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2. 유달산
2019. 4. 금계
3월 28일 역전에서 내려 유달산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옛 청호시장 입구에서 내렸다. 기왕 내린 김에 장 구경을 하기로 한다. 빨갛고 노란 과일들이 봄 햇살과 어울려 참 밝고 상큼하기도 하다.
쑥을 비롯하여 요즘 먹을 만한 나물이 취나물, 머위 잎, 미나리, 돔방부리 따위이다.
오늘은 농어가 싸겄다. 어디서 점농어들이 잔뜩 시장으로 몰려 나왔다.
꽃가게를 들러야 삼천리금수강산에 봄이 무르녹았음을 실감한다.
“승객 여러분, 이 열차는 종착역인 목포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도 저희 철도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십시오. 해브 어 나이스 데이!”
유달산 올라가는 길에 들어선다. 도심지 가까이에 공원처럼 나지막한 산이 기다리면서 언제든지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것도 큰 행운이다. 아직 벚꽃은 안 피었어도 개나리는 만발했을 것이다.
‘정혜선원’이라 쓰여 있지만 지붕의 형태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사찰임이 분명하다. 개항 100년이 넘었다는 목포에서 근대역사 기념물이라는 것이 대부분 일제강점기의 건물들이다.
깔크막이 심해서 숨이 가빠올 무렵 활짝 핀 목련화가 어서 오라며 씩 웃는다. 목련꽃을 지나면 벽화가 그려진 벽화 골목이 나온다.
벽화 남농 허건. 살아생전에 오거리 덕인주점에서 가끔 뵈었는데 꼭 이런 분위기였다. 목포 동양화 부문에서 이분을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 지금은 갓바위 관광특구의 ‘남농 기념관’에 가면 이분의 세계를 상세히 살필 수 있다.
신안군 안좌면 출신. 우리나라에서 그림 값이 가장 비싼 화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그분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세계를 돌아본 결과 느낀 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삼학도 전설 속의 큰애기들만 한이 많고, 목포만 눈물이 많은 것이 아니라 이난영 여사의 일생도 한이 많고 눈물로 점철되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난영의 세 딸 김 시스터즈 그림 옆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성공할 때까지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했어요.”
목포에서 태어난 무용가 이매방 선생 (1927 - 2015).
무형문화재 27호 승무예능보유자. 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예능보유자.
이매방 선생이 승무 추는 그림,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단다.
“얇은 사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유달산 입구. 달선각 아래 활짝 피어난 개나리들이,
“어서 와. 지난 일 년 잘 지냈지? 올해 유달산 꽃구경은 처음이지?”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건넨다.
여기서 보면 노적봉은 그저 평범한 바위에 불과하다. 노적봉의 뒤통수인 셈이다. 반대쪽에서 보면 옛날에 충무공이 바위에 볏짚을 둘러 큰 노적처럼 왜적을 속였다는 전설이 실감이 날 만큼 제법 멋지고 근사한 바위다.
유달산으로 올라가는 첫 관문. 오늘은 제법 전국에서 찾아온 상춘객들이 눈에 띈다.
나는 계단을 밟아 유달산 올라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유달산의 5부 능선을 휘감고 도는 일주도로 쪽으로 발길을 향한다.
일주도로 초입에 자리 잡은 카페 ‘복숭아꽃 살구꽃’, 옛날에는 ‘예스터데이’를 LP판으로 틀어주어서 제법 분위기가 아늑했는데 이제는 찾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음악 감상이고 LP판이고 다 집어치웠다 한다.
아마도 유달산은 오늘이 개나리꽃이 절정이 아닌가 싶다.
유달산 오르기가 벅차고 숨이 가쁜 사람들은 이 평탄한 일주도로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꽃구경하기도 이 길이 안성맞춤이다.
어느 카페 입구의 무서운 수문장. 왜 하필이면 카페에다 이렇게 겁나는 문지기를 세워두었는지, 차라리 치워버렸으면 좋겠다.
