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점夏季店
이미영
물을 끓인다
마른 찻잎을 보며 드는 생각
돌돌 말린 이것들이 벌레들을 위한 식단 차림표는 아니었을까
창밖으로 햇볕이 덖어놓은 이랑이 길게 펼쳐져있다
그곳으로 광합성의 식감을 즐기러 모여드는 벌레들
잇몸이 잎몸을 먹으려고 줄을 잇는다
하계점이 늘어선 야외는 초록을 고집하는 채식주의자로 북적거린다
뜨거운 공기를 타고 진동하는 풀 비린내
우화를 기다리는 도롱이벌레와 야시장 알전구를 자처하는 반딧불이가
잎에 구멍을 낼 때마다 천연의 가격표가 새겨진다
차나무는 왕성한 수요에 공급을 맞추느라 바쁘다
계절의 미각에 젖은 애벌레의 식탐이 나날이 푸르고 질기기에
엽록의 품목들은 둥글어지고
가끔 가을을 향해 가는 턱이 부서질 때가 있다
여름 차밭이 문전성시인 이유는 변함없는 초록의 신용 덕분이다
한철 장사라고 여기지 않는다
양질의 태양과 깊이 뿌리 내린 사계절의 내공이 비결이다
서리가 내리기 전, 계절의 크러스트까지 모두 대접하려한다
찻잎은 초록의 데자뷰
해마다 한순간도 다름없는 풍미를 선사하고 있다
찻잔 안에는 수백 종의 곤충표본사가 숨어있고
건땅과 냇바람과 개똥장마가 머금은 입맛도 발견할 수 있다
한 모금을 삼키면 진한 풀냄새가 난다
이미영
2019년 「시인광장」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