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訂正 後]
고종 30년 계사(1893)10월 12일(경신) 맑음
30-10-12[24] 경무대에서 관학 유생의 응제를 방외를 통틀어 시취할 때 겸도승지 윤용선 등이 입시하였다
○ 사시(巳時).
상이 왕세자와 경무대(景武臺)에 나아가 관학 유생의 응제를 방외(方外)를 통틀어 시취하였다. 이때 입시한 겸도승지 윤용선(尹容善), 행 좌승지 조인승(曺寅承), 행 우승지 이면상(李冕相), 좌부승지 이석영(李石榮), 우부승지 윤병수(尹秉綬), 동부승지 송종규(宋鍾奎), 가주서 민경식(閔景植)ㆍ권익상(權益相), 기사관 한창수(韓昌洙)ㆍ서상훈(徐相勛)ㆍ이시재(李蓍宰), 검교직제학 윤용구(尹用求)ㆍ김규홍(金奎弘)ㆍ김종한(金宗漢)ㆍ민종식(閔宗植)ㆍ이준용(李埈鎔), 직제학 조정구(趙鼎九), 검교직각 남규희(南奎熙)ㆍ유진필(兪鎭弼), 검교대교 한기동(韓耆東)ㆍ이은용(李垠鎔)ㆍ오정근(吳正根), 부교리 유도위(柳道緯), 부수찬 정승현(鄭承鉉)이 차례로 시립하였다.
때가 되자, 통례(通禮)가 외판(外辦)을 무릎 꿇고 계청하니, 상이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여(輿)를 타고 광림문(廣臨門)을 나갔다. 약방 제조 조병직(趙秉稷)과 부제조 윤용선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아침 일찍 수고로이 거둥하셨는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이어 신무문(神武門)을 나가 경무대에 나아갔다. 통례가 여에서 내리기를 무릎 꿇고 계청하니, 상이 여에서 내려 어좌(御座)에 올랐다. 왕세자가 뒤따라 여에서 내려 시좌(侍座)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표신을 내어 포성(布城)을 연 다음 유생들을 입장(入場)하도록 합니까?”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시위(侍衛)와 종승(從陞) 가운데에서 시관(試官)으로 낙점 받은 사람이 있는데, 내려가서 일체 예를 행하도록 합니까?”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인의의 인도로 독권관(讀券官)인 좌의정 조병세(趙秉世), 행 지중추부사 김영수(金永壽), 행 상호군 한장석(韓章錫), 독판내무부사 정기회(鄭基會), 이조 참판 김학수(金鶴洙), 행 호군 윤명섭(尹命燮), 우윤 서공순(徐公淳)과 대독관(對讀官)인 행 부호군 김천수(金天洙)ㆍ윤상익(尹相翊), 대사성 김복한(金福漢), 행 부호군 조중엽(趙重燁)ㆍ윤달영(尹達榮), 부교리 유도위(柳道緯), 수찬 이민영(李敏英), 부수찬 정승현(鄭承鉉), 검열 서상훈(徐相勛)ㆍ이시재(李蓍宰), 정자 오형근(吳衡根)이 사배례를 행하고 들어와 자리에 나아갔다. 조병세가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맑고 좋은 날씨에 수고로이 거둥하셨는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침수와 수라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왕대비전의 기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으시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중궁전의 기후는 어떠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안순(安順)하다.”
하였다. 이어 상이 제(題)를 ‘시제(試題)는 여화봉인축요지의(如華封人祝堯之意), 시간은 신시(申時)까지’라고 쓰도록 명하니, 조병세 등이 제를 쓴 다음 읽어 아뢰고, 이시재 등이 받들고 나가 제를 내걸었다.
민영준(閔泳駿)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신이 선혜청의 일로 여쭐 것이 있습니다. 숙묘조(肅廟朝) 계사년(1713, 숙종39)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설치한 후로 계속해서 창의문(彰義門) 밖에 평창(平倉)을 두고서 곡식을 비축하고 백성을 모집한 것은 경성(京城)과 매우 가까운 곳이며 골짜기 외진 곳에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기 11읍(邑)의 대동미(大同米)를 해당 수령들이 백성들을 통솔하여 스스로 납부하면 본청에서 옛것은 쓰고 새것을 비축함으로써 국가 위급시의 수요에 대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세(賦稅)가 면제된 것 이외의 남양(南陽) 및 옛 안산(安山)의 실결(實結)을 충청도 각읍에 소재한 면세결(免稅結) 중에서 바꾸어 쓰도록 해연총제영에서 초기하여 윤허를 받은 바가 있습니다. 안산은 스스로 납부하는 고을인데 이제 면세결을 획급해 주지 않는다면 세금을 받는 데에 축이 날 것은 뻔한 일입니다. 당초에 평창을 설치한 것은 사체(事體)가 각별하니, 이 안산읍에 획급한 면세결을 만약 스스로 납부하는 고을 이외의 다른 고을로 옮겨 획급한다면 본청은 저축된 곡식이 예전대로이고 해영(該營)은 이자를 취하는 데에 지장이 없게 되어 매우 합당할 것입니다. 이렇게 변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대로 하라.”
