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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동지>(13회) 길 교수의 옛 친구 길태선 교수는 탑골공원 정문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운 북촌에 살며 인사동길을 매주 두 차례 드나들었지만 바로 길 하나 사이로 인접한 탑골공원에는 딱히 볼일이 없었다. 언제 공원 안을 들어가 보았는지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했다. '삼일문'이라 쓴 한글 현판이 걸린 정문을 들어서서 다시 공원 내부를 훑어보았다. 공원 한가운데의 팔각정과 원각사지 십층 석탑이 눈에 들어오고, 서문 쪽 담벼락 밖에 길게 이어진 노인들의 행렬이 보였다.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급식’이 퍼뜩 떠올랐다. 옛 친구 석홍과 만나기로 약속한 팔각정 계단에는 이미 노인들이 여럿 앉아있었다. 그들은 무료 급식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늦은 식사를 감수하더라도 줄 속에 서서 기다리기 보다 그늘에 -86- |
서 쉬다가 끝물에 따라붙는 쪽을 택한 영리 족이거나 둘 중 하나로 보였다. 그들은 느긋하게 앉아 얘기를 나누거나 멀뚱히 어딘가를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태선은 팔각정 계단에서 앉을만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동문 쪽으로 이삼십 보 이동하여 오동나무 곁의 돌의자에 앉았다. 화강석을 네모지게 깎아 만든 돌의자는 등받이가 없고 엉덩이가 아파서 불편했지만, 눈에 잘 띄는 곳이라 그냥 앉기로 했다. 어젯밤 그의 전화를 받고 종로3가역에 내려 탑골공원 팔각정 앞으로 오라고 일러두었다. 그와 헤어진 후로 48년이 흘렀다. 오래된 인연이지만 흐른 세월만 따져 그렇지 1959년에 만나서 고작 삼 년 남짓 함께했을 뿐이다. 그가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오십 년 가까이 소식을 모르던 터라 태선은 그가 죽었다고 믿었고, 그를 생각할만한 일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 옛일을 회상할 때면, 그는 수평선에 떠 있는 섬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그와 함께 보낸 이십 대 중반의 삼 년은 그의 삶에서 잊기 어려운 고비였음이 분명했다. 노인 하나가 들어오더니 팔각정으로 다가가 계단에 앉은 노인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이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좌우를 살펴보다가 태선과 눈이 마주치자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태선은 그에게 시선을 둔 채 돌의자에서 일어났다. 노인이 노인을 볼 때는 그자의 허리가 꼿꼿한지 목은 앞으로 빠지지 않았는지가 먼저 눈에 -87- |
들어온다. 그는 허리가 꼿꼿하고 눌러 쓴 헌팅캡 아래로 백발이 무성한 머리를 어깨 위에 반듯하게 얹은 노인이었다. 태선은 명치 끝이 서늘함을 느꼈다. 필경 그자이리라 짐작하면서도 얼굴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길 선생 오랜만이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이석홍 선생?” 내민 손을 잡으며 태선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노인의 얼굴에서 그 옛날 석홍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선생은 나를 알아보나 본데, 난 아직도 영 못 알아보겠소.” “나야 저명한 교수님을 모를 리 있겠나. 간간이 봤었지. TV를 통해서도 봤고, 또 언젠가 선생의 책에서 사진을 보기도 했으니까 낯설지는 않아.” 그가 자신이 이석홍임을 밝혔고 손도 잡았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었다. 눈앞에 서 있는 노인의 얼굴에서 그의 옛 모습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은 마음이 그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지 어색하기가 짝이 없고 반가운 마음마저 들지 않았다. 이십 대에 만나 몇 년 동안 깊은 심리적 유대감을 공유했지만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당장 마주 보는 얼굴에 이질감이 더 컸다. 그러던 중, 마치 천에 물이 번지듯이 그의 모습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가 말을 하거나 웃을 때 짧은 순간 나타나는 입모습과 그것의 움직임이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주었다. 여드름 자국 -88- |
이 숭숭하던 뭉툭한 콧방울과 돌출된 광대, 그에 비해 좁은 하관과 두툼한 입술, 퍼즐은 조금씩 아귀를 맞추어가더니, 어느새 칠십 대 의 노인과 이십 대의 젊은이가 비슷하게 아귀를 맞추었다. 한 번 아귀를 맞추고 나자 그때부터는 진도가 빨랐다. 그것은 해묵은 오해가 어느 날의 말 한마디로 풀렸을 때나, 꿈속에서 가위눌렸다가 간신히 빠져나올 때 같이 숨이 탁 터지는 시원함을 동반했다. “그래, 맞아! 이 선생이 맞아! 웃고 말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그제야 맞춰져, 과거와 지금의 얼굴이!” 태선은 큰 소리로 외쳤다. 오십 년을 흘려보내는 동안 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눈빛이었다. 그는 매우 강렬한 눈빛을 지녔었고, 그 눈빛은 끊임없이 밖으로 뿜어나왔다. 그것이 가장 두드러진 그의 특징이었는데, 지금 그의 눈빛은 오랜 영적 수련을 겪은 사람의 그것처럼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헌팅캡을 눌러 쓴 아래로 그늘에 가려진 눈은 웬만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다. 얼굴의 빛깔도 낯설었다. 기억 속의 그는 검게 거슬린 얼굴인데, 지금 눈앞에 보는 그는 표백제에 오래 담가둔 광목처럼 바랜 느낌이랄까, 과거의 그를 검정으로 정의한다면 지금은 회백색이라고 할만했다.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오십 년은 긴 세월이었다. 태선은 문득 그간 석홍의 삶이 상상 이상으로 녹녹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89- |
