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효모(yeast)에 의해 포도에 함유된 포도당(grape sugar)이 발효(fermentation)되면서 에틸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돼 얻어지는 과실주입니다.
C6H12O6 (포도당) → 2C2H5OH (에틸알코올) + 2CO2 (이산화탄소/탄산가스)
와인(Wine)의 어원은 라틴어의 ‘Vinum(비넘)’으로, ‘포도로 만든 술’이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어로는 Vin(뱅),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는 Vino(비노), 독일어로는 Wein(바인), 포르투갈어로는 Vinho(비뉴)입니다.
1907년 프랑스에서, 와인은 포도나 포도즙을 발효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법적 정의가 내려졌습니다. 물론 다른 과일로도 만들기는 하지만 이 경우 사과로 만들면 사과와인(Apple Wine), 딸기로 만들면 딸기와인(Strawberry Wine)이라고 명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맨 처음 와인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원숭이들이 과일을 바위틈에 모아 두었다가 자연 발효되면 먹곤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지만, 아마 사람도 그렇게 우연히 와인을 알게 됐을 것이고 그것이 인류 최초의 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당수의 고고학자들은 인간의 포도재배 역사가 약 8,000년 전 그루지아(코카서스) 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흑해 연안의 그루지아에서 약 8,000년 전 인간이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는 포도씨가 발견되었다. 이란에서는 BC 5,500년경의 와인 용기가 출토되었는데, 여기에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흔적이 모두 발견되었다.
이것은 BC 5,500년경에도 이미 레드 와인은 물론 화이트 와인도 만들어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있던 시기였으며, 노아가 대홍수 이후 정착생활을 시작했던 시기와도 거의 일치한다. 성서에는 노아가 와인을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녔다는 기록도 있는데, 아무튼 와인을 너무나 사랑했던 노아는 900살이 넘게 장수했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이집트에서 포도재배가 이루어지고 왕과 귀족들이 와인을 즐기며 종교의식에도 사용하면서 와인 양조기술이 상당 수준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그리스 정복기를 거치면서 포도재배지가 계속 확대되고 와인이 산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로마 제국이 다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영국을 비롯해 동유럽, 북아프리카 등지를 정복하면서 포도나무와 와인이 훨씬 더 넓게 전파되고 포도재배와 양조기술 또한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로마군은 점령지에 장기 주둔하면서 군대에 필요한 와인을 조달하기 위해 현지에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을 양조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이 지금의 프랑스 등 유럽의 와인산업 발전에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한 셈입니다.
아르메니아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 6,000년 전의 포도주 양조장 시설
또 예수가 포도주를 자신의 ‘피’에 비유함으로써 기독교에서 와인은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기독교가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와인의 저변 확대도 동시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가 행한 첫 번째 기적도 물을 와인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4세기 초 기독교 공인 이후 미사용 와인의 수요가 일부 늘었지만, 로마 제국이 쇠퇴해가면서 와인산업도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고, 중세 암흑기에 들어와서는 포도밭까지 황폐화되어 갔습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교회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부터 수백 년 동안 포도재배와 와인양조를 수도원이 상당 부분 담당하였습니다. 수도원은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와인 이외의 잉여분을 일반에게 판매하였고, 그로 인한 수입의 비중이 차츰 커지면서 와인산업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재건되기 시작했습니다. 12세기부터는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영국 등 여러 나라로 와인을 수출하기 시작했고 13세기 이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상업이 발전하면서 와인 소비도 더욱 늘어났습니다.
중세 때 유럽에서의 와인 교역은 지금의 원유 교역에 비교될 정도로 그 비중이 컸습니다. 와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반대로 수확기엔 포도 수확을 위해 합의하에 전쟁을 일시 중단한 사례도 흔할 만큼 와인은 문화이자 중요한 현실경제였습니다. 더구나 유럽은 석회질 토양이 많아 물이 깨끗하지 않고, 전염병이 오염된 물로 전파되다 보니 와인은 가장 위생적인 음료이자 에너지원이기도 했습니다.
샴페인을 개발한 프랑스의 수도사 동 뻬리뇽(Dom Pérignon)이 코르크 마개를 발명함으로써 18세기부터는 병과 코르크 마개 사용이 일반화되었고, 1821년에는 와인 병의 규격이 통일되었습니다. 이후 수도원을 대신해 전문 양조가들과 중개상들이 와인산업을 주도하게 됩니다.
모에 에 샹동사 본사 정문에 세워진 동 뻬리뇽 수도사(1638~1715)의 동상
중세 이후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시민 계급이 형성되면서 와인의 수요가 더욱 늘어나고 와인 무역도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1864년경 미국에서 수입한 야생 포도나무의 뿌리에 묻어 있던 필록세라(Phylloxera, 포도뿌리혹벌레)라는 기생충 때문에 유럽 전역의 포도원들이 황폐화되는 재앙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전 세계 와인산업에 있어 가장 큰 위기였지만,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강한 미국산 포도나무 뿌리(포도 대목)에 유럽산 포도나무 줄기를 접목시킴으로써 간신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와인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가격도 저렴해져 일반인들의 식탁에도 부담 없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2차대전 이후 와인에 대한 지식이 일반화되고 와인 애호가가 늘면서 소비자들의 입맛도 까다로워졌고, 이에 따라 와인의 품질개선을 위한 각국의 다양한 노력이 시작됩니다.
로마시대 때 프랑스에 포도나무와 와인산업을 전파해준 전통적인 와인 종주국 이탈리아는 지금도 와인의 생산, 소비, 수출량에서 프랑스와 함께 1~2위 자리를 다투고 있습니다.
와인의 절대 지존 프랑스는 일찍부터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고급 와인의 명성을 지키며 세계와인무역을 이끌어왔습니다.
이런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뒤를 이어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Old World, 구세계)인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와인산업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미국, 호주, 칠레를 위시해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등 일명 신세계 국가들이 그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쨘토사의 Muscat Ottonel(뮈스까 오또넬) 품종 화이트 와인 라일락, 미네랄, 사향의 풍미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55,000원선
루마니아 뱀파이어사의 까베르네 쏘비뇽 품종 레드 와인 35,000원선