씀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에 급급해하는 자신을 보면서 기도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대로 행함으로써 하느님을 체험하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루의 끝맺음에 서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한 가지도 못하고 후회하며 부끄러워합니다. ‘내일은 잘해야지’하고 결심하고서는 아무 의식도 없이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러고서도 굳센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바라고 있으니 뻔뻔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간절한 청은 물론, 불평불만 하면서 뱉어버린 말도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투덜대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때가 아니라 당신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에 당신의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따라서 오늘 이루어 주실 수도 있고, 내일 이루어 주실 수도 있으며 내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이루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저 믿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은 자기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예수님께 ‘저는 제집에 주님을 모실 자격도 없고,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청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의심하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는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지만(마태13,58), 믿음으로 준비된 사람에게는 당신 말씀의 능력이 살아났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하고 자신을 낮추는 그곳에서 큰 힘을 만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할 일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성체를 모실 때에도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의 능력은 늘 작용합니다. 다만 내가 믿음으로 준비되지 못한 탓으로 그 능력을 체험하지 못할 뿐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습니다. 물론“예수님은 연민의 정신과 사랑의 정신으로, 때로는 그자가 믿든지 말든지 일방적으로 기적적인 역사를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 신앙이 합쳐질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재창조 역사가 일어납니다”(김정원신부). 그러니 열린 마음과 겸손으로 그분의 능력을 믿고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하는 바대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얻게 될 것입니다. 열매는 행동하는 데서 맛보게 됩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능력을 만나는 기회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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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2.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동창 모임 중에 산행을 하였습니다. 체력에 따라서 산행의 길이를 정하였습니다. 체력이 좋은 분들은 완주하는 것입니다. 체력이 조금 부족한 분들은 완주하기 전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체력이 약한 분들은 반 정도 갔다가 내려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체력에 따라서 오후 3시까지 하산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저는 완주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천천히 산을 오르면서 경치를 구경했습니다. 함께한 동창 신부님과 대화하였습니다. 비록 완주는 못했지만 흘러가는 구름도 보고, 들에 핀 꽃도 보았습니다. 덤으로 오랜만에 동창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던 신부님들은 완주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체력에 따라서 산행의 길이를 배려해준 동창신부님이 고마웠습니다. 아침이면 모두가 먹을 수 있도록 아침식사를 준비한 동창 신부님도 있었고, 저녁이면 모두의 옷을 걷어 세탁기에 돌린 동창 신부님도 있었습니다. 불편한 잠자리를 먼저 선택한 동창 신부님도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희생이 있었기에 31주년 동창 모임은 추억을 간직하며 끝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의 신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공동체에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어려운 이웃을 먼저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을 따르는 공동체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몸과 피를 기꺼이 내어 주었듯이 공동체는 가난 이들을 배려하고, 아픈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픈 종을 보았고, 주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미 이런 모습만으로도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백인대장은 주님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그렇습니다. 참된 믿음은 신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모든 이들에게서 오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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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2.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부자 부모가 없어서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또 직장이 없어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이 없어서 제대로 살 수 없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없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계속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반면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고 말하고,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직장이 있다고 말하고,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돈도 있다면서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있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서 계속 있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없음’만을 강조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투덜대며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멈추지 않는 사람 곁에 그 누가 그 옆자리에 있고자 할까요? 그러나 ‘있음’을 강조하는 사람들 곁에는 사람이 참 많이 있습니다. 감사하면서 사는 긍정적인 말과 행동에 사람들도 함께하고 싶은 것입니다.
‘있음’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도 그렇습니다. 주님께 대한 불평불만으로 ‘없음’을 보는 삶이 아닌,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있음’을 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있음’ 안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복음에 백인대장이 등장합니다. 그는 유다인 원로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일 정도로 올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로들이 직접 와서 백인대장의 노예를 낫게 해달라고 청했고, 예수님도 흔쾌히 허락하셔서 그들과 함께 갑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으로 오신다는 전갈을 들은 백인대장은 몹시 당황합니다. 첫째, 자기가 유다인들과 교제한 체험으로 유다인이 이교도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을 타기 때문에 정결 예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불편하시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둘째, 자기는 하느님의 백성 축에도 끼지 못하는 죄인 이교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앞에 죄인인 자신이 어떻게 설 수 있을까를 염려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충분히 나을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 미사 때마다 바치는 신앙고백을 이렇게 말하지요.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7)
그의 믿음이 사랑하는 노예의 치유라는 ‘있음’을 가져왔습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인 ‘없음’만을 바라보았다면,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백인대장과 같은 ‘있음’을 바라보는 굳은 믿음의 삶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그 ‘있음’ 안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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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걸 생각해 내는 게 아니다. 이전에 갖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존 케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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