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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주일설교 고린도후서4:7-15(질그릇에 담긴 보배)
본문: 고린도후서 4:7-15
제목: 질그릇에 담긴 보배
오늘은 고린도후서 4:7-15절의 말씀을 가지고
“질그릇에 담긴 보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질그릇에 담긴 보배”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가졌는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한 주간 어떤 빛에 의해서 사셨습니까?
자신의 건강이나 돈이나 지식이나 힘 때문에 사셨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자랑하며 그것을 드러내며 사셨습니까?
아니면 들은 말씀을 통해 깨닫고
말씀을 통해 확인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보고
여러분의 삶을 사셨습니까?
그래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이 생명을 누렸고
여러분의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사셨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안에 있는 영광의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가지셨습니까?
오늘 바울 사도는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보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난주에 나눈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질그릇에 담긴 보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질그릇에 담긴 보배
세상은 보배를 질그릇에 담지 않습니다.
보석을 담는 상자는 화려하고 품위가 있고 단단합니다.
보기에도 좋으며 보석이 상하지 않도록 탄탄합니다.
마음이 쏠리도록 아름다움과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종종 어떤 상품을 열어보면
포장에 비해 실망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포장지나 포장 박스보다
기대가 떨어진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는 보배를 가졌습니다.
그 보배가 무엇입니까?
보배는 앞에 본문에서 말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은
보배 중에 최고의 보배입니다.
이것보다 더 귀중한 보배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것을 보배로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귀중한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이란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흙으로 만들어 불가마에서 구운 것입니다.
어떤 질그릇은 여러 번 구워서
유약을 바르고 그림을 그려서
아름답게 보이고 멋지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 억 원의 가치도 있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질그릇은 화려하지도 않고 볼품도 없고
저렴한 가격의 질그릇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공통적인 것은 쉽게 깨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웃는 자와 우는 자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예라고 말하는 자와 아니라고 말하는 자의
차이도 크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충격을 받으면 아무리 고상하고 예쁘고
귀하게 보여도 그냥 깨지고 마는 것이 질그릇입니다.
왜 보배를 이런 질그릇에 가져야 합니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리석은 것은 아닐까요?
보배라고 하면
보물이라고 하면
그것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탄탄한 어떤 소재에 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강하다면 우리를 자랑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큰 능력이 내게 있다고
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라는 존재가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 졌고
사람은 흙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그런 질그릇 같은 존재인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는 이 보화를 담아 주셨습니다.
사람이 강하다고 하지만
파리 정도도 귀찮아 합니다.
그래서 파리가 다가오면 피하지
괜찮다고 하는 그냥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바이러스에 꼼짝 못하고
온 세상이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연약합니다.
하지만 이런 연약한 사람에게
보물을 하나님은 간직해 두셨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2.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질그릇 같은 우리가
보배로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가졌다면 어떻게 됩니까?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그 어떤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보배를 가졌다면
어떤 일이 우리에게 생기게 됩니까?
8-9절은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기도 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박해를 받기도 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 연약합니다.
사람들은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사람들이 눈길이 화살이 되어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보배가 있기에
그 보배가 우리에게 있음으로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있기에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있기에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어떤 것도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주신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을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출 수 있습니까?
우겨쌈을 당하는 상황에도
답답한 일을 당하는 상황에도
박해를 받는 상황에도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상황에도
어떻게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보배인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3.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변으로부터
우겨쌈을 당하는 일,
답답한 일이 당하는 일, 박해를 받는 일,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일은
우리 몸이 당하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이 당하는 일입니다.
그때 해야 할 일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져야 합니다.
그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겨쌈을 당할 때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육체의 혈기가 나옵니다.
내 육체의 억울함이 나옵니다.
내 육체의 원망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총독과 종교지도자들과
사람들에게 우겨쌈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혈기로 행하지 않고
억울하다고 하지도 않고
원망도 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저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십자가에 내려 놓으셨고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고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혈기도, 억울함도, 원망이나 탓도 못 박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합니다.
예수의 생명이 바로 보배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입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는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져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모든 혈기나
욕심이나 원망이나 탓이
예수님의 생명이 나오기 위해
죽음에 넘겨져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데
어떻게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날 수 있습니까?
내 혈기가 있고, 내 욕심이 있고,
내 원망이나 탓이 넘쳐나고 있는데
어떻게 예수의 생명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외치는 바울은 이렇게 정리를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내가 예수님과 함께 내 육체가 죽게 되면
나에게 무엇이 나옵니까?
예수의 생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나옵니다.
나의 혈기와 욕심과 원망과 탓이 사라지고
예수의 생명이 나오면 누가 좋습니까?
다른 사람이 좋습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이 좋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곧 예수의 생명이 나오면
나도 좋겠지만
내게서 나오는 빛을 보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서 사망은 내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내안에서 나간 하나님의 영광은 빛은
영의 직분으로서
사람들을 살리고
사람들을 자유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를 위하여 늘 몸을 죽음에 내맡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과 부활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을 때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서 살아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삶이 됩니다.
4.우리의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바로 우리 믿는 자들의 공통적인 태도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나는 예수와 함께 죽고
그래서 내 안에서 생명이 나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됩니다.
시편116:10의 말씀처럼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고 한 것과 같이
우리가 믿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 아노라”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죽을 때 또한 부활하게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육체적 죽은 후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현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그래서 내 육체가 죽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 주십니다.
무엇으로 살려 주십니까?
예수님과 함께 예수의 생명으로 살려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은
바로 예수 생명의 빛이고
예수 생명의 빛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빛이 됩니다.
이 모든 일은 다 너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영의 직분을 받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은혜를 받으면
내가 예수의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있으면
이 모든 것이 다 너희를
곧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퍼져서
그 사람들이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고.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관입니다.
여기 신앙에서 나는 없습니다.
나를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소용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죽어서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게 되면
내가 죽어서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있게 되면
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자가 되고
그래서 감사가 넘치고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같이 가는 것이지
남에게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에게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있었기에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전하면
어떻게 그 복음이 복음이겠으며
그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 같이 함께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만 맘 편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질그릇 같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는 보배가 있습니다.
이 보배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입니다.
왜 이 보배를 연약한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이 엄청난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습니다.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사실 환난과 난처한 일과 박해와 거꾸러뜨림은
육체를 가진 우리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며
참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내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에
그 환난을 난처한 일을 박해와 거꾸러뜨림은
나를 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내 속에 하나님의 지식이 나오게 합니다.
곧 예수와 함께 육체적인 것이 죽고
내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이 나와
죽음의 힘을 떨쳐 버리고 생명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힘을 주는 자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라면 그렇게 사는 것이 삶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하나님이
환난과 난처한 일과 박해와 거꾸러뜨림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아는 지식이 있는 자는
그 또한 살려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은 다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세상에 많이 퍼지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많이 퍼져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감사함이 넘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아멘을 하고 있다면
그는 질그릇 속에 보배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 자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할 것이며
그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생이지만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을 아는 빛, 지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식으로 살아서
내 육신은 예수와 함께 죽어
예수의 생명이 나와 살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은 나를 살게 하지만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을 살게 합니다.
그것이 보여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나를 만나는 사람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