팔각정 입구의 푸짐하게 화사한 목련꽃. 이 나무가 유달산 목련꽃의 대표선수다.
옛날에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이 팔각정을 거닐었는데 이제 다 어디로 갔는지 혼자 쭈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자니 쓸쓸하고 허전한 기분을 달랠 길 없다.
다리 아픈 할머니들이 잠시 돌에 주저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다. 백화점에 가면 앉아서 쉴 곳이 한 군데도 없지만 유달산에는 아무데나 주저앉으면 그곳이 바로 휴게소다.
볼록거울에 비친 유달산 일주도로.
이쯤에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달성사가 나온다.
조물주의 석공예 습작품인 유달산 일등바위. 습작품치고는 돌의 배치나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이 제법 힘차고 멋들어졌다.
산 아래 연등을 단 건물이 달성사.
무려 세 마리가 한 유모차에 올라서 쭈뼛거린다. 사진 찍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낯가림을 하는지 자꾸만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어렵사리 두어 장 찍고 나서,
“감사합니다.” 치하를 했더니,
“뭘요, 호호호.” 아주머니가 오히려 자기 개들 찍어주어서 고맙다고 좋아라 한다.
유달산 일주도로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풍경. 미세먼지가 뿌옇다. 우리나라의 요즘 화두는 정치가가 정치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행복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이고 니르바나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지, 그런 문제가 아니고 미세먼지를 어찌해야 하는지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벚나무가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이제 곧 팝콘처럼 하얗게 터뜨리려고 차분히 준비 중이다. 나는 일주일 뒤쯤 저 망울들이 뻥튀기를 시작하면 또 술벗들을 꾀어서 이곳 달성공원 주막에서 동동주를 마시고 주꾸미를 깨물며 꽃 잔치를 벌일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아슴푸레 보이는 유달산의 멋들어진 모습.
전에는 우중충한 색깔이었는데 밝은 색 지붕으로 확 바뀌었다. 아무래도 이건 유달산 관광객들한테 밝은 느낌을 주려는 시청의 아이디어인 것 같다.
유달산 일주도로 가운데 여기가 가장 개나리가 화려한 대목인 듯하다.
노인들 셋이 나랑 마주쳐 지나가면서 입씨름을 벌인다.
“아, 이 사람아, 땅만 내려다보지 말고 잠깐 쉬어서 개나리랑 구경하란 마시.”
“자네가 유달산 주인인가. 그냥 걷기도 힘든데 사람 너무 후툴지(훑지) 말어!”
일주도로를 걷다 보면 혜인여고가 나온다. 나는 저 그리스의 신전 모양을 본뜬 중앙 현관의 기둥장식을 퍽 좋아한다. 요컨대 학교 건물마다 무언가 특색이 있었으면 좋겠다.
건물 뒤의 큰 기둥이 유달산 케이블 카. 5월 준공을 앞두고 지금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지나가는 아저씨한테 부탁하여 한 장 찰칵.
혜인여고 뒷길에 새로운 명물. 이름하여 유달산 케이블카. 아직은 명물이 될지 흉물이 될지 헤아리기 어렵다. 손님들이 북적거리면 명물이 될 것이요, 손님이 없으면 흉물로 전락할 터이다.
4월 8일 저녁, 나는 다시 유달산을 찾아간다.
사진은 함께 간 김광헌 선생. 해마다 한 번씩 벚꽃이 만발할 즈음이면 우리 몇몇은 번개팅으로 유달산 달성공원에 모여 꽃구경을 하고 주막으로 들어가 술잔을 부딪친다.
올해도 여전히 주막의 남자주인은 손수 바다에 나가 그날 잡아온 쭈꾸미를 요리해준다. 동동주나 소주에다가 날로도 먹고 익혀서도 먹고, 싱싱한 쭈꾸미 맛이 아주 그냥 죽여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