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밭회는 나고 자란 고향의 어릴 적 친구들 모임이다. 우리들의 엄마끼리도 친구이고, 우리들의 아버지끼리도 친구인 아주 끈끈한 우정이다. 오삼밭은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유년 시절에 우리들은 우리 마을을 오삼밭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 정다운 이름을 붙여 우리 5명 친구들의 모임을 오삼밭회라고 지었다. 모두 오삼밭 한 고을의 아래, 윗집에서 살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1년에 4번 정기모임을 갖는데, 오늘은 대전에 사는 친구가 있어 수도권 친구 4명이 기차를 타고 대전에 왔다. 대전 친구가 자가용을 주선하여 충북 옥천읍에 있는 육영수 생가에 왔다. 육영수 생가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100리 길의 마지막 장소에 있다. 육영수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다. 허물어진 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해 2011년 5월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이 집은 1600년대 정승을 지낸 김씨가 처음 지어 살았고, 이후 송 정승, 민 정승 등 3명의 정승이 살았던 집이라 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렸다.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육종관이 민 정승의 자손에게서 사들여 수리하면서 조선 후기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가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99칸 집이었다는 이야기처럼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건넌채, 안채, 뒤채, 행랑, 별당, 후원, 정자, 연못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육영수 여사는 내가 공주사대부고 재학 중 우리 학교에 오셨었다. 앨범에도 그날의 환영하던 사진이 있다. 그리고 내가 천안시의 초등학교에 첫발령을 받아 처음 부임했던 학교에서 1974년 8월 15일 일직당번 하던 중 광복절 행사를 시청하다가 저격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저녁 먹을 때 라디오를 켜니 오후 7시 뉴스에서 육영수 여사가 운명하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많은 충격을 준 사건이다. 우리 나라 역사의 아픈 고리 한 장면이다. 그런 회억으로 애절한 걸음을 옮기며 육영수 생가를 둘러보았다.
육영수는 충청북도 옥천 출신이다.아버지 육종관과 어머니 이경령 사이의 차녀다. 옥천 읍내 죽향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배화여고를 졸업한 뒤 옥천여자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1950년 전란으로 부산에 피란 중일 때 육군중령 박정희와 혼인하여 슬하에 지만, 근혜, 근영 1남 2녀를 두었다. 오늘날 그분의 첫째 딸인 박근혜가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시다. 육영수 여사님은 당신은 슬프게 떠나셨지만, 지하에서나마 이 사실을 아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이 5·16 군사정변을 주도하여 성공한 뒤 1963년 10·15총선거에서 6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연임됨에 따라 대통령 영부인으로 11년간 내조하였다. 만년에 맡은 공직은 양지회 명예회장과 자연보존협회 총재였으나, 평소 재야 여론을 수렴하여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청와대 안의 야당이라는 말을 들었다.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설립하는가 하면, 서울 구의동 일대에 어린이대공원을 조성하고 정수기술직업훈련원 설립을 비롯하여 재해대책기금조성과 정신박약아돕기운동 등 그늘진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회복지사업에 매우 바쁜 일과를 보내었다.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 창간과 서울대학교 기숙사 정영사를 건립하였다. 경향 각처의 여성회관 건립은 물론 연말마다 고아원, 양로원을 위문하여 따뜻한 구호의 손길을 미쳤고, 전국 77개 소의 음성나환자촌까지 일일이 순방하면서 온정을 베풀었다.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서울국립극장 단상에서 문세광에 저격당하여 최후를 마쳤다.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에 희생양이 된 격이어서 애도 인파가 청와대에 연일 쇄도하였는데, 국민장 영결식이 8월 19일 오전 10시 중앙청, 현 경복궁 광장에서 각국 조문사절과 내외인사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고 이날 오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묘비는 백일탈상 하루 전인 1974년 11월 21일에 제막되었으며, 이듬해 기념사업회도 발족되어 추모 책자를 펴냈다. 육영수 여사의 남편이신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에 오면 집무를 보시던 집도 있고, 곳곳에 방들이 많다. 그 당시 얼마나 큰 규모의 집인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가장 가슴을 울리는 것은 육여사의 생시 활동사진들이다. 화사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그날을 부른다. 관람을 마치고 연못 앞에서 벗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