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472288687
Алексей Зён 19시간 ·
여러분들이 몰랐던 아랍에미리트 🇦🇪 의 역사와 문화 - 쿠라이시 가문과의 연관성
오늘날 아랍에미리트가 차지하고 있는 지역은 2002년 두바이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엠프티 쿼터(Empty Quarter) 사막 끝에 위치한 사루크 알 하디드(Saruq Al Hadid)에서 발견된 철기 유적지로 인하여 최초의 철기 시대가 B.C 약 6세기경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B.C 450년경부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지배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본래 이 지역은 몇 개의 작은 토후족들이 난립하던 지역이었는데 오래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해상 교역으로 인해 부유해진 토후족들이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가 페르시아에게 정복되고 이후, 이 지역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유역과의 교역이 끊기자 쇠퇴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들 토후족들은 페르시아에게 굴종하여 페르시아의 지배를 스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페르시아 총독이 직접 와서 통치하는 구조는 아니었고 페르시아 왕이 각 토후 족들을 각 지방들의 왕으로 책봉하여 다스리게 하는 구조였다. 그러한 형태였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했으며 로마 제국의 시대에도 해당 지역에 대한 무지와 더불어 그들의 별다른 교역이 없었기 때문에 지배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시대가 도래 하고 이 때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간파한 샤푸르 1세는 현 아랍에미리트와 오만 땅에 군대를 파견하여 각 토후족들을 정복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후 사산 왕조가 로마 제국 및 비잔틴 제국을 정벌하러 떠난 사이 아랍 토후족들은 원조 쿠라이시 가문 및 오만과 예멘 등지에 살던 각 사막 종족들과 공모하여 사산 왕조의 세력을 축출할 것을 획책하였다. 그러자 아랍 연합 종족들은 서로 동맹을 맺고 시리아 등지에서 로마와 전쟁을 벌여 공을 세운 또 다른 아랍 부족 및 이집트인들과 연합하여 현 바레인과 카타르 일대의 동부 아라비아 해안 지대를 점령하였다.
비록 이러한 아라비아 종족들을 돕기는 하였지만 시리아 등지에서 사산 왕조의 편에 서서 로마를 격퇴했던 아랍인들이 아라비아 반도 내의 아랍 종족들을 좋지 않게 여겼고 이들이 고용한 아프리카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에서 고용한 노예 병들이 난동을 일으키자 시리아의 아랍인들은 페르시아 군을 도왔고 격퇴까지 했던 정규병으로 노예병들을 처단하고 난동을 진압하였다. 그러나 아랍 토후족들 중에서 가장 세력이 있었던 바니야스(Baniyas)족은 스스로 아랍 종족들을 통일하여 국왕에 취임하고 시리아 아랍 부족의 지휘관이었던 카르카스(Karkas)가 북부 아라비아를 다스리는 왕으로 재 선출되었으나 알 아인(Al-Ain) 지역으로 들어온 지 불과 한 달 후에 카르카스가 사망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정계는 바니야스족이 모두 지배하는 체제로 변화되었다.
바니야스 족은 서남쪽으로 진격하여 아프리카 동부의 소말리아 정벌을 떠난 예멘 종족과 전쟁을 벌이려고 군사들을 모집하여 남예멘 사나(Sana) 로 진격해 들어갔다가 평소 바니야스 종족 위주의 전공과 전리품 재편에 의한 불만을 가진 쿠라이시 가문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무리하게 진압하려 하다가 실패하고 쿠라이시 가문에 의해 바니야스 종족의 군사 대부분이 몰살 당하고 말았다. 이 때 바니야스 종족의 편에서 전리품을 양분하고 있었던 바레인과 카타르 지역에 살고 있던 카와심(Qawasim)족과 중부 야드리드 오아시스의 지배자인 팔라사(Falahsa)족이 페르시아 세력들을 격퇴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을 후회하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 왕인 샤푸르 2세(309~379)에게 다시 복속을 요청함으로 인하여 동부 아라비아 해 유역을 다시 페르시아의 통치 하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카와심 족은 팔라사 족과 함께 페르시아 군의 지원을 받아 예멘의 아덴(Aden)에 상륙한 다음 메카로 진군하였다. 당시 메카에 남아있던 쿠라시아 가문과 예멘의 소(小) 부족들은 메카로 들어오는 카와심, 팔라사, 페르시아 연합군을 막으려고 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홍해 연안을 중심으로 아랍 종족들과의 치열한 내전이 벌어진다. 이에 연합군은 제다(Jeda) 부족장의 아들인 쿠라이시 토로스(Quraish Toros)의 군과 전투를 벌였고 이들을 지잔(Jijan)에서 격파하고 메카로 진군했다. 그리고 메카의 관문 도시인 타이프(Tahif)에서 연합군을 막으려는 다수의 예멘 종족으로 구성된 시나(Shina) 연합군과 전투를 벌여 격퇴하고 메카에 입성한다. 연합군의 메카 입성 과정에서 연합군의 우익을 수비했던 팔라사(Falahsa)족이 쿠라이시 군을 격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카와심족과 더불어 아라비아 종족들 내부에서 팔라사족의 정치적인 입지가 급상승하게 된다.
팔라사 족은 후일 오만 이맘 왕국의 오만 세력들과 함께 카리지트 이맘 왕국의 일원이 된다. 이와 더불어 후일 아라비아 반도에서 거대 가문으로 등장하는 막투비스(Maktubis) 역시 연합군을 도와 쿠라이시의 잔당 중 한 종족인 메디아를 바하(Baha) 등지에서 격파하였다. 이렇게 메카에 입성한 연합군은 예멘과 쿠라이시의 잔당들을 소멸시키려고 하였고 그 중에는 쿠라이시 가문의 한 씨족인 하심(Hasim) 가문이 있었다. 하심 가문은 그의 외가인 베두인(Beduin)들의 강력한 변호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랍 역사가 알 키부트 빈 나사르(Al-Qibut Bin Nasar)에 의하면 카와심족의 족장 벤쿠트(Benqut)는 하심 가문을 변호하는 자들에게 가문의 수장인 하심 알 무탈리브(Hasim Al-Mutalib)에서 쿠라시아 가문의 수장인 이븐 알 쿠라이쉬(Ibn Al-Quraish)의 모습이 보인다고 말하였고 이후 하심 무탈리브를 죽이지 못한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고 한다.
이후 메카와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카와심족에 대적할 부족이 없게 되었으며 카와심족은 대부분 세력을 잃은 바니야스족을 대신하여 사산 왕조 페르시아 샤푸르 2세로부터 360년경 아라비아 왕으로 선출되어 아라비아 반도 모든 종족의 군권과 상권, 행정권 모두를 장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