석홍은 감회에 젖은 얼굴로 팔각정과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바라보았다. “가세. 점심 먹어야지.” 태선이 정문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저 탑은 유명한 탑이잖아. 그런데 왜 유리 틀 속에 넣어뒀지?” 태선이 원각사지 십층 석탑을 가리켰다. 국보 2호이며 극치의 남성미와 여성적인 아름다움까지 함께 내장한 위대한 조형물을 마치 모형 종을 보관하듯 밋밋한 유리 부스 안에 가두어 둔 것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비둘기들이 탑에다 똥을 싸대서 그랬나 본데.” 유리 부스 위에 묻은 비둘기 배설물을 보며 태선이 대답했다. 마침 부스 주변에 비둘기 네댓 마리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팔각정 곁을 지나며 태선이 한마디 더 했다. “이곳 팔각정에서 기미년 3월 1일에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했었지. 실제로는 일경과의 유혈 충돌을 우려한 나머지 인사동 태화관에서 했지만.” “그런데 이승만의 동상이 있었던 장소는 어딘가? 4.19혁명 직후에 끌어내려지는 걸 신문에서 봤었는데.” 석홍이 줄곧 그 생각을 한 사람 같은 얼굴로 물었다. “글쎄, 그 생각을 못 했었네. 혹 저 손병희 선생 동상 자리에 계셨나?” 태선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은 탑골공원의 동문 골목을 지나 수표로에 있는 ‘종로 진 -90- |
낙지’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무 사람쯤 앉을만한 홀에 노인 몇 사람이 앉아 식사 중이었다. 이쪽 골목으로 와서 점심을 먹는 노인들은 탑골공원 주변의 노인 전용 식당이나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는 노인보다는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었다. 아마 주변의 기원에서 바둑을 두다가 나왔거나 낙원상가의 실버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을 터이다. “여기 낙지갈비탕 둘하고, 막걸리 하나 주세요.” 태선이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막걸리 괜찮은가?’ 하고 묻자 그는 ‘한 잔 정도는 괜찮지.’라고 대답했다. “종로는 노인들 천국일세. 여긴 뭐든지 싸거든. 영화관은 이천 원을 받고 이발도 이삼천 원이면 돼.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 “다 끝난 노인처럼 말하는군. 한때는 저명한 교수님께서.” 그의 말투는 핀잔을 주듯 퉁명스러웠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 다 똑같은 노인일 뿐인데.” 그때 주인인 듯한, 육십이 넘어 보이는 여자가 갈비탕 둘과 막걸리 하나를 쟁반에 받쳐와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태선이 막걸릿병을 들고 병마개를 돌려서 빼고는 옆구리를 꾹꾹 눌렀다. 그런 다음 마개를 다시 닫아 막걸리가 하얗게 섞일 때까지 빙글빙글 돌려서 흔들었다. ‘흔든 뒤에 마개를 따면 잘못하면 넘치거든.’ 하며 병마개를 돌려 뺀 뒤 노란색 양은 대접 두 개에 반쯤 -91- |
차도록 따랐다. “자, 먼저 목부터 축이지!” 둘은 오십 년 만에 술잔을 마주 댔다. 두 사람 모두 목이 아닌 입술만 살짝 적시고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갈비탕에다 낙지를 넣은 건데, 노인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네.” 태선이 수저통에서 젓가락과 숟가락 두 벌을 꺼내 한 벌을 석홍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 석홍은 그때까지도 별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그래 일본에서는 어떻게 살았나?” 서너 숟가락을 뜨다가 태선이 물었다. “뭐, 그럭저럭····, 그 사이 가끔 들어왔었지. 길 선생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였지만.” “아, 그랬었군. 그 일 후에 이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난 참 우연한 기회로 몇 년 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어. 대략 이십 년쯤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했지. 그쪽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왔기 때문에. 그 후라면 연락이 됐을 텐데 왜····” 귀국 후에 연락을 왜 안 했냐고 묻는 말에 석홍은 대답하는 대신 좀 길다 싶게 태선을 응시했다. 가라앉은 눈빛 그대로, 많은 생각을 눈빛에 담아 밀어내는 듯했다. 태선은 알 듯 모를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92- |