하였다. - 거조(擧條)를 냄 - 상이 소차에 들어갔다. 윤용선이 사알을 통해 여쭙기를,
“먼저 제출한 시권(試券)이 이미 들어왔으니, 표신을 내어 포성을 연 다음 시권을 바친 유생들을 차례차례 내보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내린 표신으로 거행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시위한 군병, 배위한 군병, 배립한 군병 들에게 각각 그 군영으로 하여금 건호궤하도록 하라.”
하였다. 선전관이 등(燈)을 다는 것에 대해 무릎 꿇고 여쭈었다. 상이 소차에서 나왔다. 전교하기를,
“환궁은 자내(自內)의 예(例)로 할 것이니, 해방은 그리 알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고시(考試)는 편전(便殿)에서 하도록 대령하라.”
하였다. 이어 어좌에서 내려와서 대내로 돌아갔다. 윤용선이 표신을 내어 계엄을 풀기를 청하였다. 신하들이 물러나왔다.
고시하라고 명하니, 조병세 등이 차례로 자리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고시하라.”
하니, 조병세 등이 고시하였다. 윤용선이 아뢰기를,
“이번 응제에는 몇 사람을 뽑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100인을 뽑으라.”
하였다. 조병세가 편차(編次)하였다. 이어 윤용선이 아뢰기를,
“시권을 읽는 일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독관(對讀官)이 읽으라.”
하였다. 오형근(吳衡根)이 첫째 장(張)을 읽어 다섯째 구(句)에 이르니, 상이 그만두라고 명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등차(等次)를 쓰는 일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3장은 정삼하(正三下)로 쓰고, 18장은 초삼하(草三下)로 쓰고, 그 나머지는 모두 차상(次上)이라고 쓰라.”
하자, 조병세 등이 등차를 썼다. 이어 윤용선이 아뢰기를,
“봉미(封彌)를 뜯는 일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지가 봉미를 뜯으라.”
하였다. 윤용선과 조인승 등이 봉미를 뜯은 다음 읽어 아뢰었다. 상이 쓰라고 명하고 전교하기를,
“관학 유생의 응제에서 부(賦)에 수석으로 삼하일(三下一)을 맞은 유학(幼學) 윤계수(尹啓洙), 삼하이(三下二)를 맞은 유학 김진영(金鎭永), 삼하삼(三下三)을 맞은 유학 전재덕(全在悳)은 모두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하고, 그 다음 초삼하(草三下)를 맞은 유학 김이득(金履得), 최홍익(崔弘翊), 전길선(全吉善), 오기순(吳機淳), 정창조(鄭昌朝), 이의증(李義增), 최한형(崔漢亨)은 모두 진사시(進士試)의 방목(榜目) 끝에 붙이고, 그 다음 초삼하를 맞은 유학 주은모(周殷模) 등 11인은 모두 직부회시(直赴會試)하게 하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유기찬(柳基贊) 등 15인에게는 모두 2분을 주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동몽(童蒙) 김노석(金潞碩) 등 16인에게는 모두 1분을 주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구응달(具應達) 등 23인은 모두 감시(監試) 초시(初試)의 방목 끝에 붙이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조병룡(趙炳龍) 등 25인에게는 각각 《규장전운(奎章全韻)》 1건(件)을 사급(賜給)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입격한 유생은 내일 대령하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신은 먼저 물러가라.”
하였다. 이어 물러가라고 명하니,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나왔다.
[주-D001] 여화봉인축요지의(如華封人祝堯之意) : 이 시제는 ‘화(華)의 봉인(封人)이 요(堯) 임금을 위하여 축원한 뜻과 같이 하라.’는 뜻인데, 이 고사는 요 임금이 화를 순행할 때 그 지역을 지키는 봉인이 요 임금을 위하여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 세 가지를 축원해 준 일을 가리킨다. 《莊子 天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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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번호/ 2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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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자/ 전과웅
신고일자/ 2019-01-04
아이템명/ 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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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金在悳)→ 전재덕(全在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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