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는 우찌야 왕이 죽던 해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고 기원전 745-695,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왕에 이르기까지 오십 여년을 활동한 한 예언자입니다. (이사 1,1)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예언자로 보는 전통적인 입장이 있는가하면 비평적 성서해석 방법론 입장에서 1, 2, 3 이사야 예언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제 1 이사야 예언서를 1-39장, 제 2 이사야 예언서를 40-55장(기원전 538년 바빌론 거주자), 그리고 제 3이사야 예언서를 56-66장(바빌론 유배 귀환 후에서 마카베오 시대인 기원전 2세기까지)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야훼의 종 넷째 노래는 제2 이사야에 해당되는 것으로 저자가 쓴 기간이 바빌론 유배기간으로 본다면 기원전 587년에서 538년 사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예수님시대까지는 칠백년은 아니더라도 오백년 이상의 간격이 있는 셈이지요. 어떻게 그 시대에 수난 받는 야훼 종의 노래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이사 52,14)
물론 구약 해석자들 중에 유대인들과 그 학자들 예수님을 배제하고 다르게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사야 말씀은 예수님 이전에 그것도 칠백년에서 오백년 사이에 쓴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내용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예언서의 말씀을 그들의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종'에 대한 표현이 이사야 40장에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종'은 이스라엘을 가리킬 때가 있습니다. (이사 41,8).
또한 이사야 예언자 자신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이사 49,5) 그런데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주님의 종'은 본문에서 이스라엘도 예언자 자신도 아닌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종이 누구일까요? 물론 교회는 '그'를 수난 받는 메시아로 그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예언서는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그대로 예언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이사 53, 6-7)
이사야는 유대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수난을 받는 '그'에 대해서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10-11절)
시편저자도 이사야 예언서와 견주어 마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통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는 온갖 모욕과 조롱 속에서 죽음을 맞으시며 성부께 청하신 기도 이십니다.
어떻게 시편의 기도와 이렇게 일치할 수 있을까요?
시편저자는 이렇게 하느님께 청원합니다.
“그들이 숨겨 놓은 그물에서 저를 빼내소서. 당신은 저의 피난처이십니다.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 주 주신하신 하느님, 당신께서 저를 구원 하시리이다.” (시편 31,5-6)
예루살렘을 다녀가던 이디오피아의 왕실 고관이 어린양으로 나오는 '그'에 대한 질문을 필립보가 예수님으로 설명해주고 그에게 세례를 줍니다. (사도 8,34-39)
이사야 예언서는 이런 대목도 전하고 있습니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이사 52,13)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일들을 아들에게 보여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요한 5,20)
십자가의 처참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참으로 비참하고 인간적으로는 실패처럼 보여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분의 표현대로 아버지께 순명하며 세상의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음을 스스로 맞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의 예언도 있었지만 당신 아들을 수난에서 영광스럽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인간적인 비참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명하신 아드님은 아버지에게 오셨던 대로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아버지께 순명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은 이 지상의 모든 것을 마치고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온전히 그 뜻을 따르며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에 알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의 소명은 다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 이루어졌다.”라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마치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로부터 전해 오는 '주님의 종'은 하느님의 계획대로 십자가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가 온갖 모욕과 박해를 받은 것은 우리에 대한하느님이 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그분께서 가신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보여 주신 하느님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을 이겨햐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