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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주일설교 고린도후서4:16-18
본문: 고린도후서4:16-18
제목: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고린도후서4:16-18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질그릇 담긴 보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사셨습니까?
여러분 안에 보배가 있음을 느끼며 사셨습니까?
질그릇 같은 인생이지만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빛, 지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사셨습니까?
그 지식으로 살아서
내 육신은 예수와 함께 죽어
예수의 생명이 살도록 하셨습니까?
예수의 생명이 나를 살게 해서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살게 하셨습니까?
그래서 나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만나는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인도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1.어찌 낙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낙심할 일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우리의 겉 사람
곧 몸이 낡아진다는 사실입니다.
몸이 낡아지면서 몸이 아픈 곳이 많아집니다.
뛰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빨리 걷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루 밤만 자지 못해도
여러 날 피곤함에 힘들어 합니다.
좀만 과식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하려고 했던 일이 무엇인지 몰라
한참 서 있어야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무엇인가를 보려면 안경이 필수품이 되었고,
매일같이 약을 먹어야 살게 되었고
허리도 무릎도 어깨도 아픈 날이 많아집니다.
물론 저야 그렇게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예전에 비해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잘 나갔던 분들은 많은 차이를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 날아다니듯 했던 분들,
무엇을 해도 피곤함도 못 느끼고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 했던 분들은
과거가 그립고 현재가 그렇지 않음에 대해서서
낙심이 되고 속상하고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육신 곧 우리의 겉 사람이
낡아지는 것으로 낙심합니다.
이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낙심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전부라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늙어가는 사람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지난 두 주 동안 말씀을 통해
살펴본 그 존재입니다.
우리는 영의 직분을 받은 자입니다.
영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살리는 자이고 자유롭게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빛이 우리 마음에 반짝이는 자입니다.
그 빛을 가지고 세상에 나타내는 자입니다.
이 빛을 가지고 사는 자는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세상 신을 따라 세상에 빠져 사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우리 마음에 비춤을 통해 사는 자입니다.
오직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빛을 찾으며
그 빛에 따라 자신을 살피며
그 빛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예배드리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으로
생명의 삶을 살며
다른 사람을 살리며
다른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질 그릇 같은 연약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는 보배가 있습니다.
이 보배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입니다.
내 능력은 내 몸에서 연약한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습니다.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와 함께 육체적인 것이 죽고
내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이 나와
죽음의 힘을 떨쳐 버리고 생명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힘을 주로 자로 살게 됩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우리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예수를 주로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의학이 그렇게 발전해도
수십 수백조의 돈을 가진 재벌 총수도
자신의 생명을 유지 못하고 죽는 것을 봅니다.
우리 몸이 낡아지는 것은 이치대로 그렇게 됩니다.
때가 되면 낡아지게 됩니다.
그것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라면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겉 사람은 낡아집니다.
그것을 우리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속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속사람은 겉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속사람은 겉 사람처럼
나이를 먹는 다고 늙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90세 노인도 마음은 소년, 소녀의 모습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었지만 아이 같은 모습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90세 나이라고 해도 5살의 모습도 있고 20살도 있고
50살의 모습도 70의 모습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음은 늙을 수도 있지만 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종종 애 늙은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는 어린데 마음은 늙어 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늙을 수도 있고, 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진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다른 세상 사람의 속사람과 다릅니다.
세상의 속사람은 나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물론 나름대로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와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에 따라 마음이 따라갑니다.
마음이 젊어지기 보다는 늙어집니다.
전에 겁이 나지 않던 것이 겁이 나고
전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전에 자신 있던 것들이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생각을 하는 곳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생각이 있는 곳입니다.
마음은 생각하는 곳이고
생각은 행동하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예수와 함께 내 육신이 죽고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어
예수님의 얼굴빛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받아 살게 되면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그는 예수의 생명으로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되면 마음이 젊어집니다.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마음에 생명력이 있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나이가 든다고 낙심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육신이 연약함에 낙심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육신의 아픔에 낙심하겠습니까?
내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생명이 있는데
내 속에 강력한 생명의 빛이 있는데
내 속에 넘쳐나는 강함이 있는데
어떻게 겉 사람의 낡아짐으로 낙심하겠습니까?
어떻게 겉 사람의 연약하거나
아픔 때문에 낙심하겠습니까?
2.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이루어짐
우리는 이 땅에서 유한한 세계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침을 먹으면 점심을 또 먹어야 합니다.
오늘은 건강하다가
내일은 아프기도 합니다.
아기 때가 영원하지 않고 청소년이 되며
청소년의 때도 영원하지 않고 중년이 되며
중년의 때가 영원하지 않고 노년이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잠시 뿐입니다.
어떤 기쁨도 잠시 뿐이며
어떤 노함도 잠시 뿐이며
어떤 사랑도 잠시 뿐이며
어떤 즐거움도 잠시 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목적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사라져 버리는 그것을 붙잡을 것이 아니라
그 사라지는 것을 통해서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먹기 위해 삽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삽니까?
성공을 위해서 삽니까?
기쁨을 위해서 삽니까?
행복을 위해서 삽니까?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목적입니까?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지나치는 것들은 가벼운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자고 얻고 누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가벼운 것들입니다.
그것은 가벼운 것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갈
삶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돈과 건강과 힘으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고
그것을 통해서 남을 누르고
억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용 설명서대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의 설명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물건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납니다.
성경책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제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책이 남을 때리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되고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 환난이 있습니다.
몸이 아프기도 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시련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상처나 고통이나 어려움이
기도로 바뀌고 있으며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되고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까?
그것을 아는 자들에게는
환난이 고난이 아픔이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시험들은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온전히 기쁘게 여길 것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고보는 너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되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영원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는 도구일 뿐입니다.
3.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봅니다.
계속해서 본문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고 삽니다.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속에 무엇이 있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좋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건강만 좋으면 다 좋다고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 보이지만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돈이 아니라 사랑과 선을 바라보며
물질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를 바라보며
명예가 아니라 평강과 기쁨을 바라봅니다.
돈이 그러하듯
물질이 그러하듯
명예가 그러하듯
그것들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어제의 돈이 오늘 내 돈이 아닙니다.
어제의 물질이 오늘의 물질이 아닙니다.
어제의 명예가 오늘의 명예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돈과 물질과 명예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영원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은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것을 추구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돈 잘 벌기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가가 위해서라고 하면
오늘 본문 말씀은 틀린 말씀이 됩니다.
물론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 곧 영광의 중한 것을
바라보는 과정 중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어 부자가 된 사람이 있고,
예수 믿어 건강해진 사람도 있고
예수 믿어 명예롭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니
그러한 것들이 생길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은 오직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낙심하고 있습니까?
코로나 19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해서 낙심합니까?
몸이 건강하지 못해서 낙심합니까?
돈이 없어서 낙심합니까?
집을 구할 수 없어서 낙심합니까?
명예를 얻지 못해서 낙심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속에 누가 계신지
무엇이 있는지를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여러분 속에 비추고 있습니까?
예수의 생명으로 빛나고 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서
생명의 역사가 세상에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러한 것들은 지금 겪는 일시적은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보고 사는 자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고난이나 l
아픔이나 부족함을 바라보는 자가 아닙니다.
영원히 있을 하나님 나라
영원히 있을 예수님이 주시는 그 생명
영원히 있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바라보며 사는 자입니다.
그 속사람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있을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영원한 그것을 바라보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