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존스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꽤 신선했다. 30이 넘은 노처년데 몸무게 초과에 인물도 영. 하는 짓이라곤 줄담배에 술주정, 푼수짓뿐이었다. 그런데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던 건지 그야말로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홈런을 날려댔다. 상큼 발랄하고 청순가련한 20대의 싱싱한 것들만 주인공이 될 줄 알았는데 노처녀도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더란 말씀.
한국형 브리짓까지 삼삼오오 등장하기 시작했다. 청순했던 명세빈마저 노처녀 대열에 합류해 ‘결혼하고 싶은 여자’로 우왕좌왕 좌충우돌 고군분투하더니 이름도 삼십스러운 ‘삼순이’가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았다. 역시 몸무게 초과요 인물도 노멀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돈 많고 잘 생기고 나이까지 어린 삼식이를 꿰차버리는데 참, 놀랍다 싶었다.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까 싶기도 했던 삼순이의 반란.
자, 삼순이에서 끝날 줄 알았던 노처녀 성공기. 이거야 원, 줄줄이다. 나이도 훌쩍 뛰어넘어 33살의 별볼 일 없는 여자가 9살 연하의 꽃미남과 사랑에 빠지질 않나, 미스터 퍼펙트가이를 꼬시기 위해 안 되는 영어에 육탄공세까지 퍼붓는 언니 이야기가 TV와 스크린을 꽉꽉 채워줬다. 이를 부채질이라도 하듯 노처녀 붐은 식을 줄을 모른다. 예전엔 이처럼 노처녀가 사람들 화두에 오른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러나 정작! 노처녀 당사자들에게 이런 붐이 고맙지만은 않다. 이게 알고 보면 여느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사람들이 열광하는 노처녀는 사실 실제 노처녀와는 다르단 사실. 노처녀에 대한 진실과 거짓, 몇 가지만 확 꼬집어 보자.
노처녀에 대한 편견, 딴지를 건다!
▶ 남자도 여자도 아닌 털털한 푼수?
까탈스럽지도, 예민하지도 않다. 무디다 못해 곰이 아닐까 싶을 정도. 여성스러운 옷차림 보다는 편함을 가장한 캐주얼 차림이 대다수. 긴 생머리 따위는 애초에 없다. 웨이브 진 단발이 노처녀의 대표적 헤어 스타일. 이뿐인가. 걸핏하면 실수하고, 넘어지고, 오해 받고, 그래도 귀엽게 봐주고. 무슨 중성도 아니고 여성적인 느낌이 모자라다.
현실에선? 노처녀도 여자다. 오히려 더 예민해지고 여성스러워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이가 뭐 성호르몬까지 뺏는 건 아니니까.
▶ 노처녀면 폭음, 흡연 쯤은 예사?
어찌나 술고래들이 많은 지. 노처녀면 하루 걸러 하루 술 마시는 것은 예사인가 보다. 술주정도 곱지 않아 노상방뇨를 하는가 하면, 남자와의 하룻밤(?)도 불사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 게다가 당연히~ 담배는 핀다고 생각하는 편견!
그러나 차라리 술로 위로 받는 노처녀는 낫다. 술도 못 마셔, 놀 줄도 몰라, 그래서 방구석에 앉아 TV나 보고 친구들 만나면 수다떨기 바쁜 밋밋한 노처녀도 허다하다. 음주, 흡연, 그건 나이들 때 거치는 통과의례는 아니니까.
▶ 9회말 2아웃, 역전은 이뤄진다?
말년에 복이 든 건지 남자가 꼬이고, 꼬이고, 또 꼬이는 노처녀. 재벌 2세, 실장님, 후배, 아는 동생, 사장님, 정말 괜찮은 남자는 다 꼬인다. 게다가 눈치는 어찌나 없으신 지 숱한 남자들의 눈길에 둔감하다. 이 정도 꼬이면 역전이 아니라 콜드게임 정도는 되는 게 아닐까?
바닥치고 일어서는 인생역전이 그리 쉽게만 된다면 까짓 거 노처녀 생활 해볼 만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신데렐라 스토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여주인공만 바뀌었을 뿐이지, 남자주인공들의 면모는 다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나이 든 언니들에게 헛된 희망만 마구 심어주는 ‘못된’ 역전스토리.
▶ 늙으면 무식하고 용감하다?
사랑은 쟁취라고 했던가! 늙어서 그런 건지, 앞뒤 재볼 것 없이 몸이 달아 그런 건지, 노처녀는 무식하고 용감하게만 보인다. 수줍어하던 옛적 그 모습은 간데 없고 마음에 드는 먹이가 포착되면 한 달은 굶은 사자처럼 돌진하기 바쁘다.
아니, 사람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런 억울할 데가! 실패도 많이 하고, 연애전선에 잔뜩 구름이 껴 있었는데 용기가 생기겠는가! 오히려 더 몸 사리고, 더 자학하기 바쁜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처녀는 그저 용기백배, 불도저급이다. 알고 보면 목 움츠린 자라일 뿐인데.
▶ 그 나이에 성격이라도 좋아야 한다?
나이도 많아, 외모도 늙어, 그렇다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한다? 왜 노처녀는 성격이 마냥 좋아야 하는 지. 돌부처급 관용과 인내와 베품을 지니라는 사람들의 강요에 노처녀들의 히스테리는 안으로 곪고 곪아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성질 좀 부리면 안 되나? 이기적으로 굴면 안 되나? 화내면 안 되나? 가뜩이나 외로운 인생, 착하게 굴라고 강요한다면 노처녀, 폭발할 지 모른다.
▶ 아직도 소녀적 망상을 갖고 있다?
왜 이리도 순진한 노처녀가 많은 지. 아직도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날 거라 믿는 노처녀, 그렇게 겪어 놓고도 열정적인 사랑을 믿는 노처녀. 딱하지만 꿈을 깨줘야 하는데.
사실은 사랑 따윈 필요 없다고 말해야 노처녀 다운데, 사람들은 동화 같은 사랑에 목매는 소녀적 망상환자를 ‘대표급 노처녀’로 분류한다. 이건 희귀종인데도 말이다. 닳고 닳아 사랑에 대한 시니컬함을 지닌 노처녀가 얼마나 많은데, 결국 사랑도 현실임을 안 노처녀가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여보세요! 노처녀, 다 그런 건 아니라구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사람들이 노처녀에 관심이 많다. 왜 그 나이 되도록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본 건지, 얼마나 푼수 같이 행동하고, 얼마나 철이 없는 지 궁금하다 못해 연구까지 할 기세다.
사실 노처녀, 나이만 든 것뿐인데 사람들의 호기심은 너무 일방적이라 편견까지 만들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노처녀 이미지에 관심을 보인다. 실제론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할라치면 동년배 남자들보다 더 높은 가입비를 내야 하고, 실장님은커녕 수컷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도 않는 노처녀 신세를 안다면 정작 재미있는 상황이 아님을 알 텐데 말이다.
노처녀? 털털하고, 용감하며, 푼수 같고, 술 잘 마시는, 덜 자란 어른, 이런 노처녀는 사실 얼마 없다. 그러니 잘 모르는 지식을 가지고 노처녀의 로맨스네 뭐네 제발 영화든 드라마든 그만 만들어 주실 일이지, 차라리 전국 노처녀 연애추진모임이라도 만들어 성사시켜준다면 그때라면 감사히 여길 텐데 말이다.
글 : 임기양 기자 ㅣ 젝시인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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