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滸誌),
혼돈의 시대를 이끌다
1권 일탈하는 군상 (45)
제 9장 다시 만난 구문룡과 노지심
노지심(魯智深)은 지고 온 보따리를 부엌에다 내려놓고, 선장(禪杖)만 낀 채 다시 사람을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끝에 부엌 뒤에 있는 작은 방에서 늙은 스님 몇이 앉아 있는 걸 찾아냈다.
모두가 노랗게 말라 비틀어진 몰골이 오래 굶은 사람들 같았다.
"당신네 스님들은 정말 도리도 모르는구려! 내가 그렇게 소리쳐 불렀는데 어찌 대답 한마디 없단 말이오?"
노지심(魯智深)이 치미는 분을 누르지 못해 꽥 소리를 질렀다.
그 스님들 중 하나가 놀라 손을 저으며 나직이 말했다.
"그렇게 큰 소리를 내지 마시오.“
"나는 지나가는 객승인데 밥 한 끼 얻어먹으러 왔소이다. 안되겠소?"
노지심(魯智深)이 까닭도 알아보지 않고 급한 것부터 물었다.
늙은 스님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우리도 밥을 굶은 지 사흘이나 되는데 당신에게 줄 밥이 어디 있겠소?“
그래도 워낙 배가 고픈 터라 노지심(魯智深)은 한 번 더 사정했다.
"나는 오대산에서 왔는데 배가 몹시 고프오. 죽이라도 좋으니 얻어먹을 수 없겠소?"
"오대산이라면 활불(活佛) 같으신 분이 계시는 곳에서 왔구려.
우리가 마땅히 잿밥을 드려야 하나, 보다시피 사람은 모두 흩어지고 절 안에는 곡식 한 톨 남아 있지 않소. 이 늙은 중도 굶은 지 사흘이나 된단 말이오.“
"거짓말 마시오. 이같은 큰 사찰에 곡식이 없다니 누가 믿겠소?"
마침내 속이 상하기 시작한 노지심(魯智深)이 그렇게 따지고 들었다.
그 스님이 다시 큰 한숨과 함께 말했다.
"원래는 이 절도 지금 같지는 않았지요. 사방에서 예불을 드리러 모이는 신도들로 한때는 제법 흥성하던 곳입니다."
"그런데 한 떠돌이 중이 도사(道士) 하나를 데리고 주지로 앉으면서 이 꼴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자들이 어떻게 했기에 이리 됐단 말씀이오?“
"한마디로 못 할 짓이 없는 자들이지요. 도량을 더럽히고 오는 시주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스님들을 내쫓고......"
"저희들은 늙어 움직이지 못하는 까닭에 이렇게 붙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저희에게 무슨 곡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노지심(魯智深)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거짓말이오. 기꺼해야 중 하나에 도사(道士) 한 놈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정히 안 되면 관가에 일러바칠 수도 있지 않소?“
"스님, 모르시는 말씀 마십시오. 관가는 여기서 멀고 관군도 여간해서는 움직이려 들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그 중과 도사(道士)는 사람을 죽이고 불 지르기를 밥 먹듯 하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지금도 방장실 뒤에 있는 한곳을 차지하고 있을 터이니 못 미더우면 그리로 가 보십시오."
늙은 스님이 답답하다는 듯 그렇게 대꾸했다.
그제야 노지심도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화가 치솟아 거칠게 물었다.
"도대체 그 두 놈의 이름이 뭐요?"
"중은 성이 최(崔)고 이름은 도성(道成)이며, 도사는 성이 구(丘)요 이름은 소을(小乙)이라 하며 따로이 비천약차(飛天藥叉)란 별호도 씁니다.
둘 다 모두 출가한 사람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은 산도둑이나 다름없는 것들이지요.“
늙은 스님이 새삼 두려운 얼굴로 그렇게 일러 주었다.
그런데 노지심(魯智深)이 다시 그에게 뭔가를 물으려 할 때였다.
갑자기 코에 구수한 냄새가 와 닿았다.
노지심(魯智深)은 선장을 끌고 그쪽으로 얼른 가 보았다.
집 뒤를 돌아가니 흙 아궁이가 하나 있고, 그 위는 풀로 엮은 뚜껑이 덮여 있었다.
노지심(魯智深)이 그 풀 뚜껑을 들치자 그 밑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한 솥의 좁쌀죽이었다.
"야, 이 도리를 모르는 늙은 중놈들아, 사흘이나 굶었다더니 여기 있는 죽 한 솥은 뭐냐? 출가인도 거짓말을 하느냐?“
노지심(魯智深)이 그렇게 늙은 스님들을 욕했다.
스님들은 노지심에게 죽 솥을 들켜 버리자 이번에는 그 죽을 떠먹을 연모와 그릇을 모조리 치워 버렸다.
솥에 든 뜨거운 죽을 먹을 수 없으리라 여긴 듯했다.
노지심(魯智深)은 너무도 배가 고파 그런 스님들과 다툴 틈이 없었다.
죽을 보니 염치고 뭐고 없어질 만큼 속이 뒤틀려 와서 어떻게든 우선 먹고 볼 궁리만 하는데, 문득 알맞은 곳이 보였다.
아궁이 근처에 있는 돌로 된 식대(食臺)로 먼지가 하얗게 덮여 있지만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사람부터 살고 보자."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씨부렁거리며 선장을 기대놓고, 솥 위를 덮고 있던 풀 뭉치를 잡아 그 식대 위의 먼지를 쓸었다.
그리고 죽 솥을 두 손으로 안고 와 거기 쏟았다.
죽이 쏟아진 걸 보고 늙은 스님들이 다투어 몰려들었다.
노지심(魯智深)이 그들을 거칠게 밀어 버리자 그들은 자빠지고 달아나고 해서 근처에 오지를 못했다.
그걸 보고야 노지심(魯智深)은 돌 식대에 쏟아져 식은 죽을 두 손으로 움켜 먹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