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에서 신앙 생활을 한 성도라면, 누구든지 주일 성수 문제로 고민하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가장 큰 충격 중의 하나는 대학부 선배들이 주일날 후배들을 대리고 분식점에서 대리고 가서 성경공부 모임을 한 것이었다. --신앙의 자유라고 말하면서...
1) 재미있는 비교를 한 번 해 보겠다. 박윤선 목사님이 우리 교단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주일 성수 문제였다. 그때 주일날 선교사를 배웅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시점에서 주일날 택시를 돈 주고 탄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곳 미국 화란 교회에서도 주일성수 때문에 일어난 권징을 본적이 있다. 그 성도가 권징을 당한 이유는 예배시간에 특별한...
이유없이 상당기간 동안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이 기준을 따른다면, 주일 저녁 예배에 상습적으로 빠지는 사람은 다 치리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내가 다닌 교회는 주일 낮예배와 저녁 예배 참석 인원이 거의 일치한다. 나이가 90이 넘거나 환자가 아닌이상 예배시간에 빠진다는 것은 거의 상상을 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큰 차이를 보게 된다. 옛날 우리 고신은 주일날 "뭐 하면 안된다"는 것이 주일성수의 핵심인 반면, 이곳 화란개혁교회에서 주일의 핵심은 "예배드리는 것"이었다. 우리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읽어 보면, 물론 "일의 금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배드리는 날"로서의 강조가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1계명이 예배의 대상, 2계명이 예배의 방법, 3계명이 예배의 마음 자세를 다룬다면 4계명은 예배의 시간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10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나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경건이라고 지칭한다. 그렇다면 4계명도 경건이라는 관점에서, 특히 예배의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2) 신약 교회가 4계명을 예배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 시대에 있어서 4계명의 핵심은 예배가 아니라 "일의 멈춤"이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있어서 예배란 제사였고, 제사란 비록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져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약의 "일의 멈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예배의 중요성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많다. 만약 우리가 주일날 무엇을 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그와 동일하게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3) 내가 세례를 받았을 때, 내 옆에 있는 친구가 "십계명이 어디에 있는가?"라는목사님의 질문에 "찬송가 뒤에 있는데요"라고 답을 한 적이 있었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는 출애굽 1세대에게, 신명기는 2세대에게 하신 말씀이다. 두개를 비교해 보면 유독 4계명만 내용이 많이 다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기가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를, 창조의 관점에서 설명함에 비해서, 신명기는 구속을 강조하고 있다. 즉,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기념하는 날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어떻게 우리가 기념할 것인가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일상적인 일을 그침으로 기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무엇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일도 하지 않음으로 그것들을 기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은혜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얻는다는 것을 우리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음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다 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구속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다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날에 무엇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안식일이 창조와 구속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안식일의 정신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4)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내용 중 눈에 뛰는 것은 "네 문안에 유하는 동물, 종,객"도 쉬게하라는 구절이다. 오늘날에는 종이라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농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말씀을 무시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가 주일날 식구들과 밖에서 외식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아주 즐겁게 좋은 시간을 가지게 될지 모르나 그 식당 종업원들은 우리 가족의 즐거움을 위해 주일날 노동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돈을 버는 것은 사실이고 우리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주일날 상업적인 활동을 금함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안식이 우리 뿐만이 아니라 불신자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5) 개인적으로 주일날 텔레비젼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쇼핑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고신교단의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전통 속에서 훈련되지 않았다면, 지금 이것을 실천하고 싶어도 하기가 심히 힘들었을 것이다. 이 "하지 않음"은 여전히 우리가 지켜가야할 좋은 전통이지만 우리의 관심이 "예배를 함, 선한 일을 함"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꾸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6) 고신의 정서상 문제는 이러한 좋은 전통을 얼마나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성도들에게 잘 설명하는가에 있다고 본다. "공부하지마라. 뭐 사먹으면 안된다. 스포츠 해서도 안된다"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 그런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명령들은 쉽게 율법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일 성수가 와해되어 간다는 것은 예배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말이다.
7) 주일날이 안식일 보다 우월한 이유에 대해서. 날짜 계산을 해 보면, 주일이 삼위 하나님의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일은 성부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신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구속을 완성하신 날, 성령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 임하여 교회를 충만케 하신 날이다(오순절이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과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일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이 지금 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주일은 "임마누엘" 즉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날이다. 이 날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세상 문화에 맞서 우리가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