식사를 마치고 막걸리를 한 잔씩 비운 다음에 석홍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다시 탑골공원으로 갔다. 공원 안으로 들어와 이번에는 서문 쪽에 있는 나무 벤치를 찾아 앉았다. 석홍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길 동지!” “······” “교적을 잊지는 않았겠지?” “아니, 지금 와서 교적이라니?” “교적은 살아있네. 오히려 그 후 많은 변신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 일도 하였고····” 석홍은 지난날을 회상하듯 잠시 침묵의 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앞으로 할 일이 더 크지만.” “자네는····” 태선은 말을 하려다가 말고 석홍을 쳐다보았다. 그 사이 석홍이 다시 말을 하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번 입을 연 석홍은 오십 년 동안 자신이 한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석홍의 말이 길게 이어졌지만, 태선은 숨이 막히는지 연신 짧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이 선생! 자네 이런 말 위험하다는 거 알 텐데? 난 오래전에 떠난 사람이네!” 태선이 유일하게 한 말이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 거 아니겠나? 남쪽 사회는 이미 변했네. 자네가 날 신고한다고 해서 이 늙은이를 잡아갈 사람이 있을 -93- |
까? 외려 자네만 시대착오적이고 실없는 늙은이로 매도 되고 말걸?” 석홍은 얼굴에 미소마저 띠며 말에 거침이 없었는데, 어느새 오십 년 전 그의 눈빛이 되살아 나 있었다. 석홍은 그 눈빛으로 태선의 미간을 태워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오십 년 전, 그분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내려와 하나하나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실 때 우리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잊었는가? 그때 우리에게 목숨 따윈 서 푼어치도 아니었어!” 석홍이 손을 뻗어 태선의 손을 잡았다. 말을 마치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듯 잔기침을 몇 차례 한 뒤였다.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게! 아니, 부탁이 아니네. 이건 조선 반도를 위해서, 그리고 자네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할 일이네!” 그는 태선의 머릿속에 자기의 말을 차곡차곡 접어서 밀어 넣기라도 하려는 듯이 한 음절 한 음절에 힘을 실어 말했다. 그중에서 ‘자네를 위해서도’ 할 때는 손아귀에 힘을 실어 태선의 손을 아프도록 움켜쥐었다. 들국화 다실에서 커널 장과 배 사장이 얘기를 나누다가 태선이 들어오자 일어나 반겼다. “공산혁명 구호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뒤엎고 혁명으로 결집하자.’라 쓴 피켓이 등장했습니다. 무슨 총련이니 무 -94- |
슨 연맹이니 하는 NL 계열들인데 이젠 아무 스스럼없이 정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태선을 보자 커널 장이 다급하게 건넨 말이었다. 배갑수도 거들었다. “이 정도면 내전 아닙니까? 외신 기자들이 찍어서 내보낸다면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 내전이 일어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광화문에서 안국동, 종로3가, 종로2가, 종각까지 온통 사람으로 꽉 찼습니다. 경찰버스가 불에 타고 난리도 아닙니다.” 태선은 평소와 다르게 긴 한숨만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유독 어두운 얼굴로 짧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나도 봤어요.” -95- |
첫댓글 탑골공원에 이승만대통령의 동상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케 끌어내려졌다면, 419 직후의 일이었을 테고, 그렇다면 그건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세워졌다는 얘긴데... 419 이전까지만 해도 이승만이 현직대통령으로서 살아 생전 동상을 세울만큼 추앙을 받을 만한 인물이었던가 보군요. 아니면 독재의 서슬로 자신의 동상을 세우게 했던지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중요한 사건이 전개되고 있군요. 주인공의 이름을 애필레이션이라고 하는데 길태선 교수란 명명도 특별하네요. 나는 글을 읽어나가면서 문학적 수사에 관심을 많이 갖는데, "표백제에 담가진 광목"과 "천에 물이 번지듯이"란 표현이 눈에 띄는군요. 흥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탑골공원의 이승만 동상은 1956년에 세워졌으며, 1960. 4. 19 의거 후 하야 성명이 있고 나서 4.26일에 시민들에 의해 끌어 내려졌습니다.
이곳 말고도 여러 곳에 동상이 세워졌는데, 이는 아랫사람들이 신격화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세웠다는군요.
동상이 있던 장소는 지금 손병희 선생 동상 위치와는 다릅니다.
10ㅡ13편 읽었네요. 재희는 언제 깨려나? 이제 좌우의 갈등이 시작되는군요.
제기동 안동국시집 마걸리 생각이 나네....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