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23/어느 위촉장]평화통일만이 살 길인데…
살다 보니, 최근 사진과 같이 큰 위촉장委囑狀(가로 54×세로 39cm)을 대통령을 대신한 임실군수로부터 다 받아봤다. 현 대통령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약칭 평통) 자문위원으로 위촉을 한 것이다. 하필이면 내 평생 처음으로 나락을 베는 날이어서 직접 받지는 못했다. 일단 크기가 크고 보니 뭔가 그럴 듯했다.
전국 조직이 아니고 전세계 조직. 대통령이 자문회의 의장인 직속기관. 임기 2년(2021년 9월 - 2023년 8월)의 무보수 명예직.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1981년 설립했으니 창설 40년. 그래서 20기 자문위원이다. 전국 228개 시군구와 해외 131개국 45개 지역에 협의회가 있다고 한다. 2만명의 자문위원. 10개 분과위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고, 지역협의회별로 분기별 정기회의가 있어 회의할 때마다 소정의 거마비가 있다고 한다.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통일에 관한 국내외 여론을 수렴하고, 통일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며, 범민족적 의지와 역량을 결집하는데 앞장설 뿐더러 대통령의 평화통일 정책에 관한 자문과 건의를 한다고 명기돼 있다.
그래, 이름이야 오래 전부터 들어봤는데, 그런 조직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런 기능을 얼마나 충실히 잘 하여 정말로 평화통일에 얼마마한 기여를 할까. 어쩌면 단순히 현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박수부대’ 성격의 전위대前衛隊나 둘러리가 아닐까. 내년에 정권이 바뀌어도 자문위원 임기가 보장된다는 것도 희한했다. 어떤 사람들이 자문위원이 되는 것일까. 나는 초선이지만 3선도 더 되는 듯한 어느 국회의원이 추천한 덕분이었다. 정당 대표나 국회의원들이 추천한 인사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한다고 한다. 유력한(?) 일간지 기자 20년, 유수의 사립대 홍보위원 11년, 공공기관 홍보위원 5년의 경력이 빛을 발했을까.
그나저나 이 새벽, 자문위원 위촉을 계기로 새삼 ‘평화통일平和統一’이라는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제를 생각해 본다. 평화와 통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것같아 걱정이다. 가까운 예로 나의 두 아들만 해도 통일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는 것같다. 평화와 통일을 화두話頭로 부자간에 한번도 얘기해 본 적이 없다. 내 장인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통일 걱정을 하셨건만. 대한민국(남한)과 북조선인민주의공화국(북한)은 유사有史이래 일란성 쌍둥이였던 것을, 어찌하여 허리가 두동강이 나 이렇듯 첨예한 대립을 70년째 하고 있는 것인가.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정치를 얼마나 못하면 남북이산가족들의 한恨 하나 풀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1983년 공영방송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프로그램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때의 감동이 기억나지 않은가.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의 요체要諦가 아닌가 말이다.
그 세월.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이름이 있거나 없는 애국지사들은 또 무릇 기하였던가. 누구라도 이토록 가슴이 먹먹한 아픔을 씻지 못하면 결국은 우리 몸 속에 암癌덩어리가 되고 마는 것을. 우리는 이미 중증의 ‘민족암民族癌’에 걸린 지 오래이지 않은가. 진정 수술조차 불가능한 것인가. 남북통일 협상전문가도 있고 학자들도 많았고 지금도 많건만, 이 답답증과 깜깜터널은 언제나 서광曙光이 비치려나. 대통령이 재차 제안한 남북한 종전선언終戰宣言은 강대국들의 이해타산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아주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일인 것을. very important and very urgent. 오호라, 통재로다!
우리는 평화통일이란 네 글자 앞에 반드시 떠올리고 머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해야 할 위인이 있다. 평화통일운동의 선구자 김낙중金洛中(1931-2020) 선생. 그는 1955년 24살의 나이에 전쟁 반대를 외치며 수립한 평화통일방안을 북한의 김일성을 만나 피력하고자 임진강을 홀로 헤엄쳐 건넌 열혈청년이었다. 북한에서 한 번, 남한에서 네 번 간첩혐의로 고문, 투옥 등 가시밭길로 점철된 89년의 세월, 앉아 죽기보다 서서 죽기를 희구한 그는 평소“눈물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한다. 1985년 펴낸 『굽이치는 임진강』은 통일운동의 개인백서이고, 2013년 펴낸 『인류문명사의 전환을 위해서』는 통일운동에 대한 유서였다.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는 50년이나 ‘고정간첩’이라는 누명을 쓴 그를 양심수로 지정하고, 국제펜클럽은 그를 명예회원으로 선출했다. ‘간첩의 딸’은 아버지 ‘통일 장정’의 일생을 처음으로 이해하며 『탐루探淚』라는 책에서 외롭게 외치고 있다. https://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843 그는 민족의 이름으로 영원한 무죄이자 애국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절판된 책들을 구하기 쉽지 않지만, 지금 그 책을 읽어도 피가 끓는다.
『장산곶매』라는 기똥찬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백기완 선생도 지난해 돌아가셨다. 굶어죽어가는 북한 동포를 무슨 수를 쓰든 살려야 한다며 ‘쌀 보내주기 운동’을 펼쳤으나, 정부는 그 쌀조차 보내지 못하게 했다. 늦봄 문익환 목사님도, 김낙중 선생과 백기완 선생님도 통일統一의 ‘통’자도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눈을 감으셨다. 판문점 다리를 나란히 걷던 문재인-김정은 지도자는 한민족을 위한 위업을 정말 쌓을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민족통일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굽이치는 임진강'이라는 노래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고, 처음 들어본다. 그나마 김낙중 선생의 영혼을 달래드리는 것같아 참 다행이다. <외로이 흐르는 강/어둠에 잠긴 강/피어린 아픔 안고서/꿈틀대는 강/시퍼런 너의 물결은/전사의 원한이련가/잘려진 산하 부여잡고/몸부림 치는 강/아 분단의 강/붉게 타는 임진강/조국을 하나로 이어이으며/굽이쳐 흘러가네/아 해방의 그날을 맞이할/아 민족의 물줄기여/아 통일의 강이여/아 투쟁의 강/붉게 타는 임진강/조국을 온몸으로 이어이으며/굽이쳐 흘러가네/아 해방의 그날을 노래할/아 민족의 물줄기여/아 통일의 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