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8장
본장은 사마리아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기 직전에 선포된 말씀입니다. 당시 앗수르는 살만에셀 5세가 즉위하면서 영토 확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언제 침략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위기 상황이 오고 있었지만 에브라임은 안일과 나태에 빠져 쾌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에브라임의 수도였던 사마리아가 술에 빠져 방종하였고 교만하였습니다. 이들이 취하고 교만했다는 것은 그 곳 거민들이 물질적 풍요로 인해 영적 교만과 방종에 빠져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풍요가 도리어 멸망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들 물질이든, 지식이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이웃을 멸시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주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에브라임의 모습은 마치 쇠잔해 가는 꽃이 되버렸고 제철이 되기도 전에 먼저 익어 버린 무화과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마치 처음 익은 열매는 입맛을 돋우어서 사람들이 그것이 익자마자 따먹듯이 사마리아의 아름다움과 풍요는 앗수르의 탐욕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에는 단번에 먹혔던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한 면류관의 종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이렇게 “교만한 면류관”이요 “쇠잔해 가는 꽃”인 북이스라엘에 대하여 단호한 심판을 선언하면서도 그 가운데 의로운 남은 자에게 하나님의 영화로운 면류관을 쓰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을 향하여 믿음을 지키는 신실한 남은 자들의 구원은 결코 흔들림이 없이 확실히 보장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두 번째 부분인 7-22에는 남유다 지도자들의 죄악에 대한 책망이 나옵니다. 7절에 의하면 그들은 독주로 인해 비틀거렸는데 독주를 마시고 실수하는 일이 재판할 때에도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까지도 조롱을 했습니다. 10절에 말한대로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그들은 이런 식으로 조롱했습니다. 결국 이사야는 그들에게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는 13절의 심판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사야는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14절에서 “사망과 언약”을 맺은 “오만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망과 언약을 맺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맺은 협정을 말합니다. 사실 국제정세만 제대로 살폈더라면 애굽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유다는 끝까지 애굽을 붙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앗수르가 공격해 왔을 때 애굽은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무엇을 의지해야 할까요?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반석이신 우리 주님을 꼭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