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벽은 넘기 위해 존재한다
벽은 두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벽은 한계선이다.
마치 벽은 건널 수 없는 강과 같다. 화해를 거부하는 적과의 접경지역과도 같다.
어느 분야나 벽은 존재한다. 아무나 건너 뛸 수 없게 하는 한계선이 있다.
📍벽은 하나의 층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벽은 한계를 설정해주는 엄연한 선 긋기다.
높이 세워진 벽은 불가침의 성역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침범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
장벽 앞에서 사람들은 한계를 느끼고 절망한다.
인생의 쓴맛은 대개 벽 앞에서 일어난다.
다가가고 싶지만 범접할 수 없는 세계가 벽 너머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신비의 세계다.
벽은 가벼운 칸막이와는 다르다.
누구나 도전하고 싶어하지만 버티고 선 벽은 자존심이 센 난공불락이다.
벽의 존재는 높고 거칠고 험난하다.
가파른 벽을 넘다 실족사한 사람들이 한둘 아니다.
벽 앞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도전보다 우회로를 찾는다.
가능한 쉽고 편리한 세상을 원한다.
벽의 실체 앞에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현실의 장벽 앞에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들이 많다.
한계에 부딪혀 자포자기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벽은 하나의 운명이 된다.
벽은 두꺼워 보이지만 무너질 수 있다.
거칠고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왜 그곳을 오르는가 물으면
"산이 거기 있었어"라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에 숨어있는 도전본능이다.
📍한계를 만나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한계의 벽은 깨기 위해 존재한다.
용기는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필요하다.
멀리서 보면 철옹성 같아 보여도 신화와 같이 꾸며진 것들이 많다.
작은 벽을 하나씩 통과하는 기쁨을 맛보다 보면 거대한 벽도 낮아진다.
작든 크든 벽을 허물어본 경험을 쌓다 보면 내공이 생긴다.
📍인생은 벽과의 거친 싸움이다.
한계에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한계도전에서 실패하면 지루한 상황의 포로가 된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 상상력은 다른 세계를 넘보는 일이다.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 훈련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주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실제 하는 벽을 넘기 전에
📍상상력으로 먼저 넘어야 한다.
상상력의 힘이 자라면 전혀 다른 세계가 엿보인다.
상상력은 절망의 선 같던 장벽에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하는 돌파구를 제공한다.
상상력의 날개를 달면 초월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생각의 자유로움은 삶의 지형을 바꾸어 놓는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선을 허물어뜨리는 즐거움이 있다.
대개는 자신의 세계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다.
📍상상력은 새로운 세상을 연다.
상상력은 경계가 없다. 상상력을 키우면 우물 안에서도 우주를 맛볼 수 있다.
상상력은 창조의 작업이다. 상상력은 현실의 벽에 저항한다.
📍전혀 다른 접근을 통해 벽을 넘어선다.
가장 큰 벽은 우리 안에 있다. 바로 고정관념이다.
사고의 경직성은 단 하나의 관점만 가지고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외골수가 가장 높은 벽이다.
갇힌 사고에서 새어 나오는 곰팡이 냄새는 삶을 질식하게 만든다.
자신이 만든 궤변을 늘어놓으며 뒤로 도망할 퇴로를 만들기에 바쁘다.
📍벽을 깨려면 역발상이 중요하다.
세상을 뒤집어 보는 훈련이다.
의식의 괴짜주의다. 패배주의로 가득 찬 생각의 벽을 깨고
📍전혀 엉뚱한 답을 찾아보아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속삭이는 내부의 적을 소멸시켜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장벽은 장애물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여는 출입구다.
알고 보면 장벽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다른 접근을 하면 의외로 간단한 답이 나온다. .
📍나를 가로막고 있던 벽은 나를 자라게 한 도구다. 도전한 벽의 높이만큼 내가 자란다.
장애물을 뛰어넘은 사람에게는 장애물은 디딤목이다.
가로막고 있는 장벽 앞에서 퇴로나 우회로를 구하기보다 정공법이 최고다.
패배를 패배시키고 절망을 절망하게 해야한다.
실패를 울게 해줄 호기를 가져야 한다.
📍믿음은 경계선을 넘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
장애물을 넘어서는 순간 삶의 풍성한 보따리가 풀어진다.
📍편견의 두꺼운 벽을 깨면 밋밋한 삶을 청산하게 된다.
반드시 넘어야 할 벽,
그 경계선을 넘으면 끝을 알수 없는 넓디 넓은 초원이 열린다.
- 모바일에서 받은 글임
🏊♂️4.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60이 넘은 여성 두 분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인생이 덧없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애인을 구하는 데 에너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등산하기 좋은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66살에 그녀는 북미에서 가장 높은山 4,797m의 휘트니 산을 올랐고,
91살에 일본의 후지산 (4,955m)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81~90세 까지 10년 동안 97개의 봉우리를 올랐습니다.
이러한 그녀를 기려 캘리포니아 주 입법부는
1991년 휘트니산 봉우리 하나를 그녀의 이름을 따서 '크룩스 봉' 이라고 명명 하였습니다.
94세였을 때 18세 소녀의 심장과 폐를 가지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던 그녀는
그녀의 자서전 인생의 산을 정복하다 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은 쇠퇴합니다.
힘을 받지 않는 뼈는
미네랄을 잃게 되어 약해 지게됩니다.
둔해졌다는 것은
그대의 몸이 민첩한 관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였던 김형석 교수는 2019년 6월 29일자 일간 신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해로 100세가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고생이 많았는데
사람들은 나보고 복받은 사람 이라고 그럽니다.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 해도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뭔 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인생의 절정기는 철없던 청년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매운 맛, 쓴 맛을 다 보고 나서야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무엇이 소중한 지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기는 6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60세 정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몇 살 정도 살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대답 하겠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집니다.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습니다.
사랑이 있는 고생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사랑이 없는 고생입니다.“
오래 살기 위해서는 건강, 경제적 능력, 친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친구를 너무 가까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먼저 떠나가게 된다면
몸과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가까이 하고 싶다면
친구를 잃는 슬픔까지도 이겨낼 줄 알아야 합니다.
주위에 행복한 인사를 건네는
사소한 습관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100세까지 사는게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신은 100세까지 무슨 재미로 살고 싶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이가 너무 많아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남은 시간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생각을 하나 바꾸면 인생이 달라지듯이
아무리 늦게 시작해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SNS건강커뮤니티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